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공정 약관’ 시정명령 안 따라도 국가기관들은 ‘나 몰라라’
공정위 ‘늑장’ 시정명령...“명령 뒤에도 불법 사용”
민원에도 추가 조치 없어 특혜 의혹
2조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소송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손실과 투자자 및 중·소형 시공사의 피해가 우려되는 부동산 신탁계약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경기일보 19일 인터넷 <부동산 신탁사, 피소액만 2조2천억원>)이 끊이지 않지만 관련 국가기관들이 엄정한 행정 처분을 하지 않아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불공정 약관 시정을 통해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아야 하는 주무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이 금융투자업자인 신탁업자의 시정명령 불이행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1년 넘게 법상 정해진 추가 시정조치를 하지 않아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지난 2021년 5월 부동산 신탁업자인 한국자산신탁(한자신)의 ‘차입형 토지신탁계약서상 불공정 약관 조항에 대한 건’을 심의하고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당시 공정위는 “한자신이 차입형 토지신탁계약서상 ‘시공사 재선정 등 관련 이의제기 금지’ 와 ‘사업자 면책’ 등 2개 조항을 (시정권고에 이어)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시정권고 불이행한 신탁사…민원 끝에야 시정명령
공정위의 시정명령 의결서에 따르면 시공사 재선정 관련 조항은 신탁사무의 처리와 관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공사의 부도 및 파산 등에 따라 불가피하게 시공사를 재선정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계약 상대방이 일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사업자 면책 조항은 신탁 등기에 따른 책임이나 사해(詐害)신탁에 따른 신탁계약 취소 등 일정한 사유 발생 시 신탁사 책임을 면함으로써 신탁사가 부담해야 할 법률상 책임을 배제하거나 상당한 이유 없이 신탁사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기도록 한 것이다.
당시 시정명령은 앞서 내린 공정위의 시정권고를 한자신이 불이행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9년 5월 한자신에 시공사 부도 파산 시 즉시 공사 중단 등에 대한 일체의 이의제기 금지, 사업자 면책 조항 등 모두 13개 조항이 불공정 약관 조항에 해당해 수정 또는 삭제하라고 시정권고했다.
하지만 시정권고 이후에도 한자신이 전국 신탁사업 현장에서 다수의 불공정 약관을 사용한 사례가 수차례 민원을 통해 제기됐고, 결국 공정위의 시정권고 후 2년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시정명령에 이른 것이다.
앞선 2019년 5월 공정위가 작성한 시정권고서에 따르면, 시정권고 이후에도 한자신이 각종 신탁계약에서 사용한 ‘시공사 부도 파산 조항’의 시공사의 모든 권리행사의 즉시 중단, 이의제기 금지 등은 이미 성립한 계약상의 채권 채무를 무효로 하는 계약해제와 유사하여,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조항으로 약관법(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6조 2항 1호 1항 위반으로 무효다.
또한 면책 조항은 민법상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탁자(사업자)의 귀책 사유와 무관하게 그 책임 전부를 면책하도록 정하는 것은 약관법 7조 1호 등에 해당하는 불공정 약관으로 무효다. 이외에도 약관법 6조와 14조 위반에 해당하는 약관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처음부터 무효’, 즉 당연 무효다.
■합의제 준사법기관 ‘시정명령’에도 또 “ 불공정 약관 사용”
공정위는 법에 따라 사업자가 법 위반 행위를 하거나 의무 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 법 위반 행위를 중지토록 하거나 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도록 사업자에게 시정을 위한 시정권고나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특히 약관법에 따라 사업자가 시정권고를 정당한 사유 없이 따르지 아니해 여러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현저한 경우 사업자에게 해당 불공정 약관의 삭제·수정,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의 공표 등을 포함에 약관을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또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시정권고에 이은 시정명령 이후에도 한자신이 해당 조항을 일부 계약에서 사용하는 등 사실상 시정명령 불이행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공정위와 금융위 등은 ‘한자신이 불공정 약관 조항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민원 제기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실의 공표와 검찰 고발 등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기자가 입수한 한자신의 충남 아산지역 A사업장 신탁계약서에서는 공정위가 불공정 약관으로 시정권고 및 시정명령한 조항들이 약관으로 사용되거나 ‘특약사항’에 포함돼 있었다. 더욱이 A사업장의 계약서가 체결된 시점은 2022년 6월로, 시정명령이 내려진 지 1년여나 지났을 때다.
한자신의 불공정 약관 불법성 등을 수차례 민원 제기한 정유경씨는 “이미 4년 전 공정위의 시정권고 직후부터도 한자신의 불공정 약관 불법 사용을 공정위와 금융위 등에 고발한 끝에 2년이나 지나서야 시정명령이 내려졌다”면서 “전국 사업현장의 불공정 약관 불법 사용 사례를 직접 찾아 신탁사가 시정명령을 불이행하고 여전히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점도 국가기관들에 알렸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조치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권한을 남용한 특정 사업자에 대한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수 고객 피해 현저” 공정위, 1년 넘게 추가 조치 없어
하지만 부동산 신탁사업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시정명령 불이행 정황이 발견돼도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기관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위는 시정명령 당시 불공정 약관 조항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 ‘사업자가 공정위의 불공정 약관 사용금지를 정당한 사유 없이 따르지 아니해 여러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현저한 경우’라고 판단했다.
결국 해당 불공정 약관 조항으로 계약한 기존 고객들의 피해는 물론 새로운 사업장의 위탁자와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가 발생될 수 있는 만큼 시정명령 공표와 검찰 고발 등 적극적인 법 적용과 행정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씨는 “국가기관들이 금융투자업자인 신탁사들의 계속되는 불법 영업을 알고도 다시 불법인 약관으로 개정해 사용인가까지 해준다는 것은 의문”이라며 “금융약자인 고객들의 돈을 갈취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공정하지 않은 신탁업자들의 불법을 덮어준 공정하지 않은 기관들의 위법한 행정은 표준약관 제정과 법 개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기자는 공정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한자신 측에도 해당 기사와 관련해 질의를 했으나 관련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이승욱 기자 gun202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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