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박근혜의 ‘외출’
지난 21일 국회에서는 헌정사 최초 기록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가결,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검사 탄핵소추안 가결이었다. 이런 놀랄 기록도 정가에서는 불과 6년 전의 충격적 상황에 견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정부 수립 후 처음 일어난 대통령 탄핵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현직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물러나 구속되고, 수많은 촛불이 평화적으로 이뤄낸 헌정 중단 사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탄핵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후 첫 인터뷰가 26일 중앙일보에 공개됐다. 그는 탄핵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했지만 책임은 모두 ‘주변’으로 돌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분노했다” “(검찰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대통령 본인은 국정농단을 전혀 몰랐고, 오로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이 벌인 일이었다고 했다. 국정원 돈을 받아 쓴 것도 문제되는 돈인지 몰랐다고 했다. 이것저것 다 모르면서 어떻게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 겨울 수백만명의 시민이 왜 촛불혁명에 나섰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박 전 대통령은 4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끝난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사드·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위안부 합의 등 외교안보 분야만 평가했을 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등 파란을 일으킨 시대착오적 구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년 4월 총선에 기웃거리는 친박 인사들에 대해 ‘친박은 없다’고 선 그은 게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출소 후 일거수일투족은 줄곧 뉴스가 됐다. 지난 4월 인연 깊은 의현 스님이 있는 대구 동화사로 첫 바깥나들이를 했고, 지난 25일엔 달성군 현풍시장을 방문했다. 이제 명예회복을 꾀하는 것일까. 박 전 대통령은 첫 언론 인터뷰 후 다음달부터 회고록도 연재한다고 한다. 집 밖으로의 행보를 넘어 말 그대로 ‘정치적 외출’을 시작한 셈이다. 2021년 말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 예우였지, 그것으로 국정농단·헌정 중단 책임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자중자애하고, 흑역사를 성찰하며, 국민들의 용서를 구하는 게 첫 ‘탄핵 대통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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