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연거푸 재 뿌린 중국 스포츠 축제... 이번에는 북한이 어깃장?[문지방]

김진욱 2023. 9.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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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북한 선수단 기수 방철미(복싱)와 박명원(사격)이 인공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47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23일 개회식을 열고 메달 레이스가 한창입니다. 당초 지난해 열려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미뤄진 행사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45개국에서 1만2,5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40개 종목에서 열띤 선의의 경쟁을 펼칩니다. 우리나라도 선수와 임원 등 1,140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습니다. 금메달 50개 이상으로 종합 순위 3위를 목표로 합니다. 북한도 5년 만에 국제 스포츠 종합대회에 복귀했습니다. 18개 종목에 선수단 185명을 파견했죠.

종합 스포츠대회는 화합과 친선을 도모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 국가의 메달 순위를 별도로 정하지 않습니다. 각국이 획득한 메달의 종류와 수를 국가명 가나다 순(한국어 설정) 또는 ABC 순(영어 설정)으로 밝히고만 있습니다. 스포츠는 각국의 우열을 가리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실제 유엔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매번 동·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그리스에서 열렸던 고대 올림픽이 지역 분쟁을 끝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을 이어가는 셈입니다. 아시안게임에는 유엔 차원의 이러한 결의는 없지만 아시안게임이 '지역 올림픽'인 만큼 충분히 그 뜻을 이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하계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당시 러시아 총리가 조지 W 부시(가운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음을 알리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이 평화의 제전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열었던 올림픽·아시안게임 중 대부분이 전쟁과 도발로 얼룩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1990년 베이징 하계아시안게임으로 국제 스포츠대회 개최지로 떠올랐지만 시점이 애매했습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전이 발발했던 시기에 대회가 개막했던 것이죠. 이후 1996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2007 장춘 동계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하계아시안게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2022 항저우 하계아시안게임을 엽니다. 이 대회들도 그리 평화롭지는 않았습니다.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중국인이 좋아한다는 숫자 '8'이 4번이나 겹친 이 대회를 통해 중국은 세계 강국으로 도약했다는 뜻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제전이자 중국의 자랑이었던 베이징 하계올림픽은 러시아의 훼방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심복'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러시아 대통령으로 앉히고 총리로 물러앉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개막식장을 찾았죠.

푸틴은 개막식이 끝나갈 무렵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통역을 데리고 역시 개막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다가갔습니다. 푸틴의 발언을 들은 부시 대통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푸틴이 "러시아가 조지아에 대해 군사행동을 시작했다"고 밝힌 것이죠. 당시 서방권은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 기간에는 러시아와 조지아 모두 전면 충돌을 피하려 할 것이라고 봤는데 러시아가 허를 찌른 것입니다.

2022년 2월 20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뉴시스

2022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열렸던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군사행동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열렸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로 불안감의 이유였습니다. 러시아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4개월여 전인 2021년 10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병력 약 13만 명을 배치했습니다. 올림픽 한 달 전인 2022년 1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긴장이 최고조로 치솟았죠.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2일, 푸틴 대통령은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립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탈환을 시도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러시아가 올림픽에 재를 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급기야 미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인 2월 16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의 16일,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 스노파크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로 아브라멘코였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 일리야 부로프였습니다. 이 두 선수는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축하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전쟁은 폐회 나흘 뒤인 2022년 2월 24일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으로 본격화합니다. 올림픽 기간 전체를 전쟁 우려로 뒤덮고는 폐회를 기다렸다는 듯 침공을 시작한 것이죠. 러시아가 자국에서 열렸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회 열흘도 안 돼 크림반도를 침공했던 역사를 되풀이한 셈입니다.

8월 24일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는 뉴스를 지켜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그럼 올해는 어떨까요. 북한이 중국의 스포츠 행사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간에 두 차례 연거푸 실패한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 5월 31일과 8월 24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북한은 바로 3차 발사 카드를 꺼냈습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지난달 24일 발사 실패 직후 "오는 10월 3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시점이 관건입니다. 북한이 자국 내 정치일정에 맞춰서 도발을 감행한 선례 때문이죠. 8월 24일 2차 발사는 바로 다음날인 선군절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5월 31일 1차 발사는 7월 27일 이른바 '전승절'을 앞두고 열병식에 가지고 나갈 '메인 이벤트'였습니다. 다음 달 10일은 북한이 크게 기념하는 '노동당 창건일'입니다. 당 창건일을 앞두고 뭔가 보여줘야 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9월 23일 개회해 10월 8일 폐회식을 엽니다. 당 창건일 전과 아시안게임 폐회 후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감안한다면 북한에 주어진 시간은 9일 하루뿐입니다. 통상 위성 발사를 위해서는 국제해사기구 등에 미리 일정 기간 위성 발사를 할 수 있다고 통보해야 합니다. 그 기간 중 기상 상황도 도와줘야 합니다. 9일이 위성 발사의 최적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택지는 좁혀집니다. 9일이 아니라면 아시안게임 중에 발사하는 겁니다. 당 창건일 이후로 발사를 미루면 북한의 자존심에 금이 갑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옹진군 제공

북한이 중국의 스포츠 행사를 피로 얼룩지게 했던 과거도 다시 떠오릅니다.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인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에 240mm 방사포, 122mm 다연장로켓포, 130mm 해안포, 76mm 평사포 등 200여 발을 쏴 연평도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민간인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습니다. 또 연평도를 지키는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했고 16명이 다쳤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구역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이 기간 중국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열고 있었습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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