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영화 ‘1947 보스톤’ 27일 전국 극장 개봉 [이종세의 스포츠 코너]

입력 2023. 9. 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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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손기정) 배성우(남승룡) 임시완(서윤복) 열연
‘민족스포츠’ 마라톤을 애국심 고취로 연계한 영화
1940년대 서울-보스턴 거리와 의상 등 재연에 성공

‘민족스포츠’ 마라톤을 애국심 고취로 연계한 영화 ‘1947 보스톤’을 지난 25일 저녁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육상인들과 함께 관람했다.

27일 전국 극장가에서 일제히 개봉한 이 영화의 시사회에는 한국전력 사장을 역임했던 박정기(88) 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비롯해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예상을 깨고 우승했던 김양곤(65),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마라톤 은메달리스트이자 1998년(방콕)과 2002년 아시안게임(부산) 마라톤 2연패의 이봉주(53)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원회가 2017년 보스턴육상협회와 함께 서윤복 별세를 추모하며 공개한 1947년 대회 결승선 통과 모습.
‘쉬리’‘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연출했던 강제규(61)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손기정(하정우 분) 남승룡(배성우 분) 서윤복(임시완 분) 등 한국마라톤 영웅들의 피와 땀이 얽힌 감동 실화다.

보스톤마라톤은 1897년 창설, 126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마라톤 행사로서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3명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 2001년 이봉주가 바로 그들이다.

특히 1947년 제51회 대회에서 서윤복은 2시간 25분 39초로,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수립한 세계최고기록 2시간 29분 19초를 11년 만에 경신했다. 또 1950년 6.25 발발 두 달 전 열린 제54회 대회에서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함기용 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생전 필자에게 “양정고 3학년 때 참가했는데 대회 당일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우승 기록이 2시간 32분 39초로 저조했다”고 술회했었다.

이봉주의 우승도 의미가 있다. 2000년 제104회 대회까지 케냐 선수들이 10연속 우승했던 보스톤마라톤에서 케냐의 11연패를 이봉주가 저지했기 때문이다. 기록은 2시간 9분 43초.

2시간 넘게 달리는 마라톤 레이스의 선두 그룹은 암암리에 선수끼리 견제가 심할 수밖에 없는데 케냐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독립을 만방에 알리는 모습이 클라이맥스
영화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이 일장기를 달고 뛰어 1위와 3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1946년 손기정 올림픽 제패 10주년 기념 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을 발굴하고 1947년 보스톤마라톤에서 서윤복이 정상에 올라 한국이 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리는 모습이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 겸 선수, 서윤복 등 3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은 당시 출전 경비가 없어 국민 성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미군 수송기로 며칠이 걸려 보스톤에 도착한다. 대회조직위원회에서는 미국 군정 아래 있던 한국 선수들에게 성조기가 달린 유니폼을 지급했고, 이에 손기정은 “우리는 한국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러 왔다”며 항의해 서윤복이 태극기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

4월 19일 경기에서 서윤복은 레이스 도중 관중 사이에서 튀어나온 셰퍼드에 걸려 넘어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32km 지점인 하트 브레이크(심장파열) 언덕 오르막길에서 경쟁자를 따라잡은 뒤 보스톤 시내를 맨 앞에서 달려 결승점을 1위로 통과하는 등 실화를 생생하게 재연했다. 해방 직후 서울과 당시 보스톤의 거리, 행인들의 의상 등 70여 년 전 모습을 그럴싸하게 꾸며 현장감을 높였다.

손기정, 남승룡과 동갑이지만 선배로 모셔
하지만 살아생전 손기정, 서윤복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던 필자의 기억과 영화 장면이 서로 어긋나는 대목도 없지 않았다. 손기정은 호적상 1912년 8월생이고 남승룡은 1912년 11월생이지만 평소 남승룡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손기정은 남승룡이 양정학교 선배인 데다 베를린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쳐 남승룡이 평생 자신의 그늘에 가려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손기정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등 중앙무대에서 활발한 활동한 데 비해 남승룡은 고향(전남 순천)에 묻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남승룡은 2001년 12월, 손기정은 2002년 11월 별세할 때까지 각별한 우정을 지켜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아파트에 살다가 말년에 과천 주공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손기정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필자와 동아마라톤과 관련해 잦은 만남을 가졌는데 평소 필자와의 대화에서 남승룡을 지칭할 때는 꼭 “남 선배” “남형”이라고 호칭했다.

왼쪽부터 1947 보스턴 마라톤이 끝나고 서울 경교장(사적 제465호)에서 만난 손기정, 서윤복, 김구, 남승룡.
영화에서 남승룡이 서윤복의 코치로서 손기정을 감독으로 모시는 것처럼 묘사된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남승룡은 36세의 나이에 1947년 보스톤마라톤을 서윤복과 함께 달려 2시간 40분 10초에 완주, 12위를 기록할 만큼 체력을 철저히 관리해 서윤복의 선수 생활을 도운 것은 맞지만 영화에서처럼 손기정과 감독-코치의 관계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손기정이 제과점에서 갓 구워낸 빵을 좋아해 그의 집에 갈 땐 과천 주공아파트 제과점에서 빵을 사 들고 갔었고, 신세계백화점 식당에서도 여러 차례 점심을 했었는데 꼭 비빔밥을 주문하는 소탈한 성격이었다.

서윤복, 2017년 별세…부인 혼자 생활고 시달려
필자가 서윤복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초반 그가 서울운동장 장장(場長)을 할 때였다. 달변가로 당시 각 회사 교양강좌의 강사로 불려 가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구수하게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주량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커 후배들의 부러움을 샀다.

말년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다가 2017년 94세로 생을 마감했다. 최근에는 아들과 사위가 모두 세상을 떠나 100세가 다 된 부인이 혼자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부 육상인들이 돕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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