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R&D예산 삭감과 과학기술 정책의 본질

정부의 국가연구개발 예산 16.6%(5조2000억원) 삭감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기초연구가 2조4000억원(6.2%)이나 줄고, 25개 출연연 예산도 2조1000억원(10.8%)이나 깎인다는 소식에 출연연의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의 학생들까지 술렁이고 있다.
교육부도 이공계 연구개발 지원 사업을 26.6%(1442억 원)나 삭감한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효율화를 위한 조치라는 과기정통부의 변명은 몹시 옹색하다.
세계 과학계도 놀라고 있다. '사이언스'도 ‘과학기술 투자의 챔피온’인 우리의 예산 삭감 소식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우주와 바이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다는 '핑계'로 기초연구를 줄였다는 게 골자다.

● 물거품이 된 ‘연구비 100조원 시대의 꿈’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암울한 소문과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년부터 연구 현장에서 박사후 연구원이 사라지고,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과제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신진 연구자가 무려 1200명이나 줄어들게 된다는 분석도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무섭게 치솟고 있는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대형 장비를 세워두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대학에서 새로 시작하는 교수들은 연구 장비를 마련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될 형편이다.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예산이 줄어들면 70조 원에 이르는 민간의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4.9%의 연구개발 투자가 내년에는 3.9%까지 주저앉게 된다는 전망이 있다.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가 내년도 예산 삭감액의 3배에 가까운 15조 원이나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연구개발 100조 원 시대’의 꿈이 ‘카르텔’ 한 마디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 것이다.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해마다 반드시 늘려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재정 형편이 나빠지면 연구개발 예산도 축소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도 모자라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어야 했던 지난 5년 동안의 방만했던 재정 운영의 뒷감당이 쉽지 않은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일 수 있다.
실제로 정부 예산이 50% 가까이 늘어났고 국가 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방만해진 국가 재정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과학기술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학자들을 ‘약탈적 이권 카르텔’이라고 몰아붙여 놓고 2달 만에 새로 내놓은 예산은 절망적인 수준의 졸속이었다. 소부장‧감염병‧중소기업 지원이 ‘카르텔’이었다는 변명은 어떠한 설득력도 기대할 수 없는 궤변이었다.
국가 비상 상황에서 국민 설득을 위해 기재부가 긴급한 예산과 억지로 끼워 넣은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정상적인 국가연구개발 사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업의 비효율을 핑계로 삼은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꼼수였다.

●길을 잃어버린 ‘과학기술정책’
과기정통부가 강조하는 ‘과학기술정책’의 정체성이 황당하다. 과학기술 인재의 양성이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인재 양성이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이라는 오해는 학생의 적성을 억압하는 잘못된 ‘문‧이과 구분 교육’의 전통에서 시작된 착각일 뿐이다.
과기정통부가 운영하는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은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사업일 수 없다. 과기원은 일반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관리에서 드러난 난맥상을 보완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설립된 것일 뿐이다. 과학‧수학 분야의 고도 영재에 대한 과기정통부의 지나친 관심도 바로잡아야 한다. 필즈 메달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과기정통부의 영재 교육을 받지 않았다.
21세기가 요구하는 과학기술은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학자의 양성 과정에도 인문학‧사회과학‧문화예술의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고 인문사회 분야의 교육에도 현대 과학기술이 충분히 포함되어야만 한다.
현대의 과학은 이미 ‘모두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기술 인재의 양성은 명백하게 ‘교육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렵사리 되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다시 ‘교육과학기술부’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은 ‘창의적 연구개발’이다. 우리의 과학자들이 연구개발에서 훌륭한 성과를 창출하고 노하우를 축적(縮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정책이라는 뜻이다. 다른 해석은 불가능하다.
과학자가 더 효율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을 과학기술정책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자의 ‘창의력’은 상당한 수준의 비효율과 방종(放縱)을 허용하는 환경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성실한 실패를 용인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비효율에 대한 비판은 창조형 과학기술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 퍼주기 예산은 국제협력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연구기관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면서 우리 신진 연구자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 ‘국제협력’이라는 과기부의 인식은 퇴행적이다. 물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오로지 ‘우리 것’만 고집할 수는 없다. 전 세계의 모든 과학자와 열린 마음으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협력을 ‘신진 연구자의 양성’ 과정에 필요한 ‘수습’ 과정으로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가 뒤늦게 연구개발 사업을 시작하던 반세기 전의 ‘추격형 국제협력’에서도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성장한 우리에게 ‘세계 최고를 이루어 내는 현장’을 선뜻 보여줄 연구자나 연구기관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겉으로는 ‘선진창조형 과학기술’을 외치면서 국제협력에서는 철지난 ‘추격형’을 고집하는 과기정통부의 입장을 용납하기 어렵다.
무한정의 예산을 동원해서 무차별적 인해전술(人海戰術)식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퍼주기식’ 국제협력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2008년 후진타오 주석이 시작한 ‘천인(千人)계획’이 바로 그런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과학계에 남긴 부작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연구개발 사업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밀어붙인 졸속 예산 삭감 과정에서 올해 5000억원 수준의 국제협력 예산을 내년부터 갑자기 2조8000억원으로 증액한 것은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급조한 국제협력 사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한국연구재단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박사후연구원 지원 사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외국의 대학‧연구기관에게 예산을 퍼주는 것도 모자라 특허권까지 넘겨주겠다는 전제로 시작하는 국제협력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초연구와 출연연 예산을 줄여서 마련한 예산으로 밀어붙이는 퍼주기식 국제협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선진창조형 국제협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선진국의 과학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진정한 공동연구‧개발에 참여하는 ITER(국제핵융합실험로)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국제유인달탐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국제협력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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