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혹했던 기억’ 이어가야 한미동맹도 계속 발전할 것”[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총괄… 리처드 딘 재단 부이사장
기념비 구상 단계 때부터 참여
외조부도 6·25 참전했다 전사
“주요인사 찾는 장소… 자부심”
“전쟁의 대가, 젊은이들이 치러
추모비 절반이상 이등병·일병”
워싱턴DC = 글·사진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6·25전쟁 ‘추모의 벽’으로 남긴 석판 100개 중 51개가 이등병 내지 일병 이름으로 채워져 있고, 전사(戰死)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이였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에서 리처드 딘(64)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부이사장(미 육군 예비역 대령)은 “전쟁의 대가는 젊은이가 치른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가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 기획으로 만난 딘 부이사장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배지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이 기념비의 1995년 제막식 등 구상 단계부터 참여했고 현재는 유지·보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기념비 내에 있는 추모의 벽에는 미군 3만6595명, 카투사(미군 배속 한국 군인) 7174명 등 총 4만3769명에 달하는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딘 부이사장은 그중 존 레이먼드 로벨 미 공군 대령의 이름을 가리키며 “외조부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950년 12월 4일 정찰 기동에 나섰다가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에 격추됐던 로벨 대령은 조선인민군(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나간 가두행진 도중 날아든 돌에 맞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딘 부이사장은 한국 및 6·25전쟁과의 이 같은 인연으로 보수를 받지 않으면서 재단 관련 활동을 해 왔다. 그가 미군 장병을 형상화한 조각상 19개로 구성돼 있는 기념비 완공 기간을 38개월로 맞춘 것은 한반도 분단에서의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는 ‘38선’을 고려해서다. 조각상 개수가 설계 단계에서는 38개였고, 그 조각상의 배치 구도가 38도에 근접한 삼각형으로 돼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2가지 필수 요소라는 취지에서 독립(Independence)과 헌법(Constitution)을 뜻하는 인디펜던스 애비뉴와 컨스티튜션 애비뉴 사이를 기념비 위치로 잡았다고 한다. 딘 부이사장은 “디자인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며 “주미 한국대사를 포함해 미국을 방문하거나 부임하는 주요 인사가 먼저 찾는 장소가 됐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날 기념비 현장에서는 6·25전쟁 참전용사도 만나볼 수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직전까지 3개월 동안 전장을 지켰던 클라이드 엠블러드(91) 씨는 “전쟁을 극복하고 우리(한국과 미국)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한국이 지금껏 이뤄낸 발전상을 보면 황홀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미나 만구에라(29) 씨는 “기념비 관리가 계속 잘돼야 ‘잊힌 전쟁’이 되지 않고 그 기억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딘 부이사장은 한·미동맹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외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면서도 “한국과 미국 중 어느 한쪽의 대통령이 바뀌거나 정책 방향이 바뀐다고 해도, 전쟁을 함께 겪은 기억이 있는 한 한·미동맹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이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벗어나고 강대국으로 도약한 것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어려운 국가를 후원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감명 깊다”고 했다.
딘 부이사장은 “사진을 찍는다면 여기서 찍고 싶다”며 기념비 내에 있는 한 조각상 옆에 섰다. 해당 조각상은 1951년 미 공수부대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원주 전투에서 오른쪽 팔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대령을 모델로 제작됐다. 웨버 대령은 이 기념비 내에 추모의 벽을 세우고 미 장병뿐 아니라 카투사 이름까지 새기는 데 헌신하기도 했다. 딘 부이사장은 “내가 중령으로 진급했던 당시 계급장을 달아준 사람이 웨버 대령이었다”며 “생전 그를 1주일에 한 번씩은 이곳 기념비 자리에서 만나 6·25전쟁 전사자를 어떻게 예우할지 논의했다”고 했다. 그는 “참전용사 대부분이 90세가 넘어가면서 6·25전쟁은 직접 겪고 기억을 하는 이가 없는 전쟁이 돼 가고 있다”며 “기념비를 세웠던 당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 시민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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