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책임준공 약속 못지킨 신탁사···수천억 배상 요구에 '나 몰라라'
수수료 2~3배 높아 적극 수주
수탁고 3년새 3배 늘어 17.3조
부동산 침체기에 시공사 부도
신탁·금융사까지 리스크 번져
자본 100% 내로 수탁 제한 등
당국, 건전성 강화 방안 추진
코로나19 기간 부동산 신탁사들이 공격적으로 확대한 ‘책임준공관리형 토지신탁’이 부실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탁사가 책임준공에 실패한 후 대주단에 원리금을 배상하지 못하겠다며 버티는 사고 사례도 등장했다. 금융 당국은 총수탁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등 신탁사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26일 신탁 업계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은 지난달 초 2200억 원 규모의 인천 물류 창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해 약속한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책준신탁은 ‘책임지고 준공하겠다’고 신탁사가 대주단에 약속한 상품이다. 시공사가 부도 등의 이유로 준공하지 못하면 신탁사가 다른 시공사를 구하든 대주단에 손해배상을 하든 책임을 지게 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던 2019~2021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책준신탁은 일반적으로 개별 시공사 신용만으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형 시공사들이 참여하는데 금리 인상 및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가 급등 등 건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중소형 시공사를 중심으로 부도 및 부실이 번졌기 때문이다.
인천 물류 창고 사업장의 경우도 시공을 맡은 3개사가 올해 초까지 약속된 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KB신탁으로 책임이 넘어갔다. 하지만 KB신탁 역시 약속된 기한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했고 이 사업에 돈을 댄 은행·증권·캐피털 등 10여 개 금융사는 수천억 원의 손실 위기에 처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KB신탁이 손배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규모가 커지니 ‘원리금 전액 배상은 못 하겠으니 소송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상환이 안 되면 금융사 손실뿐만 아니라 돈을 갚아야 하는 시공사들도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신탁 관계자는 “화물연대 및 레미콘·시멘트 업체 파업 등으로 인해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주단과 입장 차이가 있지만 KB신탁도 250억 원 넘는 자체 자금을 투입한 만큼 준공을 마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코로나19 기간 부동산 시장 활황이 맞물리면서 최근 몇 년 새 책준신탁 규모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신탁사들도 시공사가 추가로 보증한 상품인 만큼 수수료를 일반 관리형보다 2~3배 높게 챙길 수 있어 적극적으로 수주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월 말 6조 6000억 원 수준이던 국내 책준신탁 수탁고는 올해 말 17조 3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김 의원은 “책준신탁이 급증한 당시 체결된 계약이 올해부터 대거 만료되면 신탁사, 시공사, 대주 금융회사 모두 부실이 커질 수 있다”며 “금융 당국의 부실 관리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금융 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부동산 신탁사 건전성 관리 강화 방안’에 따르면 당국은 예상 위험을 반영한 토지 신탁 총수탁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한도 규제를 신설할 방침이다.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2027년께 전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책준신탁의 손배 책임 범위 및 시기 명확화, 준공 필수 사업비 100% 사전 확보 원칙화 등 내부 통제 강화 방안도 실시한다.
순자본비율(NCR) 산정 시 쓰이는 책준신탁 신용 위험액에 시행사·시공사의 신용 위험 등도 반영하기로 했다. 위탁자·시공사 신용 위험값 계산 시 현재는 위험 가중치를 두지 않지만 앞으로는 1.5배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이다. 현재 방식을 적용하면 책준신탁 사업장의 신용 위험액은 대출 원리금 잔액의 0.2%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실질 위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둔화된 가운데 2020~2022년 수주한 토지 신탁의 준공 기한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신탁사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부도 등 시공사 부실 위험이 확대됨에 따라 시공사의 건전성 리스크가 신탁사에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책준신탁은 도급 순위가 100위권 밖인 중소형 시공사의 사업장 비중이 80%를 넘겨 잠재 리스크가 크다”며 “연내 관련 법규·규준 등을 제·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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