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햇반보다 낫다고?…뒷걸음치는 냉동밥

김아름 2023. 9.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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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규모 1000억대에서 800억대로 줄어
즉석밥보다 수요 적고 보관 편의성 낮아
주요 기업들, 프리미엄화로 활로 찾기 나서
CJ제일제당의 냉동밥 브랜드 햇반쿡반 제품/사진제공=CJ제일제당

한국인 하면 '밥심'이죠. 삼겹살을 먹어도, 닭갈비를 먹어도 마무리는 언제나 밥으로 해야 식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똑같은 탄수화물이라지만 빵을 먹으면 끼니를 채운 게 아니라 간식을 먹은 것으로 치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밥사랑이 이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대형마트나 편의점에도 온갖 '밥'들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신선식품 코너에는 갖가지 김밥과 삼각김밥이 쌓여 있습니다. 컵밥도 브랜드 별로 수십가지 제품이 있죠. 즉석밥은 쌀 품종까지 골라 구입할 수 있습니다. 

판매량도 어마어마합니다. 쌀 소비량이 매년 줄고 있다고 하지만 즉석밥(컵밥 포함) 시장은 반대로 매년 성장세입니다. 시장 규모만 4500억원 수준이고 2025년에는 5000억원을 돌파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는 '밥'이 있습니다. 바로 냉동 코너에 가득한 냉동밥입니다. 맛도 좋고 주먹밥, 볶음밥, 나물밥 등 종류도 다양한데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냉동밥 시장 규모는 2020년 1091억원보다 뒷걸음질친 870억원 안팎입니다. 냉동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 건 명백해 보입니다.

우선, 지겹지만 코로나19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밥을 먹는 빈도가 늘자 소비자들은 '더 편하게 먹는 밥'을 찾았습니다. 냉동밥은 다른 반찬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볶음밥류가 대부분이죠. 밥만 데우면 바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냉동 주먹밥은 아예 들고 먹을 수 있어 편의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딱 맞는 밥인 셈입니다.

이 시기 시장을 이끈 건 CJ제일제당과 풀무원입니다. CJ제일제당은 2013년부터 냉동밥을 만들어 왔습니다. 시장 점유율 30%가 넘는 1위 브랜드입니다. 최근엔 '중화 고메' 시리즈를 통해 중국식 볶음밥 라인업을 내놔 한식 볶음밥이 베이스인 다른 브랜드들과의 차별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풀무원은 2019년 '고슬고슬 계란코팅 황금밥알'로 '냉동볶음밥은 질퍽하다'는 편견을 깼습니다. 업계에서는 풀무원 황금밥알이 볶음밥계의 '비비고 왕교자'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봅니다. 시장 전반의 완성도를 높인 제품이라는 겁니다. 이밖에도 수백개의 기업들이 냉동밥을 내놓으며 시장에서 경쟁했습니다. 냉동밥 시장의 황금기였죠.

CJ제일제당의 햇반쿡반 냉동 주먹밥 제품/사진제공=CJ제일제당

하지만 코로나19 이슈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소비자들이 다시 외식을 찾게 되면서 냉동밥의 인기는 뚝 떨어집니다. 즉석밥 매출은 크게 줄지 않았는데 냉동밥만 수요가 감소한 겁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보관성입니다. 즉석밥처럼 상온에서 아무데나 쌓아둘 수 없고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 냉동밥은 대량 구매, 장기 보관이 어려운 품목 중 하나입니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열고 닫는 가정집 냉동실의 특성상 오래 보관하면 밥알이 녹아 떡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두어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냉동실에 냉동밥을 쌓아두지 않게 되죠.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기만 하면 되는 즉석밥과 달리,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옮기고 랩을 씌워 데우거나 프라이팬에 볶아야 한다는 점도 '귀찮음'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에겐 부담이 됩니다. "이럴 바에야 밥을 해 먹지"라는 불평도 나올 수 있다는 거죠.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애초에 국내 냉동밥 시장의 성장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햇반이나 오뚜기밥 등 '맨밥'은 매일 매일 소비하는 제품입니다. 반면 볶음밥류인 냉동밥은 '특식'에 가깝죠. 소비량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800억원이 넘는 시장 규모도 작다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2012년 국내 냉동밥 시장 규모는 1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4년엔 200억원을 넘어섰고 2017년엔 지금과 비슷한 800억대 시장이 됐습니다. 나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시장입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어떤 제품이든 성숙기가 빠르게 도래하고 금세 유지기로 돌입한다"며 "10년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는 제품군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냉동밥 역시 유지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풀무원의 프리미엄 냉동밥/사진제공=풀무원

성장이 멈춰 버린 시장이지만, 그래도 신제품은 계속 나옵니다. 최근 트렌드는 외식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프리미엄 볶음밥입니다. 지난 2월 세븐일레븐은 서울 을지로 베트남 요리 맛집 '촙촙'과 손잡고 '을지로촙촙소고기볶음밥'을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풀무원도 올 초 오삼불고기와 갈릭바베큐 등 원물감을 살린 프리미엄 냉동밥을 출시했죠. 이랜드도 '애슐리' 브랜드를 앞세운 냉동볶음밥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기업들은 아직 냉동 볶음밥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식품 기업들의 '프리미엄 볶음밥'이 냉동밥 시장의 정체를 타개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요. 함께 지켜보시죠.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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