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총수 잇단 증인 신청에...'망신주기' 국감 재현되나?
[아이뉴스24 권용삼 기자] 올해 국정감사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가 어김없이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불러낼 태세다. 이에 대해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하기 위한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은 사라진 채 기업을 길들이기 위한 '망신 주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정재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의 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산자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박철희 호반건설 대표,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등이 포함된 1차 국정감사 일반 증인 및 참고인 명단을 의결했다.
이번 1차 증인 명단에선 가장 큰 쟁점인 4대 그룹 총수 소환 문제가 일단 논의에서 제외됐다. 다만 여야 협의를 통해 국감 기간 추가 증인 채택을 할 수 있는 만큼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자위의 관계자는 "이번에 채택된 증인은 최소한의 명단"이라며 "향후 협상에 의해 추가 증인이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회 산자위 소속 이장섭 민주당 의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꿔 대기업들이 복귀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청취하기 위해 김병준 전 한경협(전 전경련) 회장직무대행과 함께 4대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4대 그룹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로 한경협에서 탈퇴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삼성 계열사 5곳(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SK그룹 4곳(SK㈜,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그룹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그룹 2곳(㈜LG·LG전자)이 한경협 회원사 자격을 유지하며, 자연스레 한경협에 합류하게 됐다. 다만 삼성 5개 계열사 중 삼성증권은 이사회 회의를 거쳐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농해수위에선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실적 저조를 문제 삼아 4대 그룹과 함께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다수의 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여·야·정이 마련한 기금이다. 2017년 3월 출범해 매년 1000억원씩 1조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으나 현재까지 모인 금액은 약 2100억원으로 알려진다.
야당은 당초 목표 금액에 턱없이 부족한 점을 고려해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애초 자율에 맡긴 기금과 관련해 납부를 강요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만 아직까진 야당 의원들의 증인 신청 명단에만 포함됐으며, 최종 채택을 위해선 여야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중 FTA 체결 당시 기업은 돈을 벌고 농어촌 주민은 피해를 보니 농어촌 기금을 마련한 것인데, 현재 대기업은 중국 사업을 대부분 철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국감 시즌마다 되풀이되는 기업인들에 대한 무더기 증인 신청에 대해 업계 안팎에선 볼멘 소리가 나온다.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하기 위한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이 '기업 길들이기 감사'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국감장에 소환되는 기업인 수는 매년 늘고 있다. 17대 국회의 경우 국감에 증인으로 불려간 기업인은 연평균 52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18대 77명, 19대 124명, 20대 159명으로 급증했다.
이에 정치권 내부에서도 국회 관행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매년 국정감사 때면 국회가 기업 총수들과 경제인들을 무리하게 출석시켜 망신을 준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민원을 해결하지 위한 용도로 증인신청을 하는 등 제도를 남용하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글로벌 경기 침체, 고금리, 유가상승 등으로 기업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제성장의 엔진이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게 국회가 불필요한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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