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부역자 ‘전쟁영웅’ 소개한 캐나다 하원의장, 결국 사퇴

젤렌스키 캐나다 방문 때 소개
반발 이어지자 사과, 사임 결정

앤서니 로타 캐나다 하원의장이 25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 위치한 하원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당시 과거 나치 정권에 부역한 퇴역 군인을 전쟁 영웅으로 소개, 논란을 빚은 캐나다 하원의장이 26일(현지시간)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앤서니 로타 캐나다 하원의장은 이날 “실수를 깊이 후회를 한다”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하원의장직 사임을 알린다”고 밝혔다. 로타 의장은 지난 22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캐나다 하원을 찾은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침략군에 맞서 싸운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라고 자신의 지역구에 사는 야로슬라브 훈카를 소개했다. 캐나다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훈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등을 학살한 유명한 나치 친위대(SS)가 우크라이나에서 조직한 의용부대 소속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해당 의용부대는 당시 우크라이나 서부를 점령한 소련에 맞서려는 우크라이나인들로 구성됐지만, 나치에 의해 훈련받고 나치를 위해 싸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없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나치 부역자의 등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총리가 22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 하원 의회에서 나치 부역자지만 우크라이나 독립 영웅으로 소개된 야로슬라프 훈카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타와=AP 연합뉴스

유대인 단체와 인권 단체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나치 부대에서 복무한 사람이 캐나다 국회의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로타 의장은 “캐나다와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 그리고 나치 잔혹 행위의 생존자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면서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또 훈카를 의회에서 소개하기로 한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이라면서 “동료 의원이나 우크라이나 대표단 중 사전에 아무도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