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추억을 상영합니다" 2천원의 행복 실버영화관
영화관은 영화관인데 팝콘 대신 가래떡을 팔고 콜라 대신 미숫가루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 입장료 2천원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고전영화를 틀어주는 '실버 영화관'입니다.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1950년대 옛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실버 영화관입니다.
요즘 영화 한 편 보려면 만원이 넘게 드는데요. 이 영화관에선 55세 이상 어르신들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천 원짜리 2장만 있으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상영하고 있는 영화는 1957년에 개봉한 <밤길>입니다.
[재밌게 보세요.]
영화표를 꼭 쥐고 극장으로 들어갑니다.
[연덕흠/실버영화관 관람객 : {어떤 작품 예매하셨어요?} 빅 컨트리. {보신 적 있는 작품이세요?} 옛날에, 몇십 년 됐지. 2천원이니까 부담감 없이 오는 거예요.]
저도 티켓 한 장을 끊었는데요. 이 영화관의 장점은, 하루에 한 작품만 세 번 상영해서 티켓 한 장만 있으면 여러 번 봐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김형채/실버영화관 안내 담당 : {선생님, 저 이거 이따가 또 봐도 돼요?} 네, 괜찮습니다. 계속 보십시오. 추억이 되살아나서 아주 기분이 째지도록 좋았다. 저한테 '감사합니다' 그러고 가요.]
영화관에서 흔히 파는 팝콘, 나초는 이곳엔 없습니다. 대신 이 매점에선 가래떡 구이, 미숫가루, 계란 같은 메뉴를 팔고 있습니다. 딱딱하지 않아서 노인분들이 먹기도 편한 메뉴들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무인 단말기 대신 직원이 있는 것도 반갑습니다.
[송관섭/실버영화관 관람객 : 유일한 낙이라는 게 이거거든. 영화 보는 거거든. (대형 영화관은) 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몇 번 시도했는데 직원도 없고 하니까 물어보기도 그렇고 잘 안 가게 돼. 여기 없어지면 안 되지.]
상영관으로 들어가면 추억에 잠깁니다.
자막 크기는 일반 영화관 보다 두 배 가까이 큽니다.
좌석 번호도 알아보기 쉽게 크게 썼습니다.
[문태섭/실버영화관 관람객 : 서울에 이런 게 있다 하는 것이 남아 있는 어르신들한테는 축복이야 축복. 50년, 60년 전에 본 영화를 내가 여기서 다시 또 보니까, 엄청 좋은 거야. 나는 뭐 거의 매일 오듯이 오거든.]
이런 실버 영화관은 전국에 5곳뿐입니다.
항상 적자다 보니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대구 실버 영화관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조미견/대구 그레이스 실버영화관(2021년 폐관) 대표 : 코로나까지 겹쳐 버리는 바람에 굉장히 많이 힘들어졌고 400, 500(만원)씩 적자가 계속 났었어요.]
실버 영화관에 기금을 지원해 줄 수 있도록 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적은 있지만, 폐기됐습니다.
[김은주/'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이사 : 모두에게 확실한 것은, 우리의 미래는 모두가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함께 가서 '내 나이 듦이 외롭지 않다' '헛헛하진 않았다' 이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대한민국에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영화 한 편. 실버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이 곳이 오래오래 남아있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작가 강은혜 / VJ 박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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