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 임시완, 노력도 연기도 '태극마크' "생명력 부여받았죠"[인터뷰S]
[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 '스펀지 같다', '도화지 같다'는 말이 흔하고 고루한 칭찬이라고 할지라도, 배우 임시완은 스펀지 같고 도화지 같은 배우다. 뒷목을 서늘하게 하는 악역도, 평생 그늘이라고는 몰랐을 것 같은 해맑은 선역도 제 것처럼 소화해내는 얼굴, 임시완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1947 보스톤'은 임시완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마라토너 서윤복을 연기하는 임시완이 몇날며칠 물까지 끊어가며 완성한 '눈물의 질주'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 저절로 차오르는 감동은 '국뽕' 혹은 '신파'라는 영화를 향한 아주 자그마한 걱정마저도 완벽하게 지워낸다.
서윤복이 되기 위해 몇 개월을 달린 그는 실제로 마라톤을 취미로 갖게 됐다. 가수 션을 비롯해 배우 박보검, 윤세아 등과 함께하는 러닝 크루 멤버로, 바쁜 스케줄에도 달리기를 기록하는 션의 인스타그램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임시완은 "준비 기간 3개월, 촬영 기간 5개월 총 8개월을 달리고 몸을 준비했더라. 다른 외국 작품들, 준비 기간이 길었던 작품들에 출연한 배우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어떤 인물을 위해 1년 동안, 혹은 1년 이상 준비했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런 것에 비하면 기간으로는 압도적으로 짧은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 정도 이상 하는 것은 배우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의무다. 캐스팅이 되자마자 바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크랭크업까지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취미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뛰다 보니 저한테 잘 맞더라. 어떤 거리를 목표로 뛰다 보면 그 거리가 점점 짧아지지 않나. 그런 단순 명쾌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재밌었다"라고 했다.
작품 속에서 임시완은 알려지지 않은 마라톤 영웅이자 최초의 국가대표 마라토너 서윤복을 연기한다. 실제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책임감도 남달랐다. 임시완은 "유족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게 감사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가족 분들의 존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더 들었다"라고 했다.
이어 "책임의식을 갖고 들어가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감독님이 어떤 요구사항이나 부담감을 주시는 것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가 하는 것들에 있어서 믿고 의지해주시고, '네가 그렇게 했어? 그럼 그렇게 해. 내가 그렇게 따라가 볼게'라는 생각을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잘 뛰어놀 수 있게 운동장을 넓게 준비해주시는구나 싶었다"라고 책임감은 가졌지만, 자율성을 가지고 서윤복이라는 인물을 충분히 고민한 후 자신의 해석으로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1947 보스톤'으로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강제규 감독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것도 임시완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제가 가족들과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쉬리'였다. 영화관이라는 곳에서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주는 감정들을 온전하게 느꼈을 때의 그 먹먹함. 저한테 지대하게 영향을 주신 감독님이다. 제 유년 시절에 영향을 주신 감독님과 성인이 돼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했다.
이어 "같이 하게 됐을 때 감독님의 인품으로나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큰 그릇을 느끼게 됐다. 이번 영화를 봤을 때 다시 한 번 감독님에게 존경심을 느끼게 됐다. 영화를 보고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제가 참여했던 작품이라는 걸 떠나 평상시에 제가 보고 싶어했던 그런 결의 영화였다"라고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냈다.
'1947 보스톤'은 2019년 촬영을 마친 후 무려 4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묵힌 기간이 길었던 만큼 개봉의 기쁨도 크다. 관객의 평가는 늘 두렵지만, 그것 이전에 영화가 관객에게 가닿아 살아숨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임시완에게는 기쁨이다.
임시완은 "전 사실 언제 영화가 개봉하고 언제 드라마가 나오고, 이런 것에 무딘 편이다. 찍었으니까 언젠가는 나오겠지, 편하게 생각한다.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늘 '잘 준비해서 나오겠지'라고 생각해왔다"라고 했다.
이어 "이번 영화가 이례적으로 길었다. 이렇게 기다림이 길었던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나와서 대중의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게 완성형은 아니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배우로서, 또 스태프로서 그 고생을 하고 나서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관객 분들의 반응을 얻어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됐다. 전 생명력을 부여받은 거다.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거라 기분이 너무 좋다"라고 싱긋 웃었다.
임시완은 아이돌 출신으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배우라는 새로운 영역에 잘 안착했다. 아이돌 출신이 꼬리표는 아니라지만, 연기로 새로운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고 있는 임시완의 걸음 걸음이 인상적인 것은 분명하다.
임시완은 "지금까지는 저를 백지로 만들고 어떤 것으로든 채워나가야만 한다는 걸 목표치로 삼고 이것저것 도전을 해봤던 게 컸다. 한동안은 더 그렇게 도전을 해보고 그런 시기를 가질 것 같다. 어느 순간에는 그런 도전과 경험을 토대로 제 기준을 잡는 경우가 생길 것 같다"라며 "내가 어떤 걸 할 때 더 효과적이고, 내가 어떤 걸 할 때 더 재밌어 이런 것들이 점차 쌓이게 되면 임시완이기에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질 것 같다"라고 했다.
'1947 보스톤'에 대해서는 '곤드레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 고자극적인, 음식으로 따지면 짠맛이 강하거나, 단맛에 짠맛까지 넣은 '단짠단짠'이 많은 것 같다. 그 중에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요리가 생각이 날 때도 있지 않나"라며 "그런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가 제 구미를 완벽하게 맞춰줄 수 있는 작품 같다"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보시는 분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서 숨 한 번 돌릴 수 있는 영화였다는 평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음식으로 치면 곤드레밥 같은, 별 것 아닌데 간장만 넣고 먹을 수 있는, 그런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고 단순하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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