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름반도 집중 공격하는 우크라…‘러 아킬레스건’ 노린다
러군 보급선 파괴 방어력 무력화·항로 통제권 회복 노려
우크라 “폭사” 발표한 흑해함대 사령관, 러 “건재” 반박
1년7개월간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중심으로 전개돼온 전쟁이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크름반도를 집중 공격하면서 크름반도가 새 격전지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은 지난 22일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함대 본부를 공격해 빅토르 소콜로프 흑해함대 사령관 등 장교 34명을 폭사시키고, 군인 10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지난해 4월 러시아군의 기함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침몰한 이후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이 입은 최대 규모 피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발표에도 하루 동안 침묵을 지키던 러시아는 26일 소콜로프 사령관이 이날 국방부 화상회의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하며 그의 건재함을 주장했다. 다만 소콜로프 사령관의 사망 여부와 별개로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흑해함대가 큰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반부터 “우리는 크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크름반도 탈환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지만,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군 사정권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주간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를 겨냥해 제한적인 드론 공격을 수행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러시아 해군의 흑해 거점인 세바스토폴 사령부 등 군사시설을 타깃으로 더 과감한 공격을 단행하고 있다. 세바스토폴 해군 사령부와 사키 공군기지 등에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연이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 탈환을 집요하게 추진해온 것은 크름반도의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남부 전선의 전세를 바꾸기 위한 전략적 중요성도 크기 때문이다. 크름반도야말로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주장해온 우크라이나군은 크게 두 가지 전략적 목표하에 이런 공격을 수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크름반도 북동쪽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전선에서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의 육상 반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도시들을 수복해 크름반도 북부에서 동부 돈바스, 러시아 본토까지 이어지는 남부 점령지 회랑을 중간에서 끊어내고자 하지만, 러시아군이 겹겹이 구축한 방어벽 탓에 전선 돌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름반도 내 러시아군의 보급선을 파괴한다면 러시아의 방어 역량을 확실하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막힌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해상 수출을 재개하고 흑해 항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경제는 새 흑해 항로를 성공시키는 데 달려 있다”면서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군함을 몰아내 새 흑해 항로 공격을 가능한 한 어렵게 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단 한 척의 군함도 보유하지 않은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군함 최소 19척을 침몰·파손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최근 미국이 지원을 약속한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이 도착하면 크름반도 타격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에이태큼스는 사정거리가 305㎞에 달해 크름반도 너머 러시아 병참기지나 사령부도 공격권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도 전세를 뒤바꿀 변곡점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본토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일부 군함을 옮기는 등 우크라이나군 공세에 대응해 전술을 조정하고 있고, 여전히 양국 간 해군력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름반도 병합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러시아군이 이곳 사수를 위한 대규모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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