3천원 '김치찌개' 하나뿐…"배고픈 청년은 오세요"
서울 정릉시장 허름한 건물 2층 '청년문간'
배고픈 청년 위한 3천원 '김치찌개'
김치, 돼지고기 모두 국산…쌀밥 '무한리필'
굶주림으로 세상 떠난 청년 사연 계기로 음식점 오픈
집밥 느낌 살리기 위해 김치찌개 단일 메뉴 결정
영업 초기 적자 메꾸기 위해 미사 수입으로 운영비 채워
유퀴즈 출연 이후 후원자 늘어 4호점까지 개설
이문수 신부 "청년들 포기말고 희망과 용기 가지길"
▶ 글 싣는 순서 |
①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②"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③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④"'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⑤눈물의 도시락 봉사 "꼭 임종 전, 아버지 눈망울 같아서…" ⑥한 끼 원정을 떠나는 아이들…그리고 '선한영향력가게' ⑦"어르신, 도시락 왔어요"…반지하 문 열리며 "기다렸어요" ⑧먹은 만큼 베푸는 '도돌이표 배식'…"나눔이 반찬" ⑨3천원 '김치찌개' 하나뿐…"배고픈 청년은 오세요" (계속) |
"배고픔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음식점을 운영할 거고요."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시장 입구 주변 허름한 건물 2층에는 좁지만 항상 사람들이 몰리는 음식점이 있다.
이 곳의 메뉴는 '김치찌개' 단 하나. 이문수(글라렛선교수도회) 신부는 지난 2017년 배고픈 청년들을 위해 '청년밥상 문간(청년문간)'의 문을 열었다.
6년 째 3천원…배고픈 청년을 위한 소중한 한끼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박음식점 사장들은 "팔아도 남는게 없어요. 박리다매가 전략이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문간의 김치찌개는 진짜 팔아도 남는게 없다. 오히려 팔수록 적자다.
청년문간의 김치찌개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쭉 3천원(1인분)을 유지해 왔다. 영업 초기 김치찌개의 원가는 3천원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인건비와 물가가 올라 현재 원가는 5900원으로 크게 뛰었다.
그러나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는 저가를 사용하지 않는다. 김치, 돼지고기는 물론 대부분의 재료는 국산을 사용한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청년문간을 찾은 자취생 이모(27)씨는 "이 곳의 김치찌개는 여느 김치찌개 전문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며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이 떨어진다면 애초에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찌개하면 빼 놓을 수 없는 흰쌀밥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퍼갈 수 있다. 청년문간을 찾는 손님들이 배부름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이 신부의 소소한 배려다.
대학생 김모(22)씨는 "이곳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얇아진 지갑 사정에 이정도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기에 자주 오곤 한다"며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음식점"이라고 했다.
가톨릭 신부가 음식점 사장이 된 까닭은?
지난 2015년 이 신부는 수녀로부터 한 청년이 서울의 고시원에서 굶주림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밥을 굶는 청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이 신부는 청년들을 위한 식당은 만들자는 수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청년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미안함에 음식점을 찾지 않을 것을 우려해 가격을 3천원으로 정했다.
메뉴를 김치찌개 하나로 정한 이유는 집을 떠나 온 청년들이 집에서 흔히 먹었던 김치찌개를 먹으며 집밥을 먹는 느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 운영 초기에는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이 신부가 외부 강의나 미사로 생기는 수입으로 음식점 운영비를 메워야만 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21년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게 된 것.
방송 출연 이후 이 프로그램의 MC인 유재석씨가 5천만원을 후원한 것을 비롯해 많은 후원자가 몰렸고, 현재 청년문간은 본점 이외에도 이화여대점, 낙성대점, 제주점 등 4개로 늘어났다.
이 신부는 "노숙자나 어르신들을 위한 식당은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 근처에 없어 마음이 무거웠다"며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현재는 식당을 4개로 늘려 더 많은 청년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식당 넘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청년 위한 사업도
이 신부는 2020년 4월 청년문간을 개인사업자에서 사회적 협동조합로 변경해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을 돕는 프로그램 '세대공감 잇다', '청년 영화제'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청년들에게 스터디, 회의 공간을 제공하는 '청년카페문간', 힘든 이웃을 위한 '연탄나눔', 환경 서포터즈 모임 '푸른문간' 등 다양한 사업도 마련했다.
이 신부의 다음 목표는 대학로에 청년문간 5호점을 차리는 것이다. 음식점을 열게 된 계기가 됐던 숨진 청년이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배고픈 예술가였단 이유에서다.
이 신부는 "배고프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미래의 예술인들에게 따뜻한 한끼를 선사하고 싶다"며 "청년문간의 김치찌개를 먹고 청년들이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이 원하고 여건이 된다면 문간을 전국에 100곳 이상 확장하고 싶다"며 "더 나아가 배고픈 청년이 사라져 우리 식당이 없어져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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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준석 기자 lj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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