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황금연휴’라는데...“7박 8일 좁은 숙직실에 갇혀 있어야”
학교에 한달 동안 288시간 있는데 월급은 97만원...“쓴 웃음만 나와”
(시사저널=대전=이해람 인턴기자)
"감옥 생활이지 감옥 생활, 한국에서 이러는 게 상상이나 돼요?"
대전지역 모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당직경비원 정윤철(가명·59)씨가 격분을 쏟아냈다. 학교 당직경비원들은 주말과 공휴일에는 24시간 동안 학교 숙직실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추석도 마찬가지다. 대체공휴일이 생기면서 '황금연휴'를 앞두고 있지만 당직경비원들에게는 고역과 다름없다. 정씨는 6일 중 3일, 격일 간 총 72시간 학교에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대구 지역 당직경비원들은 명절을 통째로 잃은 상황이다. 대구 초·중등학교 당직경비원들은 혼자 7박 8일간 숙직실에 머물러야 한다. 대구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당직경비원 이동근(58)씨는 "고향에 방문하고 싶지만 꿈도 꿀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감시·단속적 근로자'기 때문에 장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은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본다. 해당 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 및 휴일에 대한 규정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휴게시간에 돌발상황이 발생해 근무를 하더라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숙직실에 있는데...9시간만 근무 인정돼
9월19일 오후 대전 모 초등학교에서 만난 정씨는 학교 순찰을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다. 그는 한 손에 손전등, 다른 한 손에는 3단봉을 쥐고 있었다. 지난 8월 대전 대덕구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외부인이 교내에 침입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하며 불안감이 증폭됐다. 8월28일에는 유성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복도에서 칼을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정씨는 "칼부림 사건이 학교에서까지 발생하니 불안하기 그지없다"며 "보안장치라도 울리면 심장이 떨린다"고 전했다.
평일 정씨를 비롯한 전국 대다수 당직경비원 일정은 오후 4시30분에 시작해 다음날 오전 8시30분에 끝난다. 총 16시간동안 학교 안전을 책임지는 셈이다. 하지만 교육청이 인정하는 이들의 근로시간은 6시간뿐이다. 16시간 사이사이에 휴게시간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당직경비원들은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씨는 "혹시라도 비상 상황이 생길까 자리를 비우는 것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말과 공휴일 일정은 오전 7시에 시작해 다음날 같은 시간 종료된다. 24시간을 내리 일하는 것이다. 이중 근로시간으로 인정받는 시간은 9시간. 15시간은 휴게시간이다. 휴게시간 동안 취침을 하기도 하지만 깊은 잠에 빠지기 어렵다. 1달에 4~5번씩 반복되는 화재경비기계 오작동이나 외부인 침입은 취침시간 중 2시간가량을 강탈하곤 한다. 정씨는 "오작동인 것을 알지만 혹시 모르니 갈 수밖에 없다"며 "다녀오면 잠이 다 깨버리니 피로가 쌓인다"고 말했다.
"월 93만원으로 어떻게 세 아이 키우나요"
육체적인 업무 강도가 살인적인 것은 아니다. 허리가 좋지 않다는 정씨는 지인에게 이 일을 소개받았다. 순찰, CCTV 확인, 안전점검 등을 반복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긴 근무시간, 낮은 임금은 정씨를 당황케 했다. 정씨에게 쥐어지는 월급은 97만원 수준이다. 정씨는 "경찰 일을 하다가 은퇴한 뒤 연금으로는 세 자녀를 키우기 어려워 이 일을 시작했는데 월급이 처참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씨는 "밤새 일하고 93만원 받는다고 지인들에게 말하지도 못한다"며 "배우자에게도 부끄럽다"며 쓸쓸한 웃음을 보였다.
2015년에는 충북 충주, 광주광역시에서 학교 당직경비원이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광주 당직경비원은 73시간 연속근무를 하다 숨졌다. 이번 명절 기간 동안 정씨가 숙직실에 상주하는 시간은 72시간이다. 하지만 이중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시간은 27시간뿐. 대구지역 이씨는 9월 27일 오후 4시 30분부터 10월 4일 오전 8시 30분까지 학교에 머무를 예정이지만 인정받는 근로시간은 하루 9시간에 불과하다.
연휴동안 72시간, 일부 지역은 7박 8일간 몸을 붙여야 하는 공간임에도 숙직실 공간이 열악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좁은 단칸방에 있는 보안 및 소방 관련 기계 소음이 쏟아져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당직경비원들은 입을 모은다. 창문이 없는 경우도 있다. 대전지역 모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창문이 없어 실내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 모 초등학교 당직경비원 김아무개씨는 "벽과 천장이 갈라져 있고 쥐가 기어다닌다"며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2교대 전환하고 근로시간 추가 인정해야"
이들이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을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유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법(감단법)' 때문이다. 학교 당직경비원을 비롯해 아파트 경비원 등은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된다. 업무 특성상 업무 강도가 낮고, 근로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휴게시간이나 대기시간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근로기준법은 업무를 위한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임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63조 3항에 따라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 및 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제외된다. 교육청이 당직경비원 정씨와 이씨 업무시간 24시간 중 7~9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적은 임금만 지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셈이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당직경비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년 3월 '학교 당직기사 근로여건 개선 추진'을 발표해 "용역업체가 계약금액에 맞추기 위해 임의적으로 학교 당직기사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근무시간을 편성"하고 있다며 "근무체계를 2교대로 전환"해야 하며 인건비 비중을 상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2월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제도 개선방안'에서 "휴게시간이 근로시간보다 많아질 수 없도록 상한을 설정한다"고 정했다. 2018년 학교 당직경비원들이 대부분 교육청 직고용으로 전환됐지만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계산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지역은 2교대로 전환됐지만 대구지역은 여전히 당직경비원 1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에 박준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대구지부 조직국장은 "24시간 중 7~9시간만 인정되는 근무시간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좁은 숙직실에 소음을 발생시키는 여러 장비가 들어있는 등 환경이 열악하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름뿐인 규정을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시간외 노동을 인정하고 휴게시간을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시도교육청은 당직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전시교육청과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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