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위기·킬러 소동’···올해 유난히 힘들었던 고3 담임 선생님들 이야기
“고3은 다른 세계처럼 8~9월에 같이 못 움직였거든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까 자리에서 이탈할 수도 없고.”
“‘킬러 문항’이 없어졌으니 오히려 혼자 준비하는 게 더 좋다며··· 수업 분위기가 와해하고 흔들렸어요”
지난 몇 개월간 교육계는 다사다난했다. 정부 차원에서 ‘킬러 문항’을 지적하는 유례 없는 일이 발생했고, 추락한 교권의 단면이 드러났다. 이때 ‘대입’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어땠을까. 혼란 속에서도 교단을 지켜야 했던 고3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6월, 정부의 갑작스러운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수능 출제 방향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왔다. 교직생활 10년 차 A교사는 “왜 하필 6월 모의평가가 끝나고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했는지 화가 났다”고 말했다. ‘킬러 문항’ 이슈는 일선 학교에서 연쇄 작용을 일으켰다. 쉬운 수능에 관한 기대감으로 학생들은 학교 내신을 준비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졌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해이해진 학생들의 시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른바 ‘N수생’이 늘어나면서 재학생들은 수능에서 원하는 등급을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A교사는 “재학생은 수능도, 수시도 어중간한 상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8년 교직생활 중 절반을 고3 교사로 지낸 B교사는 “올해 학생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변형이 됐으니 기본에 충실히 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는 교사들의 비극적인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4일에는 전국의 50만 교사들이 교단에서 잠시 내려와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도 고3 교사들은 학교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9월 모의평가를 이틀 앞두고 있었고,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하는 때였다. B교사는 “당장 학생들에게 더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하루 이틀 이탈하는 순간 대입에서 흠결이 날 수 있는 상황이라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A교사는 올해부터 업무용 휴대전화를 마련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민원을 보며 교권을 외치는 세상과의 괴리를 느꼈다고 했다. 고3 교사들은 입시를 목전에 둔 학년 특성상 성적 관련 민원을 많이 받는다. A교사는 “수행평가 점수가 이상하면 (학부모가)밤새 항의하고, 아이에게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권하지 말라는 연락도 받았다”며 “올해 말도 안 되는 민원들로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소식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식 개선이 안 됐다는 사실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수시전형에서 자기소개서가 완전히 폐지됐다. 이는 고3 교사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됐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몇 년 만에 이과반 담임을 맡았다는 A교사는 자기소개서가 없어지면서 이공계열 진학 지도가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 학생이 논문을 바탕으로 활동한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는 과정에서 논문을 작성한 교수에게 내용 확인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올해로 고3 담임이 다섯 번째인 C교사는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학생부에서) 부족한 걸 자기소개서에서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교사가) 학생부에 표현해 주려고 하다 보니 더 고민하고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고3 교사들은 휴식을 반납한다. A교사는 줌(ZOOM·온라인 회의 플랫폼)으로 학생들을 만나 면접 준비를 도울 예정이다. B교사는 자습 지도를 위해 학교에 나온다. C교사도 수능이 50일도 채 안 남은 만큼 철저히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C교사는 학급 내 ‘말썽꾸러기’ 학생이 최근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하겠다고 했다며 그 모습이 기특하다고 했다. B교사는 지난 스승의 날 학생들이 만들어 준 ‘초코파이 케이크’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B교사는 “고3은 항상 어렵지만 끝나고 나면 늘 보람 있어서 학년을 맡으라고 하면 고3을 선택했다”며 “지난 2월에 다짐했듯 올해도 아이들과 재밌게 지내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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