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공상 승인, 전담 TF 출범했지만…담당자 3명뿐

박준용 2023. 9. 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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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⑤
소방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
TF, 전담팀으로 정식 출범
공상 처리속도 빨라지고
보완요구 반으로 줄었지만
1명이 연 783건 처리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김성제 소방관이 지난 7월25일 인천 중구 인천119특수대응단 소방헬기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소방관 김성제(56)는 2019년 2월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암을 진단하며 “소방관님처럼 유해물질 취급을 많이 하시는 분이 직업병으로 걸릴 수 있는 암”이라고 말했다. 김성제는 21년째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를 하던 순간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할 때는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했는데, 이제와서야 그때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특히 암 진단 10개월 전 있었던 대형 화재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8년 4월13일 인천 서구 가좌동 일대 화학물질처리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공장은 폐유기용제와 폐유, 알코올 등을 재활용 처리하는 곳이었다. 불이 커지면서 황산 등 위험한 화학물질이 도로에 흘렀고, 그 위에 불이 붙기도 했다. 5시간 동안 공장 건물 2개 동과 도금·목재 공장 6개 동을 태웠다. 일반차량 20여대와 출동한 소방차도 불에 탔다.

5시간 동안의 진화 작업은 김성제를 비롯한 소방관들에게 큰 후유증을 남겼다. 김성제는 다음날부터 사타구니에 심한 열이 났고, 한달 넘게 기침에 시달렸다. 김성제와 함께 출동한 소방관 30여명도 호흡 곤란, 하체 가려움증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산소호흡기를 쓰고 무전하면 업무에 많은 방해를 받기 때문에 간단한 마스크를 썼어요. 알게 모르게 유해물질이 호흡기와 피부에 노출됐을 것 같아요.”

2018년 4월16일 인천시 서구 가좌동 화학물질 처리공장 화재사고 현장. 연합뉴스

이런 상황들이 쌓여서 발병한 걸까. 김성제는 방광암을 수술하고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김성제는 수술에 든 치료비를 먼저 부담하고, 이후 공무상 요양(공상) 신청을 하고자 했다. 문제는 다른 많은 소방관들처럼, 김성제도 공상 신청을 하려면 직접 구체적인 출동기록과 의학적 근거, 질병과 관련있는 구체적인 업무내역 등을 수집해야 한다는 점이다. 암 수술 이틀 뒤부터 출근해 화재진압을 할 정도로 정신 없었던 김성제에게 이 모든 일들은 가욋일이었다.

난감해하던 김성제가 소방청 재해보상태스크포스(TF·티에프)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20년이었다. 소방청이 티에프팀을 신설해 공상 신청을 하려는 소방공무원에게 도움을 주려한다는 공문을 각 소방서에 보냈고, 이를 본 김성제가 티에프팀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티에프팀이 김성제의 방광암과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직접 취합해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이하 심의회)에 제출할 수 있게 했다. 김성제는 지난해 11월 공상 인정을 받았다. “방광암과 업무의 의료적인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부분이 자신 없었어요. 그런데 티에프팀에서 소방관들에게 방광암이 흔히 있는 질병이라는 연구 결과를 취합해줬어요.”

티에프팀은 지난해 11월 소방청 내 직제를 얻어 ‘재해보상전담팀’으로 정식 출범했다. 각 소방관서로 흩어져 있던 공상 신청 등 재해보상과 보훈 업무를 이 팀이 전담해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각 소방관서에 업무가 흩어져 있을 때는 다른 업무 담당자가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전문성도 떨어져 서류 미비가 발견되는 등 문제점이 노출됐다. 재해보상전담팀에서 재해보상 총괄을 맡는 김수근 보건안전담당관은 “서류를 일관성 있게 제출할 수 있게 되면서 입증 서류가 부족해 불승인됐던 건도 개선되고 있다”며 “소방청 차원에서 의료 전문가를 통한 역학조사서를 만들어 근거 자료로 제출하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전담팀이 생긴 뒤 공상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소방관에게 사고가 발생한 뒤 40일 이내 공상을 신청한 비율이 23.7%였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17.4%)보다 6.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공상 신청 접수를 받아 심의회에 심의를 의뢰하는 공무원연금공단이 공상 관련 서류를 보완하라고 요구해 온 비율도 올 상반기 31.1%에 그쳐 지난해 상반기(60%)의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문제는 적은 인력이다. 전담팀은 현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1명은 국가보훈부에 소방관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신청하는 업무를 맡는 보훈 담당자다. 재해보상 담당자는 3명에 불과한데, 이들이 올해 상반기에 맡은 재해보상 사건만 2349건이다. 1명당 783건에 이른다.

게다가 담당자 3명 가운데 2명은 소방청 소속이 아니라 지역 소방본부에서 파견받은 인력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역 소방본부로 복귀해야 한다. 공무원연금법상 재해보상업무가 각 지역 소방본부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전담팀의 기형적인 인력 파견 구조를 바꾸려면 법 개정도 필요하다. 채진 목원대 교수(소방안전학)는 “행정안전부 등에서 소방청에 관련 인력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전담팀에 공식 인력을 둘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직업병 관련 연구 인력도 충원해서 소방관의 질병에 대한 추적 관찰까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지난 6월부터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공무원이 특정 질병에 걸리면 별도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공상으로 인정하는 제도인 ‘공상추정법’(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공상추정법은 혈관육종암 진단을 받고 공상 인정을 위한 소송과 치료를 병행하다 2014년 순직한 고 김범석 소방관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가 지난해 5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예규에 담긴 공무상 질병 추정 기준을 보면, ‘화재진압·구조가 주 직무’인 소방관의 경우 △5년 이상 근무하고, 첫 노출 후 10년 이상 경과하여 발생한 중피종(노출 기간 5년 미만이라도 석면 관련 흉막판이나 석면폐증은 인정) △10년 이상 근무 후 발생한 방광암 또는 폐암 △5년 이상 근무 후 발생한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또는 다발성골수종과 같은 직업성 암과 급성 스트레스 장애 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 대해 공상추정법이 적용된다. 화재 현장에서 노출이 잦아 희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큰 소방관들 다수가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법무법인 감천의 이영만 노무사는 “인정되는 질병의 종류가 너무 적다”며 “폐암이지만 노출 기간이 맞지 않거나 노출 기간은 충족하는데 공상추정법이 인정하는 암이 아닌 경우에 대해서도 인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도 “추정 범위가 좁은 현재의 공상추정법은 공상 업무 처리 속도를 빠르게 하는 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선 한국보다 넓은 범위의 소방관 공상 추정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소방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인 소방 전문가 이건씨는 “미국은 1982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소방관의 암 추정법이 처음 도입됐고, 지금은 50개 주에서 공상추정법이 자리를 잡은 상태”라며 “보통 5~10년 이상 근무자가 폐암·뇌종양·피부암·신장암·방광암·백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바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도 주별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시 뇌종양(10년 근무), 신장암(20년 근무), 각종 림프종(20년 근무)의 공상을 인정하고 있고, 호주에서도 뇌종양·백혈병(5년 근무), 유방암·고환암(10년 근무), 신장암·비호지킨림프종·방광암·대장암(15년 근무) 등의 공상을 인정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선진국의 사례들을 더 꼼꼼하게 보고 인정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며 “국내 공상추정법 추정 대상에서 빠진 질병 가운데 뇌종양과 유방암은 미국 여러 주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상추정법을 발의한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제적으로 소방관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받는 특이암 중에 들어가지 않는 암들이 많다”며 “화재조사요원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문제다. 화재조사에는 소방만이 아니라 경찰도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재해보상심의회에 퇴직 소방관도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 소방관의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를 주도하거나 연구 기관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심의회 등에서 일하는 의료진 등의 전문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공상 인정 등을 판정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대장암이나 전립선암, 신장암 등 인정할 수 있는 질병이 더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노력해야 하고, 소방관도 적극 참여해 자료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진하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사회가 지식을 쌓지 않은 책임이 소방관에게 있는 게 아닌데, 소방관이 그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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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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