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복' 73주년…9만4000명 '납북자' 아직도 미해결
정치인 등 '기획납북'…강제징집 등 '동원납북'
[서울=뉴시스]여동준 기자 =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국군과 연합군이 완전히 되찾은 이른바 '서울 수복'이 오는 28일 73주년을 맞는다.
북한은 6·25 전쟁 중 정치적 목적으로 유력인사를 납치하거나 부역 동원 및 인민군 충원을 위해 다수의 인원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6·25 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의해 강제로 납북돼 북한에 억류되거나 거주하게 된 민간인은 '납북자'로 불린다.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전시 납북 사건의 85% 이상이 남침 직후부터 서울 수복까지의 3개월 동안 발생했다.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납북자위원회)는 납북사건 발생 당시의 한국 정부, 적십자사 및 납북인사가족회가 작성한 명부를 종합해 납북자를 약 9만4000명으로 집계했다.
다만 1950년대에 납북 기준을 매우 엄격히 적용해 납북 정황이 확실치 않으면 '행방불명자'로 집계된 점 등을 고려해 실제 납북자 수는 이보다 많은 '10만명 내외'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내외 정세로 더뎠던 납북자 진상규명 작업
우리나라 정부는 6·25 전쟁 중에도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와 전국 규모의 '6·25 사변 피랍치자(피납치자) 명부'를 작성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초까지 납북자 문제를 제기했으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납북 문제 논의를 회피했고, 납북 문제는 진상규명이라는 본질에서 정치·외교적 공방으로 번졌다.
196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에는 정부가 반공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경제발전에 집중하며 납북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줄어들었다. 국제사회를 통한 문제 해결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북한과의 직접 교섭은 북한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납북자를 이산가족의 범주에 넣는 우회적으로 접근이 이뤄졌고 그 결과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북한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 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한다' 정도로 규정되는 데 그쳤다.
2000년대에는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기조로 한 정부가 등장했으나 역시 납북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은 없었다. 2007년에는 국회에서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으나 해당 법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의 '전후' 납북자만 다룬다.
2010년에 들어서야 전시 납북자를 다루는 법안인 '6·25 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6·25 납북자법)이 통과됐고 해당 법에 따라 납북자위원회가 구성돼 공식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정치인 등 '기획납북'…강제징집 등 '동원납북'
납북은 북한이 해방 후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인사를 충원하기 위해 남한 인사를 사전 계획에 따라 납치한 '기획납북'과 북한의 전시동원계획에 따라 의용군·노무대 등으로 징집하거나 북한으로 강제 이주시킨 '동원납북'으로 나뉜다.
납북자위원회에 따르면 기획납북은 크게 3개 부류의 인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제1부류는 사회저명인사로 국회의원, 항일운동가, 임시정부요인 등 북한의 남침 정당화 등 북한 체제 선전과 남한 정부 고립화에 이용하기 위한 인사였다.
제2부류는 경찰, 공무원, 판검사 등 북한의 점령통치에 잠재적 위협이 되거나 남한 정부 운영에 필요한 인사였다.
제3부류는 전문가, 기술가, 예술가 등 지식인 계층으로 북한체제 운영에 필요하거나 이용 가능한 인사였다.
동원납북은 ▲인민군 보충을 위한 의용군 ▲노무활동을 위한 노무자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 ▲기술·기능직 ▲북한이주 노동자 등 5개 분류로 나뉜다.
납북자위원회는 기획납북자를 2만~2만4000여명으로, 동원납북자를 7만~7만50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납북자 154명에 대해 北 사과 촉구하라"
2기 진화위는 지난해 11월 민간인 납북 사건 희생자 68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올해 8월에 추가로 86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화위는 국가에 "피해당사자 및 가족에 대한 북한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전시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 송환을 촉구하라"고 권고했다.
희생자들은 북한 인민군, 지방 좌익, 정치 보위부 등 북한 정권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조사됐다. 자택에서 납치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자택 근처 등에서 형무소로 이송된 경우도 있었다.
납북자는 농민·근로자 등 민간인에서부터 정계 주요 인사, 북한 체제에 저항하는 인사, 기술을 보유한 전문직 종사자,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되거나 노무자로 징발된 이들로 드러났다.
한편 지난 4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납북자·억류자 가족 10명을 만나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 4월12일 오후 경기도 파주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 국민의 일이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며 "수십 년 동안 한이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했다.
납북자·억류자 가족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들을 만나주지 않았는데 우리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만나주신 것 만으로도 희망이 생긴다"고 인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eod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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