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대구, 술은 부산… 지방서 불붙는 유행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리복’은 지난 5월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를 대표하는 대형 단독매장)를 열었다. 장소는 서울이 아닌 대구 동성로. 이곳에는 칼하트와 오니츠카타이거, 엄브로, 나이키, 파타고니아, 아디다스, 자라, H&M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대형 매장 10여 곳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리복 관계자는 “동성로는 20~30대가 몰리는 지역일 뿐 아니라 소비자 씀씀이는 수도권 못지않게 큰 편”이라면서 “트렌드가 빨라 전국으로 유행을 확산시키기 좋으면서도 임차료는 서울에 비해 저렴해 글로벌 브랜드들이 대구를 먼저 찾는다”고 말했다.
국내 온라인 패션몰 1위 업체 무신사도 지난 22일 대구 동성로에 전국 최대이자 지방 최초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서울 홍대점과 강남점을 합친 것과 맞먹는 크기(1762㎡)다. 무신사 관계자는 “대구 동성로는 하루 최대 유동 인구가 50만명으로 ‘유커 없는 명동’이란 별명으로 불린다”면서 “규모 있는 편집숍과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찾는 테스트베드(시험장)가 대구”라고 했다.
한때 서울 강남·명동 중심이었던 유행의 출발점이 최근 다변화되고 있다.요즘엔 대구·부산·청주·제주를 테스트베드 삼아 시작된 트렌드가 서울보다 먼저 빠르게 전국권으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서울보다 임차료가 저렴해 가성비가 좋고, 도심 크기도 작아 유행 확산이 오히려 더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바야흐로 ‘테스트베드의 지방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테스트베드의 지방화(地方化) 시대
지난 23일과 24일 이틀 새 충북 청주의 구(舊)청주시청 앞 2000㎡(600여 평) 광장에 방문객 3만명이 몰렸다. ‘청주 디저트 베이커리 페스타’ 때문이다. 제과점·음식점 등 35개 업체가 참가한 지역 축제지만, 전국 각지에서 디저트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것이다. 일부 인기 제과점의 소금빵·바게트 제품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맛집 안내서 ‘블루리본 서베이’의 김은조 편집장은 “청주는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디저트의 유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히고 있다”면서 “’치즈빙수’ ‘말차파르페’ ‘생크림오믈렛’ 같은 독특한 디저트도 청주에서 생겨 퍼져나갔고, 청주시도 이에 디저트·베이커리 축제까지 열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부산은 주류(酒類) 업체들이 즐겨 찾는 테스트베드 도시다. 롯데주류 ‘순하리’, 무학의 ‘좋은데이’ 같은 소주가 모두 부산 대학가 주점에서 제일 먼저 출시돼 전국권으로 유통망을 넓힌 경우다. 항구 도시에다 관광객이 많이 몰려 소비자들은 신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고 유행에도 민감한 편이라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맥주 아사히슈퍼드라이도 국내에 들어올 때 부산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짐빔 하이볼도 지난 8월 부산 광안리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소셜미디어와 두 시간 생활권의 결합
해외 명품 업체들은 제주도를 테스트베드로 삼는 추세다. 샤넬, 버버리, 펜디, 불가리 같은 업체들이 잇따라 제주도 중문 등지에 프라이빗 살롱이나 팝업스토어를 잇따라 열고 있다. VIP 손님들이 휴가를 보낼 때 상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판매하면 매출이 크게 오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테스트베드의 지방화는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초(超)단거리 생활권 확장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날로 그물망이 촘촘해지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검색만 하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KTX와 SRT의 발달로 전국 어디든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된 것도 테스트베드의 지방화를 앞당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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