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아아’ 뺏긴다면?…프랑스에선 혁명까지 일어났다는데 [전형민의 와인프릭]
매년 7월 14일은 프랑스 수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에서 1년에 한번 뿐인 특별한 행사를 엽니다. 파리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며 오로지 이날 하루만 허가된 행사, 바로 혁명기념일(Bastille Day) 불꽃놀이 입니다.
행사는 1년 중 단 한번 뿐인 에펠탑을 배경으로하는 성대한 불꽃놀이로 유명합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수도 밤하늘을 수놓는 행사답게 그 규모와 화려함으로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죠. 안그래도 비싼 에펠탑 인근 호텔의 이날 저녁 숙박료는 몇 배로 뛰고, 그나마도 최소 1년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우리의 광복절쯤 되는 혁명기념일은 1789년 7월14일부터 1794년 7월28일까지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1880년 7월14일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자유·박애·평등으로 대변되는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이라고 배운 바로 그 혁명입니다.
비약일 수 있습니다만, 와인은 프랑스 혁명의 태동에 나름대로 일조했습니다. 과거 와인프릭에서 프랑스 혁명 과정 중 와인 오크통(Barrique·바리끄)에서 유래한 단어가 현대의 바리케이드(장애물·Barricade)라는 점을 소개한 적도 있는데요.(관련 기사, 바리케이드 된 나무술통…알고보면 ‘이 맛’내는 비결) 이번엔 프랑스 혁명이 있던 격동의 시기, 와인의 다각적인 역할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좋은 포도는 좋은 와인의 재료입니다. 당연히 프랑스 와인의 질이 향상됐고, 이는 수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 와인이 수출 사상 최고치를 매년 갱신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프랑스의 와인 산업은 당시 프랑스를 통치했던 왕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요. 군주 금고의 수입 상당 부분을 와인이 해결해줬고, 이를 통한 사치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그 사치 때문에 시민 혁명이 촉발되지만요.
또 당시 와인이 크게 대중화되면서 농민부터 귀족까지 모든 국민들이 식사와 와인을 즐기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즐기던 우리가 어느새 식사 후 밥값만한 아메리카노를 사먹듯, 그 당시 프랑스 시민들 역시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게 당연해진거죠.
소설 ‘레 미제라블’을 보면 매일 밤 모여 와인을 마시며 혁명을 토론하고 결국엔 행동에 옮기는 아베쎄의 벗들(Les amis de l’ABC)이 나옵니다. 이들은 파리의 청년 노동자 및 대학생 모임인데요. 모임명인 아베쎄(Abaisse)는 ABC를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장삼이사’ 정도의 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이들도 매일 밤 와인을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일 정도로 와인은 아주 대중적인 음료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혁명 2년 전인 1787년부터 시작된 흉년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양질의 와인이 부족해지자 당연히 일반 시민들부터 와인을 구하는 게 힘들어졌고, 이미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시민들에게 큰 불만으로 작용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시죠. 정부가 갑자기 아메리카노의 제작·판매·음용을 금지하거나 세금을 붙여 소비자 가격을 몇 배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파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대중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분노한 대중들은 수출 상인의 와인 창고는 물론이고 투기꾼이나 사재기상의 와인들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전국적으로 소요 사태가 생겨나게된 것이죠. 물론 와인이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인 트리거가 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포도만 흉작인 게 아니라, 모든 농작물이 흉작이었던 시기였으니까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치였습니다. 국가 재정이 파탄 상황이 이르렀죠. 루이16세는 계층별 회의인 삼부회를 소집합니다.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이 평민이 모여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한 세제 개편을 논의합니다. 당연히 기득권인 왕과 제1·2신분은 같은 의견을 내지만, 머릿수는 제3신분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당시 전체의 96%가 제3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득권 계층이 꾀를 냅니다. 머릿수 표결이 아닌 신분별 표결을 주장한 것입니다. 평민들은 당연히 이에 반대하고 삼부회는 파행, 평민들은 국민회의를 따로 꾸리는데요. 루이16세는 이를 탄압하려하고, 이를 인지한 시민들이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통해 국민회의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무기를 탈취해 루이16세의 정적이 수감돼있는 정치범 수용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합니다.
아무리 분노한 시민들이라도, 잘 훈련된 정부군에 대항하는 게 왠만한 용기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와인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감옥을 습격한 군중 중 일부는 근처 지하실에서 가져온 포도주에 취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용기를 내 앞으로 나아가 바스티유를 습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서도 이러한 당시 모습이 묘사됩니다. 프랑스 혁명 중 와인에 대한 세금이 철폐됐고, 당일 파리에는 와인 200만ℓ가 세금없이 반입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축하연을 벌였습니다.
어디 그것 뿐이었을까요. 레드 와인의 붉은 색은 혁명가들의 시와 노래에서 혁명의 거리에 범람하는 애국자들의 피로 형상화 됐습니다. 당시에는 와인을 마시는 행위가 혁명적인 공화당의 미덕을 기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혁명으로 생겨난 정파들에 의해 좌지우지 됐는데요. 재밌는 점은, 양대 정파인 자코뱅파(급진)와 지롱드파(온건)가 와인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서 와인을 가지고도 대립했다는 겁니다.
좌파, 좌익이라는 단어의 시작이 된 자코뱅파는 급진적인 진보를 표방했는데요. 와인과 같은 사치품을 귀족적 과잉의 흔적을 도덕적으로 부패시키는 반혁명주의 물질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빵을 농민과 평민을 위한 음식으로 선호했고, 와인을 마시는 것은 공동 희생이 요구되는 시대에 부르주아적 타락과 비애국적 이기심을 상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온건주의를 지향하고 루이16세의 처형에도 반대했던 지롱드파는 와인을 본질적으로 반혁명주의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와인 산업에 해박했고, 와인 거래의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를 옹호했습니다. 이는 지롱드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롱드는 보르도를 관통하는 강의 이름입니다. 당시 보르도는 와인 산업의 발달로 부르주아 계급이 많았고, 이들은 와인으로 부를 쌓은 부르주아 계급이었습니다.
이 시기 많은 와이너리들이 소규모 지역 사업 수준에서 전국적인 사업으로 와인 판매·유통망을 확장했습니다. 과거부터 유명하던 와이너리 역시 귀족 고객과의 제한적인 계약에서 벗어나 자신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게됐고요.
물론 프랑스의 모든 와이너리가 긍정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집권과 실각, 세계대전 등 프랑스가 다양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본격적으로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와인에 대한 프랑스의 열정은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견디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습니다. 프랑스의 와인 산업은 단순히 양적인 부분과 기본에 충실한 와인을 넘어 떼루아를 담은 특색있는 고품질 와인으로 발전합니다. 프랑스 와인이 1800년대 이후 세계를 제패하는 데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오늘날 포도를 키우고 와인을 양조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지만, 모두가 와인을 얘기할 때 프랑스를 빼놓지 않는 것은, 그들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와인이 끊임 없이 등장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참고자료
- The French Revolution: 140 Classic Recipes made Fresh & Simple
- A Revolution in Taste: The Rise of French Cuisine, 1650–1800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최태원 SK 회장, 90년대 하이틴 모습으로 추석 인사 - 매일경제
- “주스 마시고 복통에 설사”…CCTV 보니 범인은 회사 대표 - 매일경제
- ‘국내 1위’ 서울대에 무슨 일?…전세계 순위 얼마나 떨어졌길래 - 매일경제
- “12억 집 살면서 통장에 연 4천만원 꽂힌다”…10월부터 확 늘어나는 이것 - 매일경제
- “여보, 이사날짜 잡아놨는데 어떡해”…주담대 5% 대세됐다 - 매일경제
- 지지자들 ‘울컥했다’는데…구치소 나온 이재명이 교도관에게 한 행동[영상] - 매일경제
- “셀카 찍어 달라”…‘美 나는솔로’ 72세 평범男 인기 폭발 비결이 - 매일경제
- 황금연휴에 전국이 축제 또 축제…추석 행사 및 혜택 총정리 - 매일경제
- 말로만 듣던 ‘로봇 슈트’ 입고 달려보니…“200m 최대 3.4초 단축”[영상] - 매일경제
- “심판도, 팬도 우리 편 없어! 우리끼리 싸워야 돼”…21년의 恨 못 푼 韓 럭비, 울먹인 36세 베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