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년 만에 서울 돌아온 탱크와 미사일…시민들 빗속에서 “화이팅” 연발
돌발 상황에도 현장 군, 경찰이 빠르게 대처
행사 종료 후 주변 교통 마비돼 아쉬움 남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월남에서 전우들과 싸우던 때가 스쳐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비를 맞을 거면 이런 날에 맞아야죠.”
26일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김 모(82)씨가 광화문 대로를 지나는 탱크 행렬에 연신 박수를 치며 한 말이다. 김씨는 국가유공자 로고가 박힌 모자 위로 손을 든 채 박수를 쳤고 그 앞에 있던 시민들은 지나가는 탱크와 군 장비들을 향해 “화이팅! 화이팅!”하고 외쳤다.
이날 국방부는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을 앞두고 서울 숭례문~광화문 일대에서 국군의 날 기념행사로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서울 도심에서 군 장병들과 장비들이 시가행진을 한 건 지난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시가행진 현장은 남녀노소 통합의 장이었다. 여느 집회처럼 노래를 크게 틀거나 카메라를 들이미는 정치 유튜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복을 입은 육군 간부들이 곳곳에서 나눠주는 태극기를 받아든 시민들은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서 차분하게 시가행진을 기다렸다. 시가행진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안내됐지만 광화문 일대에는 오후 3시 전후부터 수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거주하는 한재화(73)씨는 “원래 탱크나 장갑차 같은 군용 장비를 보는 걸 좋아해 이런 시가행진이 있으면 시간을 따로 내서 보러 다녔다”며 “10년 전 마지막으로 했던 시가행진은 직장일 때문에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돼서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시가행진을 보러 온 40대 주부 A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했던 시가행진을 10년 만에 다시 한다길래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일찍 광화문에 왔다”며 “덕분에 아이가 맨 앞줄에서 탱크나 미사일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관광지를 보러 온 외국인들은 운 좋게 군 시가행진까지 보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미국 뉴저지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앤써니씨는 “점심 쯤부터 경찰과 군인들이 호텔 주변에 보이길래 물어보니 오늘 시가행진을 한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나왔다”며 “운 좋게 살면서 처음으로 군 시가행진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 쪽에서는 육·해·공군 마스코트 인형탈을 쓴 사람들이 시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일어난 돌발상황에도 군과 경찰은 빠르고 침착한 대처를 보여줬다. 이날 오후 3시 33분쯤 코리아나호텔 앞에 있던 한 80대 남성 A씨가 기절하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에 있던 경찰 인력들은 곧바로 A씨를 업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내려두고 현장에 있던 군 의무대를 호출했다.
경찰은 A씨와 대화를 통해 그가 평소 급성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군 의무대는 주변에 있던 앰뷸런스를 대기시켰다. 덕분에 A씨는 길에 쓰러진 지 약 7분 만에 경찰들 부축을 받고 혈압검사를 받으러 앰뷸런스에 갈 수 있었다.

행사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일대에 몰려들었다. 오후 3시 55분쯤 태권도 시범을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도복 차림의 군 장병들은 비를 맞으며 시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충성”을 외쳤고 시민들은 “멋있다” “화이팅”같은 말로 화답했다. 태권도 시범이 끝나고 10분 정도 뒤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모터사이클부대가 본격적인 시가행진 시작을 알렸다.
그 뒤로 L-SAM, 소형드론, 패트리엇 미사일, 국산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 등 46종 170여대의 장비들이 대로변을 채웠다. 4000여명에 달하는 육·해·공군에 더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8군 전투부대원 등 300여명도 시가행진에 참여했다.

행사는 별 문제 없이 끝났지만 그 뒤로 문제가 생겼다. 지하철을 통해 귀가하려던 인파와 퇴근 중이었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섞이면서 광화문역 통행이 한때 마비된 것이다. 국군 장병들이 현장에서 상황을 통제하려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열차가 승객들을 어느 정도 실어나르기 전까지 사람들은 같은 자리에 선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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