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VS 디즈니+ 정면승부, 본게임은 지금부터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2023. 9. 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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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넷플릭스를 구독한 지도 이제 2년이 넘었다. 스탠다드 요금제(1만3500원)이므로 지난 24개월여간 약 32만 원을 꼬박꼬박 낸 셈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분리징수로 시끄러운 KBS 수신료가 월 2500원이니까 그보다는 훨씬 큰돈이지만, 1편 관람에 2만 원에 육박하는 영화 티켓을 생각하면 또 상당히 저렴해 보인다. 한 달에 영화 한 편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수십 편의 신작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으니 '가성비'가 제법 쏠쏠하다.

그래서 아마 '실손 보험료' 3분의 1 수준의 돈을 지불하면서도 큰 저항 없이 2년 넘게 넷플릭스를 본 모양이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꽤 있다. 영화 '버드 박스' '돈 룩 업', 외화 시리즈 '블랙 미러' '기묘한 이야기', 한국 시리즈 '킹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그리고 최근의 '마스크 걸' 등… 그러고 보니 한국 시리즈가 넷플릭스 성장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가 선뜻 "K-콘텐츠에 향후 4년간 25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장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7년간 넷플릭스는 몰라보게 급성장했다. 2016년 전 세계적으로 구독자 수가 8900만 명 정도이던 것에서 2017년 1억 명을 넘었고, 2020년에 2억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를 지나온 올해는 약 2억3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1위다. 넷플릭스가 별도의 한국 시장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기에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애플리케이션 분석 서비스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8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에서 넷플릭스가 1223만 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준으로 그다음은 쿠팡플레이(563만 명)와 티빙(540만 명), 웨이브(439만 명), 디즈니플러스(269만 명) 순이었다.

MAU만 봐도 넷플릭스의 위력이 실감 난다. 현재는 넷플릭스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국내 상위 5개사 중 꼴찌인 디즈니플러스에 비해 4∼5배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기억에 남는 작품도 대부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디즈니플러스 작품 중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건 거의 없다. 오히려 첫 한국 제작 작품이었던 '너와 나의 경찰수업'이 강다니엘이라는 '핫한' 아이돌을 쓰고도 흥행이 부진했던 악몽만 남아 있다. 그 이후로도 디즈니플러스는 그다지 '학업'에 뜻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넷플릭스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오리지널을 제작하는데도 방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최근 이런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 8월의 MAU에서 디즈니플러스가 269만 명이라고 하지만 이는 불과 한 달 전보다 40% 이상 급증한 수치다. 8월 마지막 주 디즈니플러스 애플리케이션 사용시간도 첫째 주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그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무빙' 포스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원동력은 디즈니플러스가 지난 8월 9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한 한국 시리즈 '무빙'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는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강풀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다. 총 20부작으로 제작돼 지난 20일 최종회까지 모두 공개됐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초반에도 나쁘지 않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큰 화제를 낳고, 강력한 입소문을 탔다. 드라마의 모든 장르를 비빔밥처럼 잘 버무린 작품이라는 평가다. 초능력자들의 자녀인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대목에선 학원물의 따뜻함과 순수함, 국정원 출신의 비밀요원 김두식(조인성),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의 과거가 밝혀지는 대목에선 멜로의 달콤함과 애틋함, 어딘가 모자라지만 엄청난 괴력을 지닌 아빠 이재만(김성균)의 액션 대목에선 누아르의 타격감이 골고루 묻어났다. 살벌한 액션이 있는가 하면, 눈물 나는 감동이 배어 있었다. 강풀 작가 특유의 동화 같은 인간애에 박인제 감독의 역동적인 연출이 찰떡같이 합쳐졌다.

한국 시장 철수설까지 나오던 디즈니플러스는 '무빙'을 기점으로 확실히 달라졌다. 콘텐츠 부진으로 팀이 해체됐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잘못된 정보라고 일축하며 한국에 지속해서 투자할 뜻을 분명히했다. 이를 위해 지난 22일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 사무실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고 투자 계획을 밝혔다.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대표는 "'무빙'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서 제공한 모든 콘텐츠 가운데 가장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것 같다"면서 "무조건 시즌2 제작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에 따르면 '무빙'은 한국과 일본,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개 첫 주만에 최다 시청 시리즈에 올랐다. 통계분석 전문기업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디즈니플러스 애플리케이션 주간 이용자수 추이도 '무빙' 이후 전주보다 93% 증가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디즈니플러스는 차기 '라인업'을 줄줄이 밝혔다. '무빙' 이후 배우 권상우 주연의 드라마 '한강'을 선보였고, 27일엔 지창욱과 위하준 주연의 누아르 드라마 '최악의 악'을 공개했다. 11월에는 남주혁과 유지태 주연의 드라마 '비질란테'도 공개할 예정이다. 내년에도 '킬러들의 쇼핑몰', '화인가 스캔들' 등이 기다리고 있다.

콘텐츠 외에도 디즈니플러스의 반전에 영향을 끼친 요소로는 시청 방식과 요금제가 꼽힌다. 강풀 작가가 디즈니플러스는 1.5배속 시청 기능이 없어서 선택했다고 한 것처럼 디즈니플러스엔 1.5배로 빨리 돌리는 기능이 없는데 이게 오히려 차분한 시청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에 많은 의미를 담는 휴먼 드라마에서는 빨리 보기 기능이 시청의 질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공개 방식에서도 디즈니플러스와 넷플릭스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넷플릭스는 6∼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1개의 시리즈를 한꺼번에 몰아서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구독자들에게 습관처럼 받아들여져 '몰아보기' 패턴이 대중화했다. 그러나 디즈니플러스는 이보다 시청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무빙'처럼 매주 수요일에 2편씩 개봉하는 방식을 지키고 있다. '한강'도 그렇다. 몰아보기에 단련된 시청자들에게 불만일 수도 있으나 새로운 편성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금제에도 다소 변화가 생기고 있다. 광고를 배제하던 넷플릭스는 향후 광고가 딸린 요금제를 준비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여전히 광고는 배제하되 좀더 저렴한 스탠다드와 고급형의 프리미엄으로 이원화한다.

'도적 칼의 소리'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의 은근한 반격에 넷플릭스도 지난 22일 새로운 한국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를 공개했다. 콘텐츠에는 콘텐츠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도적: 칼의 소리'는 192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일제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조선인들의 액션을 담은 작품이다. 배우 김남길이 일본군에 몸담았던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간도에서 무고한 조선인들을 지키기 위해 도적단을 결성하는 주인공 이윤을 맡았다. 서현은 조선총독부 철도국 과장으로 일하면서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하는 남희신을 연기했다. 새로운 장르의 시대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3년 넘게 벌여온 SK브로드밴드(SKB)와의 망 사용료 소송도 최근 마무리했다. 양사는 서로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과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파트너로 뜻을 모으기로 했다. 소모적인 소송전을 그만두고 상호간의 윈-윈을 모색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를 포함한 경쟁 업체들의 잇단 약진에 대비한 측면도 보인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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