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메시도 찾는 핫플... 허기 달랬던 한식, 뉴욕 사로잡았다
이민 1세대, 곰탕집으로 시작
미쉐린 ‘별’ 받은 식당만 9개
NYT “프랑스 요리 패권 끝내”
“한국의 셰프들이 뉴욕의 가장 유명한 고급(high-end) 레스토랑을 석권하며 수십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 요리의 패권을 끝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한국 레스토랑이 뉴욕의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재창조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한 면 전체에 실었다. ‘파인 다이닝’은 맛·서비스·가격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인 식당을 말한다. 1970년대 후반 맨해튼 32번가로 대표되는 ‘코리아타운(한인 거리)’에서 이민자들이 생업으로 시작한 한식이 전문 요리 학교를 졸업한 요리사들이 이끄는 고급 한식당으로 진화해 세계 문화의 ‘심장’인 뉴욕 미식계 주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1953년 동맹을 맺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며 한때 주한 미군에게 외치던 ‘쪼고레뜨 기브미(초콜릿 주세요)’로 상징되던 ‘배 채우기 식문화’는 이제 사라졌다. 한식은 대신 세계 미식을 선도하는 첨단 트렌드로 미국에 안착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식당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최고 수준이란 뜻의 ‘별(1~3개, 3개가 최상)’을 받은 식당은 72개로 그중 9개가 한식당이었다. 미식의 정점이라 여겨져 온 프랑스식 식당(7개)을 추월했다. 별 둘을 받은 식당 12곳 중 2곳(정식·아토믹스)이 한식당이었다.
과거 한식당은 미국에 이민 간 교민이나 현지 주재원이 ‘한국의 맛’을 찾아가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다. 지금 미국의 한식당은 가장 주목받는 톱스타들이 가고 싶어 하는 미식 중심지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미국 프로축구 리그(MLS) 인터마이애미로 이적한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는 지난달 리그 우승 자축 파티를 마이애미의 한식당 ‘꽃(COTE)’에서 열었다. 한글로 ‘꽃’이라고 간판을 붙인 이 식당은 한국의 고깃집을 현지인들이 먹기 쉽게 재해석해 큰 성공을 거뒀다. 뉴욕에서 2012년 시작해 미국 주요 도시에서 저마다 유치 경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지금의 한식은 ‘코리아타운’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유행 중심지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도 과거 한식과의 차이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문을 연 ‘정식’은 맨해튼 부촌(富村)이자 트렌드 중심지인 트라이베카 지역에 2011년 9월 문을 열어 10여 년 만에 지역의 대표 고급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굳혔다. ‘꽃’은 갤러리들이 모인 맨해튼의 문화 중심지 첼시에 있다.
‘꽃’에 들어가면 클럽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국인 종업원들이 영어로 메뉴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는 점도 현지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민 1.5세대로 어머니가 맨해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운 이 식당 대표 사이먼 김이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NYT는 “뉴욕의 새로운 한식 레스토랑들은 분위기나 서비스 면에서 엄격하게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뉴욕곰탕’ ‘우촌’ ‘강서회관’ 등 맨해튼 한식 1세대는 1980년대까지 우범 지대로 꼽혔던 맨해튼 한복판 펜스테이션(기차역)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을 형성했다. 이들은 한국 이민 1세대 특유의 ‘이 악물고 일하는 성실함’으로 식당을 일궜다. 한 뉴욕 교민은 “코리아타운의 한식당은 그 어떤 악천후에도 문을 열고 24시간 영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태풍 등으로 도시가 마비돼 밥 먹을 곳이 없으면 무조건 코리아타운으로 가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고 했다.
2011년 한국에서 ‘정식당’으로 성공한 임정식 셰프가 뉴욕에 낸 첫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은 한식당이 과거의 ‘헝그리 정신’을 뛰어넘어 고급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을 통해 한국 문화가 서서히 미국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에 미국에 진출해 한식에 대한 미 주류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정식’에서 일하며 ‘뉴욕서 먹히는 한식 파인 다이닝’의 감을 잡은 젊은 한인 셰프들은 이후 저마다 개성 있는 방식으로 뉴욕의 한식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지난해 ‘정식’과 함께 한식당 중 유일하게 별 2개를 받은 아토믹스(Atomix)의 박정현 셰프는 뉴욕 ‘정식’ 창립 멤버 중 하나다. 지난 6월 발표된 ‘2023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 순위에서 세계 8위, 미국 1위에 올랐다. 2018년 5월 문을 연 지 6개월 만에 미쉐린 별을 받았는데, 5년 만에 다시 미식 업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1인당 375달러(약 50만원)짜리 코스엔 한국식 젓갈로 맛을 낸 갈치, 와규 등 10가지 코스가 쌈장 등 한국식 소스와 함께 등장한다. 뉴욕 파인 다이닝의 대표 주자 ‘퍼세(Per Se, 미쉐린 별 셋)’의 코스 메뉴가 390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미쉐린 별 한 개를 각각 받은 ‘주아’는 장작불에 구운 한식 코스를 135달러, ‘오이지미’는 육회·보쌈 등 정통 한식에 가까운 5코스 메뉴를 145달러에 낸다.
한식의 도전은 3세대로 더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뉴욕 현지에 역진출하거나, 서양식 ‘포장’까지 지우고 아예 정통 한식으로 승부를 보려는 식당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크게 성공하고 나서 올해 맨해튼 30번가에 문을 연 돼지곰탕집 ‘옥동식’이 대표 선수다. 옥동식의 메뉴는 돼지곰탕(18달러), 김치만두(12달러)뿐인데 늘 긴 줄이 있다. 내년 중순쯤 맨해튼에 추가로 2·3호점을 낼 예정이다.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한식 파인 다이닝을 선보여 서울 미쉐린 가이드 별 둘을 받은 한식당 ‘주옥’도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맨해튼에 도전하는 사례다. 최근 주옥을 이끈 셰프 등 팀 멤버 다섯명이 함께 맨해튼으로 갔다. 이들은 내년 초 한국과 같은 ‘주옥’이란 이름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부근에 식당을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 대세였던 퓨전 파인 다이닝 틈 사이를 ‘정통 한국 스타일’ 파인 다이닝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이달 32번가에 문을 연 ‘왕비’는 1인당 128달러(약 17만원)에 들깨사골수제비, 꼬리뼈, 양념갈비 등을 제공하는데, 손님이 보는 앞에서 셰프가 수제비를 손으로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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