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日기업 덤핑 놔두는 철강업계 속앓이
"괜히 정부를 자극할까 봐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전화를 끊겠습니다."
일본 철강사들이 자국 내수시장보다 30% 저렴한 값에 철강재(열연)를 한국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국내 대표 철강업체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명백한 덤핑 행위인데 정부에선 조치를 취한 게 없느냐"는 질문에 부서장은 "할 말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올해 1~8월 일본산 열연 제품은 t당 평균 80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국내 시장에서 판매됐다. 이는 포스코·현대제철 제품보다 15% 이상 저렴한 가격이다. 문제는 일본 제품의 한국 내 유통가격이 자국 시장보다 30%가량 저렴하다는 것이다. 덤핑 소지가 크지만 정부는 아직 관련 사안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반덤핑 조사는 기업이 덤핑에 따른 피해 사실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 제소해야 공식 개시된다. 이후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의거해 반덤핑 관세 부과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 업계는 신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들을 제소하지 않았다. 피해 기업의 제소가 조사를 위한 필수 요건인데 피해자가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알아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반덤핑 제소는 기업이 정부를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기업으로선 상당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일 철강기업 간 사업협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정색하고 반덤핑 제소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철강기업들은 정부 측에 해당 사실을 알려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가 일본 정부와 소통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결국 정부 역할은 정식 제소까지 이르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일일 것이다. 마침 한일 관계 해빙 무드 가운데 지난 5월 한일 철강 민·관 협의회가 4년 반 만에 재개됐다. 철강산업 관련 한일 협의체가 재가동된 만큼 정부에서 기업을 대신해 적극 소통해줬으면 한다. 반덤핑 제소는 최후의 카드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오수현 산업부 so2218@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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