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현장은 아직 90년대" 추석 앞두고 50대 택시기사는 왜 분신을 택했나

최나실 2023. 9. 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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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일 동안 1인 시위해온 방영환 분회장
2019년 노조 설립 후 부당노동행위 겪어
2년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월급 100만원
"완전월급제"... 고용부 "법 위반 살필 것"
지난해 10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 택시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택시 완전월급제 정착과 체불임금 지급 등을 주장하며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온 15년 경력의 50대 택시 노동자 방영환씨가 분신을 시도해 위중한 상태다. 방씨가 속한 공공운수노조 등은 "택시 노동자를 분신으로 내몬 사업주를 처벌하라"며 항의했다.

27일 공공운수노조와 노동당은 서울 양천구 소재 택시업체 해성운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곳에서 227일 동안 1인 시위를 이어오던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방영환 분회장이 어제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며 "그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완전월급제가 적용되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완전월급제 적용을 거부하고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월급 100만 원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전날 오전 8시 26분쯤 해성운수 앞 도로에서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곧바로 병원에 이송된 그는 전신의 73%에 화상을 입었고 이 중 3분의 2가량이 3도 화상으로 매우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의사가 회복이 빠를 수 없고 쉽지도 않다고 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2018년 8월 27일 전북 전주시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설치된 25m 상공 고공 농성장에서 택시 노동자 김재주씨가 사납금제 폐지를 위한 농성 358일 차를 맞고 있다. 택시 노동자들의 수십 년간의 투쟁으로 2020년 1월 사납금 제도가 공식 폐지되고 '전액관리제'가 도입됐으며, 2021년 1월엔 서울부터 우선 주 40시간 택시 월급제를 규정한 택시발전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실상은 '유사 사납금제'인 기준금 제도가 등장하면서, 도리어 이전보다 상황이 열악해졌다는 게 현장 전언이다. 전주=김혜영 기자

과거 법인택시 기사는 하루 수입 중 일정액을 차량 대여·관리비 명목의 '사납금'으로 회사에 내고, 차액을 가져갔다. 기사들은 사납금 제도가 열악한 수입과 생계 불안정, 장시간·위험 운전을 조장한다며 철폐를 요구했고, 결국 2020년 1월 사납금제 전면 폐지 이후 '전액관리제'가 도입됐다. 하루 수입 전액을 회사에 내면 각 업체마다 기준에 따라 월급 형태로 임금을 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유사 사납금제'인 기준금 제도가 등장하면서, 제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노동 환경이 열악해졌다는 불만이 커졌다. 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해성운수 사업주를 비롯한 서울 택시 사업주들은 사납금제를 변형한 기준금제를 통해 여전히 택시 노동자를 착취한다"면서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지금 당장 서울 법인택시 사업장을 전수조사해서 법에서 명시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8년 택시 운전을 시작한 방씨는 2017년 해성운수로 전근한 뒤 2019년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이후 사측이 폐차 직전 차량을 배차하고, 사납금 기준에 월 200만 원씩 미달한다는 이유로 급여를 주지 않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이어졌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2020년 2월 부당해고를 당한 방씨는 대법원 3심까지 이어진 2년여간 소송 끝에 승소해 지난해 11월 복직했다. 이후 주 40시간 근무를 해도 월 100만 원 남짓 월급을 받고, 5월부터는 급여 전액을 못 받았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고용부는 이날 "(해성운수의) 노동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공공운수노조와 노동당 관계자들이 해성운수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4명이 퇴거 불응 혐의로 양천경찰서에 연행됐다.

방영환씨가 회사를 상대로 싸우며 직접 썼던 글 일부
난 택시 노동자다.
2008년 1월 5일 택시 자격증을 취득하여 처음으로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다. 택시 현장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야간 근무를 하면 취객 승객들 때문에 파출소를 시도 때도 없이 가야 했고 수없이 실갱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택시 현장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가끔가다 팁을 주는 승객도 있고 친절한 승객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택시 직업의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게 한 것은 택시 사업주들이었다.
세 군데 택시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정말 택시 자본가들의 횡포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중략) 2019년 7월 2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 분회를 설립하였다. 조합원 2명으로 시작해 7명으로 늘어가고 있을 때부터 노동탄압은 시작됐다. (중략) 노조 설립 이후 7년간 야간만 근무해왔던 저를 주·야간으로 승무 변경하고, 신차량에서 폐차 직전 차량을 배차하고, 30도 넘는 한여름에 에어컨 고장 난 차량을 끌고 나가라고 하는 등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에 3시간 30분만 승차하라고 하면서 급여는 월 200만 원씩 마이너스라고 하면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중략) 2021년 1월 1일부터 서울시부터 택시 완전월급제가 시행되었으나 D그룹 18개 계열사 사업주는 온갖 꼼수와 불법으로 완전월급제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니 모빌리티 플랫폼 시대를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택시 현장은 199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택시 노동자 인권을 탄압하고 권리를 억압하고, 임금 착취 같은 일이 2021년에도 버젓이 택시 현장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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