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 랍스터, 초현실주의 예술가 되게끔 영감 주죠"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9. 27. 16: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팝아트 작가 필립 콜버트
3m 대형 조각작품 '페인터'
메이필드호텔에 선보여
길면 100년 넘게 사는 랍스터
고대부터 삶과 죽음 의미로
분신처럼 여기며 작품에 활용
"예술가는 환상을 만들어야"
내년 2월까지 서울 메이필드호텔 야외 정원에 전시되는 자신의 조각품 '더 랍스터 페인터' 앞에서 집게손 모양을 만들어 보인 필립 콜버트. 메이필드호텔

새빨간 랍스터를 자신의 분신으로 삼은 남자가 있다. 랍스터를 자처하며 강렬한 빨간색 정장과 선글라스로 무장한 팝 아티스트 필립 콜버트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뒤를 이어 새롭게 '메가 팝 아트'를 개척했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예술계가 주목하는 전방위 작가다. 회화·조각·디지털아트·디자인 등 그의 작품 속 귀여운 랍스터 캐릭터는 예술가적 페르소나다. 랍스터를 통해 현재와 과거, 예술과 철학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대표적인 랍스터 거대 조각 네 점이 내년 2월까지 서울 강서 메이필드호텔 야외 정원에서 무료로 전시된다. 호텔 개관 20주년 기념 '비욘드 더 필드' 기획전이다. 콜버트는 전시와 연계한 와인페어 행사 참석차 나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9년 첫 방한 이후 꾸준히 국내 전시·행사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 23일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랍스터는 내가 초현실주의 예술가가 되게끔 영감을 준다"고 표현했다. 불로장생하는 생물 랍스터는 고대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함유했고, 20세기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오브제 '랍스터 전화기'에선 현실과 환상,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뒤흔든 초현실주의 상징물이 됐다. 콜버트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랍스터를 자주 접했던 개인적 친숙함에 더해 "그런 상징에 매료됐다"고 한다. 행사 전 편하게 입은 차림새조차 랍스터가 그려진 야구 모자와 재킷이다. 갑각류는 입에도 대지 않는 식성이라 하니, 확실히 그에게 랍스터는 식재료보단 '동족'에 가깝다.

이번 전시 작품 중 높이 3m에 달하는 '더 랍스터 페인터'는 국내에선 처음 선보인다. 초록색 정장 속 키 큰 랍스터가 흘러내리듯 휜 붓을 들고 있다. 그는 "내 자화상"이라고 소개했다. "붓의 형태는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에서 빌려왔어요.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를 암시하죠. 또 그림 그리기는 때론 절망감을 주는데, 녹아내리는 붓으로 그린다면 더 힘들 수밖에 없죠. 그런 감정 표현을 담았어요." 이미 유명한 '랍스터 수프 캔' '랍스터 스팸 캔' '랍스터 바나나' 등의 작품은 워홀의 대표작 등을 재해석한 것이다.

조각의 거대한 물성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예술의 본질은 상상의 자유라고 생각한다"며 "작품은 얼마든지 거창하고 거대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꼭 크고 작음의 문제는 아니지만, 크기는 분명 초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표현법이죠. 주변 환경을 장악할 수도 있고요. 현실과 환상의 관계는 정말 흥미로워요. 어쨌든 현실도 일종의 환상이니까요. 환상을 계속해서 다채롭게 만드는 게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메가 팝 아트'의 의미를 디지털 기술과의 연계에서 찾는다. 각종 소셜미디어로 대량의 이미지에 포화된 지금의 상태가 바로 '메가 팝' 혹은 '하이퍼 팝'이다. 콜버트는 "하이퍼 팝은 우리 시대의 매체"라며 "그 경계에 질문을 던지며 확장해가면서 작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했다.

앞서 메타버스, NFT 관련 작업을 했고, 지난해 말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랍스터봇' 프로젝트도 선보였다. 지금은 AI를 소재로 한 회화 작업에도 매진하고 있단다. 랍스터 군대와 돌연변이 AI 캐릭터가 전투를 벌이는 그림인데, 인간과 AI 사이의 긴장감을 나타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AI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반대하는 건 아니다"며 "아주 흥미롭고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도구다. 계속 탐구하고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생성형 AI의 학습·창작 과정에서 불거지는 저작권 논란에선 규제보다 개방에 방점을 찍었다. "시를 쓸 때도 단어를 자유롭게 가져다 조합하듯이, 팝 아트에서도 많은 이미지가 많은 사람에게 공개돼야 합니다. 다만 위조나 사기까지 옹호한다는 건 아닙니다. 예술은 진정성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지만, 남의 목소리를 자신의 것인 척할 수는 없죠."

여기엔 "문화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철학도 깔려 있다. 전통적인 갤러리나 박물관이 아닌, 호텔 정원의 열린 공간에 기꺼이 작품을 내준 것도 그래서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뚫린 하늘 아래 방문객 누구나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행여 작품이 손상되지 않겠냐는 말에는 "오히려 야외에 작품을 둔 게 좋다"며 "강철로 만든 조각은 자동차와 비슷해 바깥 환경을 견딜 수 있다"고 답했다. "다양한 경계를 연결하고 넘나드는 것에서 큰 영감을 받아요. 새로운 장소, 새로운 관객과 만나는 것도 좋고요.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엔 항상 열려 있답니다."

[정주원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