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2년 지나도 여전한 가습기살균제 네 탓 공방…옥시 등 분담금 갑론을박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와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 김철 SK케미칼 대표가 국회에 소환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피해자 지원에 쓰일 분담금 비율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도하다'며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현장에 참석한 피해자들과 유가족 단체 관계자들은 고개를 돌렸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질타를 쏟아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은 없었다.
국회 환노위는 26일 오후 2시 이들 3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서 가해기업들 중 조정안에 거부한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은 분담비율, 종국성(조정안 합의에 따른 배·보상이 이뤄지면 추가 환자·질환에 대해 기업에 더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뜻) 등 조정안을 거부했던 이유를 기존과 똑같이 반복했다.
공청회장 앞 복도에서 만난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대표는 "원료물질 사업자(SK케미칼)의 책임이 있는 것이고, 원료사업자의 분담금 비중이 50% 이상은 돼야 하는데 현재는 20%로 한정돼 있다"며 "원료사업자의 책임이 크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공청회에서도 "무엇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근원적 책임이 있는 것은 원료사업자로, 1994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고 판매를 강행했다"면서 "원료사업자가 국내 최초로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PHMG 물질을 개발해 여러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에 공급했는데, 적어도 2003년 이전에 PHMG 독성을 확인하고도 환경부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에게 알리지 않았음이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회사는 신속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이 이뤄질수 있도록 두 번에 걸쳐 피해분담금 전액 납부했는데, 피해구제를 적극 수행해 온 저희 회사를 오히려 차별했다"며 "당사가 배상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피해구제분담금에서 지급됐을 폐질환 구제급여 상당액을 당사 분담금에서 차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 2차 피해구제 분담금 총액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2016년부터 성실하게 개별 피해 배상을 진행해 온 저희 회사에 대한 2차 분담금은 1차보다 오히려 5% 높게 산정됐다"며 "현 조정안이 초고도·고도등급 중증 피해자들에 비해 등급외·경도등급 피해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조정금을 집행하고 있는 부분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철 SK케미칼 대표는 "저희 회사의 퇴직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SK케미칼은 그 재판의 결과에 관계없이 저희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분들의 피해 회복과 지원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옥시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2017년도에 특별법 제정 당시, 전체 분담금의 20%를 원료물질 사업자가 부담하게 한 것이 당시 참여한 많은 의원들이 심사숙고해 내린 결론"이라면서 "그 비율을 그대로 두는 것이 수용도가 높다고 생각해서 안을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논의의 산물인 것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조정 동의 기업들은 특별법상의 분담금 및 추가 분담금을 성실하게 납부해 왔고, 조정 동의 기업이 납부하는 조정금액 중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한 부분은 환경부로 이관돼 미동의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법상의 구제급여 재원으로 사용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는 향후 조정 동의 기업들이 부담하는 특별법상의 추가 분담금을 선 납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므로 향후 특별법상 추가 분담금 납부의무를 면제하고 구상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동의하지 않은 기업과의 관계에서 실질적 형평에 부합하고, 분쟁해결의 일회성과 종국성을 보장해 기업의 조정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유인이 될 수 있다"며 "이로써 피해자분들에 대한 조속한 피해회복 및 지원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애경산업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는 "피해자분들에게 죄송하다"며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청회가 시작되자 그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종국성과 합리적 기업 간 배분이었다"며 "그러나 여러 당사자들이 참여한 조정안을 조율하고 성사해 나감에 있어서 먼저 정부 또는 환경부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다보니, 종국적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금액 산정 자료를 요청했으나, 결국 제공받지 못해 조정안의 적정성과 기업 간 배분의 합리성에 대해 검증할 수가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종국성 부분이 확보된다면 수용하겠다고 회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해기업들이 분담금 비율에 불만을 드러내자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업 대표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가해기업들은 지금 피해자들한테 내 책임은 이 정도니 이것만 내라고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옥시의 경우 영국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국제법상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지원에 쓸 사회적 기금 출연할 것이 제안되기도 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기업과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지원에 쓸수조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출연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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