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서광원의 자연과 삶]〈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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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의 세상에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다.
요즘처럼 하늘은 높고 바람까지 좋은 가을날, 물가에서 볼 수 있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는 개구리와 잠자리다.
잠자리들에게 가을은 한가할 틈도 없고, 한가로울 수도 없는 시간이다.
물론 호락호락 당할 잠자리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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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들에게 가을은 한가할 틈도 없고, 한가로울 수도 없는 시간이다. 이들에게 가을이란 오로지 하나의 의미다. ‘겨울이 오고 있다!’ 그러니 생의 과업을 위해 하루빨리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마쳐야 한다. 물가에서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물속이나 물속 수초에 알을 낳기 위해서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위기는 이런 중요한 대목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물 근처를 오가는 어느 순간, 난데없이 휙 날아오는 게 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좇고 있던 개구리가 특기인 혀를 포탄 쏘듯 던지는 것. 뭉툭한 권투 글러브에 줄이 달린 것처럼 생긴 개구리 혀는 앞쪽에 접착제 같은 물질이 있어 목표물에 닿는 순간, 착 붙들어 순식간에 끌고 간다.
물론 호락호락 당할 잠자리들이 아니다. 2억 년도 훨씬 넘은 아득한 시간 동안, 그러니까 공룡보다 먼저 나타나 지금까지 살아온 생명력의 소유자 아닌가. 이들은 2만8000여 개나 되는 낱눈으로 거의 360도 시야를 커버할 수 있는 데다 순간 가속도가 시속 30∼40km, 최대 50km나 된다. 휙 날아오는 위기를 쓱 피할 수 있다.
개구리들 역시 이걸 잘 알기에 비장의 무기를 하나 더 동원한다. 스프링처럼 펄쩍 뛰어오르는 점프다.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할, 앉은 자리에서 자기 몸의 두세 배 높이를 뛰어오르며 ‘혀 미사일’을 날린다. 잠자리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다른 곤충들은 양쪽 날개를 교대로 젓지만, 이들은 4개의 날개를 제각각 움직여 수직과 하강, 정지 비행은 물론이고 일부는 후진까지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드론 회사들이 감탄하는 이런 능력으로 미사일을 헛수고로 만든다.
개구리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집요하게 공격하고, 그래서 성공하기도 하기에, 우리가 볼 때 둘의 관계는 쫓고 쫓기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듯 보인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전생(前生)’에서는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체가 되기 전, 유생(幼生·유충) 시절을 거치는데, 물속 생활을 하는 이때에는 잠자리 유충이 무서운 포식자가 되어 날이면 날마다 올챙이들을 쫓는다. 기다란 열차처럼 생긴 몸과 무서운 턱을 가진 잠자리 유충에게 올챙이들은 시쳇말로 ‘밥’이다. 인생 역전이 따로 없다.
얼마 전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잘나간다고 기고만장했던 게 부끄럽다”고 했다. 세상은 변하고 그래서 고정된 운명 같은 건 없다. 잘나갈 때 조심하고, 못 나간다고 기죽지 말 일이다. 삶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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