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8500명 주한미군, 여전히 강력한 한미동맹 상징[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정충신 기자 2023. 9. 27. 11: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주한미군은 정전 직후인 1953년 7월 31일 30만2483명까지 기록했으나 점차적으로 철군, 지금은 2만8500명을 유지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올 초 미국 펜타곤에서 개최된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은 매일 한국군과 협력하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에 파병된 병력의 역대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며,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힌 바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동맹국 사령관에 4성장군 유일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한 의지

주한미군은 정전 직후인 1953년 7월 31일 30만2483명까지 기록했으나 점차적으로 철군, 지금은 2만8500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여전히 강력한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이 해외 동맹국 사령관 보직에 4성 장군을 파견한 곳은 일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틀어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광복 직후 미 군정기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군 창설을 위한 조직, 편성, 교육훈련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미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주한미군을 재주둔시켰고, 양국 관계를 ‘혈맹’으로 발전시켰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올 초 미국 펜타곤에서 개최된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은 매일 한국군과 협력하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에 파병된 병력의 역대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며,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동맹은 단순히 주한미군 주둔 숫자와 규모에 집착하는 것을 떠나 다양한 부문의 조직 강화를 통해 진화해왔다. 한미연합군사령부(CFC·연합사)가 진화의 대표적 사례다. 한·미는 한반도 방위의 중요성을 인식, 1971년 7월 1일 지금의 연합사단과 유사한 한미 제1군단을 창설했다. 이를 토대로 1978년 연합사, 1980년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CFA)를 출범시켰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에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25년 만에 한·미동맹은 전략적·군사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1975년 11월 30일 제30차 유엔총회에서 공산 측이 제출한 ‘유엔군사령부 해체’ 결의안(제3390호)이 비동맹국들 지원 속에 통과된 것이다. 미국은 유엔사를 대체할 새로운 지휘체계를 모색한 결과, 1978년 10월 23일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회의(MCM) 합의를 통해 그해 연합사가 서울 용산에 창설됐다.

1954년 한·미 합의 의사록을 통해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겨줬던 작전통제권 가운데 전시를 제외한 평시 작전통제권은 1994년 12월 1일부터 한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행사하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지난해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는 북한 핵 확장억제 수단을 핵·재래식·미사일 방어능력에 국한하지 않고 우주·사이버·전자기 등 진전된 비핵능력으로까지 확대했다.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