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일본군 장교 친일행위 판정기준은 독립군 토벌이다?
백선엽 친일행위 판정근거는 '침략전쟁 협력'…한인 독립군 토벌여부가 기준 아냐
일제 만주국군 장교들 해방후 한국군 요직…50여명은 장성급·정치권력 정점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6·25 전쟁영웅 백선엽(1920~2020년)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친일행위 판단 기준에 대한 시비로 옮겨붙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라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 문용형씨도 친일파라고 하자, 문 전 대통령은 부친이 농업계장을 한 건 해방 후라며 박 장관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다.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면서 그 근거로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했지만 조선인 독립군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선엽 장군이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1940년대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고 간도특설대의 토벌 대상은 홍군(중국 인민해방군)이나 비적이었음에도 친일행위자로 잘못 분류됐다는 의미다.
이 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있을까? 이를 판단하려면 관련 법령상의 친일반민족행위 판단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 친일행위자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번, 이범익, 방인혁, 김서규, 김상형, 민병식, 안종철, 이능세, 이진호, 조성근, 최석민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9/28/yonhap/20230928070042547spdp.jpg)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반민족규명법)에 따라 2005년 5월 31일로 대통령 직속 한시 기구로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는 2009년 11월 30일까지 4년 6개월간 활동하면서 3차례에 걸쳐 총 1천6명의 친일반민족행위를 확정해 발표했다.
반민족규명법은 2004년 3월 여야 합의로 제정됐는데,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안 발의부터 민주당 96명, 한나라당 49명, 비교섭단체 9명 등 154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2004년 12월 여야 합의로 법을 개정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진실 규명과 민족 정통성 확인, 사회정의 구현 등 3가지로 규정했다. 이는 해방 직후 친일행위자 처벌을 목적으로 했던 '반민족행위처벌법'과 달리, 진상규명으로 해방 후 60년 이상 이어져 온 친일 논란을 해소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목적이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이 법의 조사대상은 '행위자'가 아닌 '행위'로 규정됐다. 개인의 다양한 과거 행위 중 특정 행위가 친일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뿐 개인에 대한 전인격적 판정을 내리진 않는다는 의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는 법 개정을 하면서 야당(한나라당)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당초 제정법(제5조)에는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반민규명위 위원 모두를 대통령이 국회 추천을 받아 임명하게 돼 있었으나, 위원 수를 11인으로 늘리고 위원 중 4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개정됐다.
친일행위 인정 범위도 여야 합의로 여러 번 수정됐다. 군인의 경우 당초 제정법안에선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만 돼 있던 조사대상 범위가 법 제정 때 '중좌(중령) 이상의 장교'로 바뀌었다가, 법 개정을 하면서 현행대로 '소위 이상의 장교'로 다시 수정했다. 헌병·경찰도 제정법에선 '헌병분대장 이상' '경찰 간부'만 조사대상이었다가 법 개정 때 계급 구분 없이 모두 조사하는 것으로 바꿨다.

반민족규명법은 1904년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해방을 맞은 1945년 8월15일까지 40년간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이 법 제2조는 이 기간 자행된 친일반민족행위를 1호부터 20호까지 20개로 규정해놨는데 ▲ 일제 강제합병에 가담한 매국행위 ▲ 항일운동 탄압행위 ▲ 일제 통치기구 참여행위 ▲ 경제·문화침탈 협력행위 ▲ 일제 침략전쟁 협력행위 등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20호 가운데 특정 '지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건 '7호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행위'와 '8호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 '9호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3개 호뿐인데 식민 통치 당시 최상위 특권층이 대상이다.
나머지 17개 호는 '적극적인 협력 행위'가 있는 경우 친일행위로 판정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군인, 경찰, 행정관료, 사법관료에 대해선 특정 지위와 더불어 적극 협력한 행위가 수반돼야 한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발췌]
반민규명위의 판정 결과는 총 25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진상규명 보고서)에 수록돼 있는데,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과 국회전자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13권(Ⅳ-7)에 실린 백선엽 장군에 대한 판정 요지를 보면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하였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며 반민족규명법의 제2조 10호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고 적혀있다.
제2조 10호는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다. 진상규명 보고서(2권)에는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러일전쟁, 시베리아간섭전쟁, 만주침략, 중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 등 1904~45년 발생한 일제 침략전쟁이고, 연합국, 일제 식민지피해국, 피침략국 등 우리나라가 아닌 제3국이나 제3국인의 항일에 대한 방해나 탄압도 포함한다는 주석이 있다.
또한 '일본제국주의 군대'는 일제의 지배를 받은 만주국군이 해당되고, '적극 협력한 행위'는 소위 이상 지휘관으로 재직하면서 실제 전투에 참여하거나 병력동원에 참여한 행위 등을 포함한다고 돼 있다.
이 같은 법 규정에 비춰보면 백선엽 장군은 만주국군 장교로서 만주지역 항일부대(홍군) 토벌에 참여한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인 독립군 토벌에 관여했는지 여부가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위 판정의 법적 근거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조선인 독립군 토벌이 근거가 됐다면 우리나라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행위를 규정한 반민족규명법 제2조 3호도 적용됐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현역 육군 대장 시절 백선엽 장군 모습 [국가보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9/28/yonhap/20230928070043089eqag.jpg)
군대는 경찰과 함께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일본 군대에 복무한 조선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민규명위가 법에 근거해 친일행위 판정을 내린 군인·헌병 전력자는 40명으로 전체(1천6명)의 4%에 불과하다. 이는 부일협력자까지 포함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군인 출신이 458명으로 전체 친일행위자(4천389명)의 10%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진상규명 보고서(4권)에 따르면 일본군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따라 1938년 설립돼 만주지역 항일세력에 대한 잔혹한 토벌로 악명이 높았던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 중 명단이 파악된 사람은 60여명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반민족규명법상 친일행위가 인정된 사람은 김석범, 김찬규(김백일), 김홍준, 강재호, 신현준, 송석하, 구동욱, 홍청파, 백선엽, 오문강 등 10명이다.
진상규명 보고서(2권)를 살펴보면 이 같은 결과는 반민규명위가 조사와 판정시 법에 따라 '지위'가 아닌 '행위'를 중심에 두고 자료에 의해 입증된 경우만 친일행위로 인정하는 증거주의 원칙을 지켜야 했던 것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고서에는 법에 정해진 친일반민족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는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해방 직후 활동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관련자(767명) 중 3분의 2인 516명은 조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관심이 컸던 박정희 전 대통령(만주군 중위), 정일권 전 국무총리(만주군 대위), 김창룡(만주군 헌병하사관), 신상묵(헌병하사관) 등이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같은 이유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총 25권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9/28/yonhap/20230928070043258rlth.jpg)
반면 백선엽 장군의 경우 간도특설대 소속 장교로 근무하면서 만주지역 항일세력 토벌(전투)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다수 공개돼 있는데, 상당수는 본인의 회고록이다. 진상규명 보고서(13권)에는 백선엽 장군이 경향신문 연재 글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군과 나'(대륙연구소출판부 1989년)와 일본에서 출간한 회고록인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2000년), '한국전쟁 1천일'(1988년), '대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1993년)에 기록된 내용들이 판정의 근거 자료로 수록돼 있다.
백선엽 장군은 '군과 나'에서 간도특설대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중국 팔로군(홍군)과 전투를 치른 사실을 회고했으며, 일본 출간 회고록에서도 항일무장세력(게릴라)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팔로군과 10여회 교전한 사실을 밝혀놨다. 특히 '대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에선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인 항일세력과도 싸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전 대상에 조선인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위를 판정하는 별도의 기준이 되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백선엽 장군 회고록 [아마존재팬·알라딘서점 홈페이지 캡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9/28/yonhap/20230928070043509eael.jpg)
간도특설대에서 조선인 선임지휘관을 했던 김석범 등이 1987년 펴낸 만주국군 약사인 '만주국군지'도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위 판정 근거 자료로 수록돼 있다. 이 책자에는 간도특설대 근무 장교들의 상세한 명단 등이 나와 있다.
간도특설대를 조명한 국내 첫 연구서인 '간도특설대'(김효순)에는 국내외 관련 자료들이 망라돼 있는데, 간도특설대의 실제 모습을 규명하는 사료로서 '만주군국지'와 함께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내용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반민족규명법(제24·28조)은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나 관계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주고 판정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보장한다. 진상규명 보고서(2권)를 보면 백선엽 장군은 2009년 10월 반민규명위에 간도특설대 활동 당시 직접 토벌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의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별도 소송을 제기하진 않았다.
2004년 논문 '해방 후 만주국군 출신 한인의 귀환'(박민영) 등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만주국군에 소속된 조선인 장교는 200여명으로 일제 패망 후 귀국해 우리나라 군대에서 커다란 인맥을 형성했다. 이 중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50여명은 장성급 군인이 됐고, 일부는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정치권력의 정점에까지 올랐다.
![만주국군 장교 출신의 한국군 간부 [논문 '해방 후 만주국군 출신 한인의 귀환'(박민영) 발췌]](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9/28/yonhap/20230928070043644ypu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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