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명절에 전 부쳐요”... 캠핑 음식 매출 ‘쑥’·반찬가게 ‘북적’
최대 12일 황금연휴… 캠핑 관련 매출 30% 이상 ↑
차례상 음식은 반찬가게에서 예약 구매
“추석 연휴 때 남편과 전북 부안에 있는 펜션에 가서 쉬다 오기로 했어요. 양가 부모님은 연휴에 각각 하루씩 찾아뵙고 식사만 하기로 했거든요.”
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현지(30) 씨는 이같이 말했다. 여행 가서 먹을 음식을 사러 남편과 장을 보러 왔다는 그의 카트에는 컵라면, 생수, 즉석밥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김 씨는 “양가 부모님 댁은 하루씩 들러 식사만 하고, 나머지 연휴는 남편과 둘이 보낼 예정”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시기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제대로 못 갔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국내 여행이라도 가기로 했다”라고 했다.
◇ 여행 관련 식음료 매출 증가... 10월 2일 대체공휴일 지정에 더욱 불티
이날 찾은 대형마트에는 명절 음식뿐 아니라 즉석밥, 라면, 고기, 캔맥주 등 여행용 식·음료를 담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여행 준비 객들이 많이 보였다.
실제 관련 매출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 28일 롯데마트·홈플러스·이마트 등 대형마트 3사에 따르면 여행 관련 식·음료 매출이 전부 늘었다. 롯데마트의 여행 관련 식·음료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0%, 홈플러스는 19%, 이마트는 1.5% 증가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첫 황금연휴로 최소 6일에서 최대 12일을 쉴 수 있는 명절 연휴가 생기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대형마트에서 만난 송 모씨(39)는 이달 초 10월 2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되자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갈 캠핑장을 예약했다. 그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과 캠핑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연휴가 생겨 갈 수 있게 됐다”라며 “아내와 마실 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라면과 고기 등 캠핑 가서 먹을 음식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긴 연휴가 생기면서 이미 몇 주 전부터 소비자들이 온라인몰로 캠핑용품을 구매하고 있다”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이번 달 캠핑 카테고리 매출이 최소 30% 이상은 늘었다”고 설명했다.
◇ 차례상 준비는 간편식이나 반찬가게
차례를 최소화하고 친인척이 모이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며 간편식이나 반찬가게를 이용해 명절 음식을 마련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추석 연휴 전 2주 동안 롯데마트의 명절 간편식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홈플러스는 91%, 이마트는 22% 늘었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50대 박 모씨의 카트에는 식혜, 모둠전 간편식, 계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차례는 안 지내는데 그래도 명절 음식은 있어야 하니까 냉동 전을 사서 계란만 입히려고 한다”며 “예전엔 작은 집·시누이 식구들도 다 모여 엿기름으로 식혜까지 만들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각자 식구들끼리 여행 가거나 집에서 쉰다”고 했다.
마트 간편식 시식코너 직원은 “모둠전 1~2봉지만 사서 그대로 차례상에 올리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식혜도 하루에 1ℓ 10통 이상을 시음에 쓸 정도로 많이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남편과 추석 준비를 하러 온 박혜숙(64) 씨는 ‘비비고’ 동그랑땡을 시식해 보고는 한 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그는 “매년 명절마다 돼지고기에 양파 등을 넣고 직접 동그랑땡을 만들었기 때문에 30년 만에 동그랑땡을 처음 사본다”며 “외아들 내외가 연휴에 미국으로 여행을 가서 음식을 해봤자 먹을 사람이 없어 간단히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반찬가게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반찬가게 직원들은 각종 재료에 계란 물을 입혀 꼬치전, 동그랑땡, 육전, 명태전 등을 부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진열된 전을 살펴보며 주부 한승아(35)씨는 “오늘 불고기랑 나물은 샀는데 전은 미리 사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일 다시 와서 구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차례상 음식은 종류가 여러 가지라 재료를 하나씩만 사도 식구보다 너무 많이 구매해야 한다”며 “결국은 음식이 다 남아서 처리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에 다섯 식구가 1~2끼 먹을 만큼만 사서 먹는 것이 깔끔하다”라고 했다.
주부 전나영(33) 씨는 “전은 동네 반찬가게에 이미 주문해 놨다”며 “차례상에 딱 필요한 소량만 예약해서 내일 찾으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찬가게에서 구매하면 내가 원하는 전 6종류를 골라 주문할 수 있어서 좋고 마트에 파는 간편식보다는 좀 더 ‘집밥’ 느낌이 난다”며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더 저렴한데 노동력도 안 들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명절 준비 풍속 변화에 대해 ‘개인의 즐거움’과 ‘맞벌이 증가에 따른 식구들과의 시간’을 중시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요즘은 개인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족을 더 신경 쓰는 ‘관계적 소비’를 하는 경향이 옅어지고 있다”며 “명절 음식 준비도 개인이 더 편하고 즐거운 쪽이 ‘간편함’이다 보니 밀키트나 간편식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환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유통학회장) 역시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여유 시간의 가치가 올라갔다”며 “명절에도 최대한 짧게 형식적인 부분들을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혼자 혹은 식구들끼리만 보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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