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얽매인 인간 대신해 말의 질주 그리죠"
사진보다 더 실재같은 그림
사물 묘사하는 고된 작업에
多作 못해서 힘들었지만
이제는 과정 자체 즐겨요
11월 26일까지 모란미술관
사실을 재현해 진실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오랜 시간 미술의 목표 중 하나였다. 최대한 정확히 표현하려는 노력은 때로 추상적인 표현과 그리 다를 것이 없게 보여질 때도 있다. 한국의 극사실회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이석주 숙명여대 회화과 명예교수(71)의 작품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정작 최근 개인전이 열린 남양주에서 만난 이석주 작가는 극사실주의라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분명 주태석·고영훈·지석철 작가 등과 함께 1970년대 '홍대 극사실주의 4인방'으로 불린 과거가 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더 이상 일상의 재현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그림에 극사실주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용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못박은 그는 "여러 이미지들을 연결해 서사를 만들고 싶은 부분이 크다. 갈수록 표현주의적인 요소도 많이 나타나고, 페인팅 자체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며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이 같은 창작 욕구는 어쩌면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연극의 거목인 고(故) 이해랑 선생에게서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지낸 큰형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 등과 달리 미술에 투신한 것을 두고 "막내 아들이라 조금 더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웃었지만 "형님도 그렇고 누구든 인간의 내면에는 예술, 정서에 대한 갈망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고 더했다.
딸인 이사라 작가에게서는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같은 방식이 아닌 팝아트 계열의 작업을 하는 딸에 대해서는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면서도 "개성이고 요즘 트렌드에 맞춘 것이니 인정해주고, 작업에 대한 얘기는 굉장히 조심해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남양주 모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간만에 개최한 그는 "화랑 등지에서 하는 단체전에 나서면 공간의 문제로 그림을 몇 점 못 걸어 내 생각을 많이 펼칠 수가 없는데 이번에는 2개 층에 걸쳐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시하다보니 스스로의 정체성을 느낄 수도 있었고, 앞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치 사진처럼 다양한 사물을 그려낸 뒤 조합하는 그의 방식은 따지자면 재현이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기는 대상을 고르는 것이 의미를 갖는 핵심이다. 커다란 100호짜리 캔버스에 벽돌의 질감까지 재현해 표현하면서 젊은 시절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그림은 도시에서 마주한 일상 생활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을 그려낸 일상 연작으로 이어졌다. 이후 다시 말과 시계, 기차 등으로 대표되는 그림을 그려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예컨대 책은 오래된 문명의 시계이고, 꽃은 유한한 생명의 아름다운 순간이 될 수 있는 식이다. 질주하는 말도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을 대신해 그리곤 했었다. 사물들이 어울려 새로운 것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소위 데페이즈망(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해 배치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며 "다만 나는 초현실주의에서 중시하는 인간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내면보다는 일상성을 너무 떠나지 않는 범위에서 연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의자라는 사물에도 관심이 많다. 의자는 인간의 존재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오브제고, 예를 들어 시계와 연결하면 존재의 유한성, 부재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와 같은 열정으로 끊임없이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를 그만큼 많이, 자주 혹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루 만에 몇 작품을 그려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다작을 못 하나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절도 있다"며 웃은 작가는 "오래 걸린다고 작품 질이 월등히 좋다고 할 수도 없는 만큼 지금은 작업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즐기고 싶다. 그걸 못 즐긴다면 미술을 택하지 말았어야지 싶다"며 베테랑다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전시는 11월 26일까지 경기도 남양주 모란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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