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 큰 손 고객들이 떠난다…엔비디아는 예외일까[오미주]

권성희 기자 2023. 9. 2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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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미주'는 '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의 줄인 말입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이벤트나 애널리스트들의 언급이 많았던 주식을 뉴욕 증시 개장 전에 정리합니다.


빅테크기업들이 반도체 자체 설계를 늘릴 것으로 전망돼 생산설비가 없는 팹리스 반도체기업들의 성장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10000 데이즈 펀드 자산관리의 창업자인 코디 윌러드는 25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기고한 글에서 기술기업들이 반도체를 내부에서 자체 설계하면서 반도체산업이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팹리스 반도체회사들의 위기
애플과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플랫폼 등의 빅테크기업들은 매년 수십억달러의 반도체를 구매해 휴대폰과 PC 등을 제조하고 사내 서버를 구동한다.

이들 빅테크기업에 반도체를 판매하는 인텔과 엔비디아, 브로드컴, 퀄컴 등의 반도체회사들은 대부분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생산은 TSMC나 글로벌파운드리 같은 파운드리업체에 맡긴다.

최근 반도체산업에는 빅테크기업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구매회사들이 높은 이익률을 남기는 팹리스 반도체 설계회사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해 직접 파운드리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빅테크기업들은 반도체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규모와 역량을 갖추고 있어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게다가 반도체회사에서 설계한 범용성 칩보다 자사 고유의 필요에 맞춰 직접 설계한 칩을 사용할 때 제품의 질이 향상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테슬라, 전기차에 자체 칩 사용
빅테크기업들의 자체 반도체 설계는 이미 시작돼 점점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거의 모든 제품에 직접 설계한 칩을 사용한다.

애플은 2021년부터 맥 컴퓨터에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 대신 자체 개발한 CPU를 사용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아이폰에서 삼성전자 반도체를 뺐다. 최근에는 아이폰에서 퀄컴의 5G 모뎀을 자체 모뎀으로 교체하려다 일단 2026년까지는 퀄컴의 5G 모뎀을 사용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전기차 CPU를 자체 설계해 사용하고 있으며 슈퍼컴퓨터인 도조에도 자체 설계한 AI(인공지능) 칩인 D1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부인 아마존 웹서비스(AWS)는 엔비디아의 AI 칩 대신 자체 개발한 AI 칩인 트레이니엄과 인퍼런시아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알파벳의 자회사 구글이 AI 기술에 필요한 칩을 브로드컴에서 공급받지 않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구글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이는 빅테크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를 늘리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자체 칩 개발하는 4가지 이유
빅테크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를 늘리는 이유는 첫째, 역량이 되기 때문이다. 빅테크기업들은 자체 칩을 설계할 만한 유능한 인재와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 칩을 기존 하드웨어 기기와 운영체제(OS)에 통합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도 갖추고 있다.

둘째, 칩을 직접 설계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칩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필요한 칩의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다면 굳이 돈을 들어 칩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

셋째는 자체 제품의 특이성 때문이다. 반도체회사들이 공급하는 범용화된 칩은 서로 다른 제품군에서 똑같은 성과를 내지 않을 수 있다. 테슬라가 전기차의 자율주행에 필요한 칩을 직접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존도 자사가 개발한 AI에는 엔비디아의 칩을 쓰는 것보다 직접 설계한 칩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넷째, 비용 절감 효과 때문이다. 애플은 맥 컴퓨터에 인텔의 CPU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CPU를 사용해 수십억달러를 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엔비디아의 AI 칩인 H100을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의 1/6 비용으로 D1 칩을 제조할 수 있다. 직접 칩을 만들 수 있다면 반도체회사에 50~70%의 총마진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

인텔, 파운드리로 전략 수정
윌러드는 빅테크기업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를 늘리면 팹리스 반도체회사들은 매출액 절반 가량을 잃을 수도 있는데 시장이 이 위험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를 늘릴수록 파운드리업체의 전략적 중요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누가 반도체를 설계하든 누군가는 반도체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반도체산업의 이같은 변화를 일찍 깨닫고 파운드리업체로 전략적 전환을 단행했다.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업체인 TSMC와 인텔 외에는 팹(생산설비)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회사를 찾기가 어렵다.

TSMC와 인텔은 이번 회계연도에 각각 300억달러를 팹 구축에 투자했다. 이 두 회사의 자본 지출 규모를 합하면 600억달러로 세계에서 15번째로 가치가 큰 반도체회사인 KLA의 시가총액과 맞먹는다.

하지만 AMD와 브로드컴, 퀄컴 등은 자체 칩 설계라는 반도체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거의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윌러드의 지적이다.

엔비디아, 장기 고성장 가능할까
윌러드는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현재 엔비디아는 AI 반도체시장의 절대 강자이다.

AI산업은 막 시작된 극초기 단계이고 AI 칩의 수요처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모든 기업이 AI 칩을 자체 설계할 수는 없다. 또 테슬라의 슈퍼컴퓨터인 도조처럼 자체 개발한 칩과 엔비디아의 AI 칩이 함께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빅테크기업들을 중심으로 자체 칩 설계가 늘어난다면 엔비디아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8월31일 493달러를 넘어섰다가 지난 9월21일 410달러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매출액 성장률이 놀랄만큼 높지만 이 같은 성장세가 2년 후, 3년 후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의심이 투자자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주가는 25일까지 2거래일간 2.9% 반등하며 422.22달러까지 올라왔다. 여기에서 주가가 안정적으로 추가 상승하려면 팹리스 반도체회사로서 장기적인 고성장에 대한 믿음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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