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PK는 목마르다
1년도 길기만 한데 4년이 짧게만 느껴지는 곳이 서울 여의도다. 돌아서면 선거철이다. 이제 추석연휴가 끝나고 코끝에 찬 바람이 느껴진다 싶으면 여의도는 곧장 총선 모드로 접어든다.
정치권에서는 PK 민심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최근 한 달 여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하락하며 TK 민심과는 확연히 따로 논 탓이다. 오히려 전국 평균치에 수렴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지부진하던 PK 지지율은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 부산 엑스포 세일즈에 집중했던 지난 주말을 거치며 깜짝 반등해 지역 민심이 정책 이슈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줬다.
PK는 어느 지역보다 ‘정치적 갈증’이 높은 지역인데 구체적인 정책의 결과물이나 지역 정치인들의 면면이 이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부산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끌었다는 특유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있다. 반대로 제2의 도시임에도 쇠퇴하는 지방의 ‘맏이’로서 박탈감은 크다. 높은 기대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전문가들은 ‘정치적 갈증’으로 규정한다.
한 전문가는 “정부·여당으로선 PK가 아웃퍼폼(기준치 대비 상승)을 하면서 때로는 버텨주고, 때로는 끌어주고 해야 하는데 최근 PK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곤혹스런 대목일 것”이라면서 “TK 대하듯 PK를 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PK가 기본적으로 야세(野勢)가 30% 안팎으로 탄탄하게 형성된 측면이 있고, 이념적 충성도는 TK에 비해 약하다는 점, 2030 엑스포, 가덕 신공항 등 주요 정책의 약발이 당장 와 닿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반면 후쿠시마 오염수 이슈에 따른 타격은 큰 편이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부산의 정치적 갈증의 한 원인으로 지역 정치인들이 제대로 떠받쳐주지 못하다는 점을 꼽는다. 지난 총선에서 부산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 됐지만 초선 가운데 한 두명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인물을 찾기 힘들고, 중진들 중에도 과거 국회의장이나 대선주자 급으로 PK 구심점이 될 대표주자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용산에서 총선 차출용 참모 리스트를 당에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여권 내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를 예고하고 있다. 어차피 치열한 본선이 예고돼 후보 찾기가 어려운 수도권이나, 무리 없이 윤심(尹心) 공천이 가능한 TK와 달리 윤심과 당심의 충돌이 가장 첨예하게 벌어질 곳은 PK일수밖에 없다. 부산 현역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부산의 한 초선 의원은 “정권 창출을 위해 우리가 힘들게 전국 다니면서 고생할 동안 지금 대통령실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역할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느냐”고 견제구를 날렸다. 다만 이제는 대선 때 공으로만 시민에게 어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용산 차출이 인재 풀을 넓혀 PK 주민들의 선택지를 넓히는 길이 될지, 아니면 현역 의원들과 갈등을 야기해 자멸하는 길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 평론가는 “내가 만약 여당의 전략가라면 제일 먼저 PK 지지율부터 끌어 올린 뒤 수도권 중원으로 가는 전략을 짤 것”이라면서 “지방소멸에 맞서 제2도시 위상에 맞는 구체적 효과가 있는 정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꽂으면’ 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 몇 차례 선거를 통해 입증된 만큼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6번이나 부산을 찾은 것도 이 같은 민심 달래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전통시장 방문해 찾아 시민 만나고 사진 찍고 가는 것만으로 민심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뉴욕서 닷새간 41회나 양자회담을 가지며 보여준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려는 진심, ‘서울과 부산 양대 축으로 작동되는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말이 아닌 진심임이 전달돼야 한다. 누가 PK 주민들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내년 4월 총선의 승패는 여기에 달렸다.
정유선 서울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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