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성철 전KAIST 총장 “수능에 매몰된 교육으론 AI시대 못 버틴다”

이종현 기자 2023. 9.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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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과학기술협력대사·전 KAIST 총장
“로보 사피엔스 시대 대비한 교육 개혁 필요해”
“R&D 예산 삭감은 잘못된 방향… 선도 연구 타격”
국제협력 위해 강소국들과 연대해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는 특이점이 곧 올 겁니다. AI 로봇인 로보 사피엔스의 시대가 옵니다. 이제는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됐습니다. 초지능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기억력과 정보 프로세싱, 단순 반복 업무에서 인간은 AI와 경쟁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은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참석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날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1000여명의 과학자와 학생들이 모였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미래 교육’이었다.

외교부의 과학기술협력대사를 맡고 있는 신성철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이날 약 7시간에 걸쳐 이어진 프로그램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신 전 총장은 물리학계의 석학이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KAIST 총장을 모두 지낸 과학 교육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교부 과학기술협력대사를 맡아 한국의 과학기술을 해외에 알리고, 국제협력을 이끄는 업무를 맡고 있다.

신성철 전 KAIST 총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AI 로봇 시대에 대비해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노벨재단

신 전 총장은 초연결·초지능·초융합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교육 체계로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며 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AI 로봇의 시대에 어떤 교육이 필요한 걸까. 1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을 마치고 내려온 신 전 총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개혁을 의미하는 건가.

“지금 초·중·고등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은 좋은 대학이다. 이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 목표는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시험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가려내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로보 사피엔스에 적합한 방식이다. 인간과 로보 사피엔스가 수능 시험에서 경쟁한다면 인간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로보 사피엔스를 이길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건가.

“수능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 수능은 참고자료로만 쓰고, 대학마다 자신들이 필요한 인재에 맞게 입시 방식을 바꿔야 한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은 수시로 학생을 뽑고 성적은 참고자료로만 쓴다. 각자의 대학에 맞는 인재인지 꼼꼼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의 협력, 프리젠테이션 능력, 토론 능력도 살핀다. 교육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대학이 나서서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어떤 인재를 키워야 로보 사피엔스 시대에 적합하다고 보나.

“세 가지가 중요하다. 도전정신과 창의력, 그리고 배려정신이다.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 수 있는 도전정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창의력이 중요하다. 여기에 윤리적인 포용성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키워서 로보 사피엔스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로보 사피엔스 시대의 어두운 면도 있다. AI의 비윤리적인 사용이나 기후위기, 펜데믹 같은 글로벌한 이슈들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디스토피아에서는 배려정신을 갖춘 인재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지만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창의력을 기르는 게 결국은 국가의 과학적인 소양을 강화하는 길이다. 노벨상 시즌이 시작됐는데 한국인 과학자가 언제쯤 노벨상을 받을지에 대해 다들 이야기한다. 노벨상이라는 건 남들이 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은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독창적인 연구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해온 연구들은 추격형이었다. 논문 몇 편을 썼는지를 중요하게 봤는데, 앞으로는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과학 외교도 중요하다. 결국은 한국에 이렇게 능력있는 과학자가 있다는 걸 세계 무대에 알려야 수상자가 나오는 것일 텐데.

“맞다. 노벨상은 유럽이 결정한다. 특히 스웨덴이 중요하다. 그들이 결국 후보를 압축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후보 추천권을 받고, 한국 과학자를 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스웨덴의 노벨상 심사위원장을 만나고 왔는데 한국에서 유명한 과학자들을 대부분 잘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들도 한국에 좋은 과학자가 많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데 자세한 건 모른다. 이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한국 과학자들의 성과와 업적을 프로모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본이 그런 노력을 잘한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스웨덴 현지에 직원 1명을 보내서 우리 성과를 알리고 있는데, 부족하다. 학문적인 업적이 있는 연구자가 가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그런 노력을 굉장히 잘했고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분야를 압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은 자신들의 강점에 연구역량을 집중해서 노벨상 문을 두드린다. 국제적인 학회나 행사도 자주 열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알린다. 우리도 그런 노력을 늘려야 한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카롤린스카대 노벨상위원회의 토마스 펄만 사무총장을 이번에 만나서 내년쯤 한국에 초대했다. 우리 생명과학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는데 이런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

신성철 전 KAIST 총장이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 전 총장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 잘못된 방향이라고 진단하며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한국과학기술한림원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지원도 중요하다. 최근 기초과학에 대한 예산이 삭감되면서 과학계가 큰 충격에 빠져 있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5%가 돼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게 나다.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2.4% 정도였다. 그 이후로 대통령 후보들이 5%를 슬로건을 내세웠고, 20년에 걸쳐 비중이 올라왔다. 그동안 과학계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에게 10년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 생각보다 빨리 (예산 구조조정이 시작돼) 충격이기는 하다. 물론 과학계에도 연구비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가 있겠지만, 그걸 찾아내서 환수한 뒤에 잘 하는 곳에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꿨다면 과학계도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예산을 깎으면 열심히 연구만 하던 과학자까지 카르텔로 몰리면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향을 조금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정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추격형 연구에서 글로벌 선도 연구로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예산 삭감과 제도 개편으로 도전적 과제가 많이 끊어지게 됐다. 과학기술원이 하던 사업들도 다 중단되는 중이다. 과학계의 객관적인 상황과 의견을 듣고 정부가 방향을 다시 잡기를 바란다.”

-국제협력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과학기술협력대사를 맡고 있는데 어떤 비책이 있나.

“세계적인 선도 그룹과 협력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쌓여야 한다. 세계적인 연구자들은 우리가 아니어도 협력할 선택지가 많다. 그들에게 우리와 협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을 알려주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지적인 상승효과가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 미국 같은 큰 나라보다 강소국을 공략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최근에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는데, 노벨상 수상자만 17명을 배출한 과학 강국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한국과 굉장히 협력하고 싶어한다. 한국의 응용 과학과 산업화 수준, 대기업의 존재를 부러워한다. 이런 강소국을 모아서 한국이 국제적인 연구 협력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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