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독약 아닌 밥 냄새가 났다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 양창모 강원도의 왕진의사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튀김 냄새가 나지?’
냄새나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어, 저기에 왜 저게 있지?’ 신기하다. 한국의 요양병원이라면 간호스테이션이 있을 위치에 주방이 있다. 거기에는 간호사와 관리직원들 대신 요리사가 있다. 각자 방에 있던 노인들도 냄새를 맡고 하나둘 나온다.
바다 건너 낯선 곳으로 여행 온 피로감에 식욕을 잃었던 나도 그 냄새에 침이 꿀떡 넘어간다. 이곳에 입소한 노인들도 그럴 것이다. 눈 감고 냄새로만 생각한다면 여기는 시설이 아니라 집이다. 밥하는 냄새, 반찬 만드는 냄새, 튀김 냄새…. 그런 냄새가 노인들에게 ‘내가 사는 집도 이랬지’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자신의 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소독약 냄새 나는 주사실이 아니라 주방이 있다!
일본의료생협 노인보건시설. 이곳에는 종합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기능이 회복되지 않은 노인들이 머무른다. 단지 머무르는 게 아니라 개별화된 재활치료를 받는다. 140명까지 입소하는 이곳의 방은 모두 ‘1인실’이다. 내 집이라면 모르는 타인과 내 방을 나누어 쓰지 않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지만, 이미 집이다. 입소한 노인들은 모두 ‘내 방’이 있다. 혼자만의 것이 모두 거기에 있고 혼자 할 수 없는 것은 언제든 도움을 받는다. 식사도 목욕도 세수도 필요할 때 도와주는 이가 늘 옆에 있다. 한국 방문단을 안내해준 일본의료생협 직원에 따르면, 인구 50만인 가와구치시에 이런 노인보건시설이 7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런 일본 노인들 사이에서 무언가에 홀리듯 유령들을 보았다. 휠체어를 탄 채 식사하다 입소 한달 만에 휠체어 없이 앉아서 식사하는 할아버지, 기모노를 입고 손자 결혼식장에 가고 싶어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는 할머니, 그 모습 너머에서 한국 시골집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의 유령을 보았다.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고 말하는 노인들. 대학병원에 입원해 온갖 검사를 하고 온 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고관절이 골절되어 돌아가신 최 할아버지도, 요양병원 한달 입원했다가 다리 근육이 다 빠져서 결국 앉은뱅이 의자처럼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몇달 만에 돌아가신 김 할머니도 모두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타살이었을지 모른다. 수많은 검사와 치료를 통해 가장 많은 이윤이 남는 (대개 입원 1주일 이내인) 기간이 지나면 화장실 갈 힘도 없는 환자라도 돈이 되는 치료가 더는 필요 없다는 이유로 병실에서 쫓아내는 것이 한국의 의료제도다.
하지만 급성기 병원 입원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퇴원 뒤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사회에 입원’하는 게 필요하다. 퇴원할 때 노인기능평가를 의무화하고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판단하면 적절한 지역사회 돌봄기관으로 연계해주는 게 제대로 된 통합돌봄이다. 퇴원하는 일본 노인들에게 이런 노인보건시설을 연계시켜준 것도 노인과 그 가족이 아니라 케어 매니저라는 일본의 의료제도 자체였다.
척추 수술 뒤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진료 가서 마주한 박 할머니의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무심결에 장을 왜 안 보냐고 여쭤봤다. ‘장을 어디서 봐! 내가 움직이질 못하는데.’ 할머니는 척추 보조기를 찬 상태로 퇴원했다.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수술 뒤에도 통증이 남아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그럼, 음식을 어떻게 해 드세요?’ ‘그냥 장 찍어 먹어. 근데 혼자서 먹으니까 너무 힘들어. 누가 와서 말동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어.’ 할머니는 노인요양서비스를 신청했으나 수술 뒤 급성기 상태라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급한 사람은 그냥 기다리다 죽겠어!” 우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할머니의 병명은 ‘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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