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엉뚱한 술 산다...스카치위스키 라벨 읽는 법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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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매장을 몇 바퀴 돌아보는 동안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어. 내가 분명히 ‘일본에서 꼭 사야 하는 위스키 목록’을 보고 왔거든? 근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그 매장에서 제일 멋있게 한자가 휘갈겨진 술병을 하나 집은 거거든. 딱 봐도 좋은 술 같지 않냐?”
최근 일본에 다녀온 친구가 위스키를 하나 사 왔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뒤늦게 위스키 열풍에 합류한 친구가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 “요즘은 재퍼니즈 위스키가 대세”라는 말을 기억해낸 것이지요. 그가 자랑스럽게 내민 것은 일본 고급 사케인 ‘닷사이’. 위스키를 사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케로 둔갑한 술을 보며 당황하는 모습이 애잔했습니다. 그날의 사케는 맛있었지만, 위스키를 마시겠다는 본래 취지와는 방향성이 살짝 달라졌습니다.
위스키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원산지와 재료에 따라 이름도 바뀌니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엉뚱한 술을 사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마시거나 여기저기 나눠준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핵심만 추렸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스카치위스키 라벨 읽는 법.
스카치위스키는 의무적으로 위스키의 상표, 종류, 용량, 도수를 표기해야 합니다. 그 외 선택적으로 숙성 연수, 오크통의 종류, 색소 첨가 여부 등을 표기합니다. 증류소들은 판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매우 구체적으로 표기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규정에 따라 최소한으로 넣기도 합니다.

1. 가장 큰 글씨를 찾는다.
높은 확률로 가장 굵고 큰 글씨가 증류소 이름입니다. 본인들의 아이덴티티인 만큼 라벨 뒤편이나 안 보이는 곳에 숨기진 않습니다. 증류소의 이름과 브랜드가 파악됐다면, 병에 담긴 위스키의 특징을 예측해 볼 수가 있겠지요. 예를 들어 라프로익 증류소의 경우 피트의 요오드나 병원향 등을 상상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2. 위스키의 종류와 용량
증류소 이름을 찾았다면 근처에 생산 국가나 지역, 위스키의 종류가 표기돼 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위스키면 스카치위스키, 그 외 다른 나라에서 만들었다면 해당 국가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또 단일 증류소에서 100% 맥아만 사용해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인지, 곡물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를 싱글 몰트와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인지 등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 용량은 라벨 하단부에 작은 글씨로 리터(l)나 센티 리터(cl) 또는 밀리리터(ml)로 표기돼 있습니다.
3. 숙성 연수
위스키병에 큼지막하게 적힌 숫자는 숙성 기간을 나타냅니다. 위스키는 오크통에서만 숙성이 진행되고 병입되는 순간 중단됩니다. 마트에서 구매한 12년 숙성된 위스키를 신줏단지 모시듯 오래 보관한다고 20년이 되진 않습니다. 숫자가 없는 제품들은 숙성 연수 미표기(No Age Statement), 줄여서 나스(NAS)라고 부릅니다. 스카치위스키 규정상 3년 이상 숙성을 원칙으로 해서 나스 제품도 최소 3년은 숙성됐다고 보면 됩니다. 간혹 년 산과 숙성의 차이를 헷갈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년 산은 와인에서 빈티지 용어로 사용되는 개념인데 위스키는 별도로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은 이상 숙성 연수를 표기했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라프로익 10년은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10년 동안 숙성시켰다는 의미입니다.
4. 알코올 도수
높은 도수에 혀가 절여진 분들은, 최종 병입 과정에서 위스키에 물을 탔는지가 매우 중요할 겁니다. 라벨에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라는 글귀가 보이면 위스키 원액에 물을 섞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40~48도로 딱 떨어지는 위스키들은 원액에 물을 희석해 도수를 맞춘 것입니다. 반면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들은 50~60도 전후로 병입되는데 캐스크마다 도수가 조금씩 달라서 숫자가 균일하지 않습니다.
5. 오크통의 종류와 크기
위스키 맛의 70% 이상은 오크통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도 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 할 항목이겠지요. 선택 사항이지만 라벨에 호그스헤드(Hogshead), 쿼터캐스크(Quater Cask), 셰리 버트(Sherry Butt) 등 오크통의 크기를 알려주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오크통의 크기는 위스키 원액의 증발량, 숙성 속도 등 전반적인 맛에 영향을 줍니다. 오크통이 클수록 증발량이 적고, 위스키가 나무와 닿는 면적이 작아서 오랜 숙성이 필요합니다. 대신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스키가 더 복합적인 풍미를 자아냅니다. 반대로 오크통이 작을수록 증발량이 많고, 위스키와 나무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하므로 숙성 시간이 빨라집니다. 그만큼 오크통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진한 맛이 우러납니다. 대표적으로 대만의 카발란 증류소, 국내 쓰리소사이어티스, 김창수 위스키가 빠른 숙성 속도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피니싱(Finish)’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최종 숙성 단계에서 추가로 맛을 내기 위해 오크통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6. 색소와 냉각 여과
라벨에 ‘내추럴 컬러(natural color)’, ‘넌 컬러드(non Coloured)’ 같은 문구가 없다면, 색소 사용을 의심해 보셔도 됩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박색 위스키라면 누구나 입맛을 다시듯 증류소도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모양입니다. 스웨덴이나 독일은 색소 포함 여부를 라벨에 표기해야 됩니다. 하지만 스카치위스키들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불필요한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색소가 불매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위스키 색이 좀 옅더라도 내추럴 컬러가 자연스럽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합니다. 보기에 예쁘다고 맛도 좋은 건 아닙니다.
혹시 위스키병 바닥에 부유물이 떠다니는 걸 본 적 있으신가요? 놀라지 마세요. 이것은 위스키의 풍미를 만들어주는 지방산과 에스터 등이 응고되어 생성된 물질입니다. 특히 추운 날 위스키 색이 탁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을 ‘헤이즈(Haze)’ 현상이라고 합니다. 가끔 불량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체에 해가 없으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몇몇 증류소들은 술이 탁해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 여과를 하는데 이 공법을 칠 필터링(chill filtering)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게 되면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깔끔하고 선명한 위스키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조 과정에서 생성된 물질들도 위스키 고유 맛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해져, 냉각 여과를 거치지 않은 언칠 필터(non chill filtered)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냉각 여과 여부는 제조 과정의 차이일 뿐 뭐가 더 좋고 나쁜지는 따지기 어렵습니다.
위스키 라벨은 신분증과 같습니다.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항목별로 방대한 우주가 담겨 있어 한번에 담지는 못해 라벨의 간단한 구성에 대해서만 다뤄봤습니다. 라벨만 꼼꼼히 읽어도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맛일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엉뚱한 술로 지갑이 얇아지는 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제 당당하게 주류 숍에 들어가서 위스키 라벨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위스키는 알고 마시는 게 더 재밌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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