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낮고 낮은 집들
한번은 남태평양 섬에 갔다. 하루는 이런 전설을 들었어. 해변의 야자수들이 태풍에 부러지고 꺾인 후, 그 황량한 풍경 앞에서 원주민들이 망연자실. 하지만 추장님은 벌떡 일어나 어린 야자수 몇몇을 골라 위에다가 큼지막한 돌을 하나씩 올려놓는 의식을 베푼대. 그리고 이듬해 바닷가에 다시 찾아가면 다른 나무들이 두세 배 키를 높일 때 여전히 돌을 짊어진 야자수들은 제자리걸음. 이제 돌을 땅에 내려놓고 나무에 이렇게 당부한대.
“남들은 다투어 하늘로 높이 솟구칠 때 너희들은 무겁고 힘든 돌을 머리에 이고서 얼마나 힘들었니. 하지만 그동안 너희들은 누구보다 넓게 뿌리를 뻗을 수 있었단다. 이제부턴 위로 솟구쳐 오르려무나. 그래서 우리 마을을 태풍으로부터 지켜주렴. 돌을 머리에 이고 엉엉 울었을 야자수들아. 이제부터 푸른 하늘만큼 푸른 바다만큼 웃고 또 웃으렴!”
그곳의 나무들을 기억한다. 그 마을의 아침도 똑같이 닭들이 울고, 아이들이 문밖으로 쏟아져 나오더라. 병아리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침, 꼬꼬닭 두어 마리 마당을 질주하고 뒤따라 병아리떼 엄마를 따라 내달린다. 엄마가 아침 운동을 시키나봐. 하나 둘 셋 넷! 수다스러운 구령에 맞춰 버드나무집 그늘은 드넓게 해가 눕고, 밭은 닭똥밭이 되지만 또 거기서 푸성귀들이 자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집은 산골에선 드물어. 송곳니를 드러내고 무섭게 짓는 개보다는 사람이 반갑다며 발뒤꿈치를 핥는 개가 거반은 많아. ‘개조심’이라고 써붙인 집은 대부분 뻥이야~ 뻥. 머리가 찧도록 낮고 낮게 집을 짓고, 정으로 사랑으로 뿌리를 옆으로 뻗으며 손에 손을 잡지.
식혜나 물을 한잔 들고 가라 청하고, 툇마루에 앉으면 지난한 살아온 이야기들을 꺼내신다. 이 나라의 주인인 사람들의 이야기. 이 나라 겨레의 산 역사. 부디 가가호호 한가위 복되고 따숩기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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