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치만으로도 年10% 이상 수익률”…코인 ‘폰지·먹튀’에 투자자들 피눈물 [민원 난장판 된 코인판]
코인은행 예치했다 미회수 피해자들 속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국가신문고 찾아
내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돼도 유권해석 모호 가능성
[헤럴드경제=유혜림·권제인 기자] “코인예치업체들은 ‘우리한테 코인 맡기면 다른 곳보다 이자 더 쳐서 돌려줄게’라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유인합니다. 그렇게 예치받은 코인업체는 다시 자신보다 더 높게 이자를 쳐주는 예치·운용업자들을 찾아 코인을 옮깁니다. 연 10%를 제시했다면 연 12%, 15%를 내건 다른 운용사에게 맡겨 코인 수를 불리는 식이죠. 만약 이 정점에 있는 업체가 문제가 생기면 줄줄이 타격을 입습니다. 기존 고객에게 줄 이자를 신규 예치금으로 돌려막아도 알 길이 없습니다.”(한 코인업계 관계자)
가상자산 예치운용업체인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로 비롯된 출금 중단 사태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10% 이상 고수익을 약속하고 고객을 끌어모은 하루인베스트가 지난 6월 돌연 “파트너사 B&S홀딩스에 문제가 생겼다”며 입출금을 중단했다. 이튿날 델리오는 하루인베스트먼트에 자산 일부를 위탁했다고 실토하면서 출금을 잇달아 막았다. 이들의 위탁운용 최상단에 있는 B&S홀딩스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연쇄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고금리 미끼’에 현혹됐다 갑작스레 출금 정지=이용자들은 일종의 ‘코인 은행’에 예치했다 코인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하루인베스트먼트의 예치 서비스를 이용한 30대 김모 씨는 “최근 2~3년간 코인시장이 좋지 않았던 터라 코인을 맡기기만 하면 연 10% 수준의 이자를 보장해준다는 말에 예치했다”며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버젓이 국내 영업도 하고 이렇게 한국인 피해자가 많은데 연락창구도 하나 없이 가끔 오는 안내메일도 영어뿐”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하루인베스트가 규제 리스크를 피하고자 여러 국가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 실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민신문고부터 찾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금융위원회에서 제출받은 ‘3년간 가상자산 민원 접수 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코인업체의 출금 정지로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 민원은 118건의 민원이 들어와 지난해(20건)보다 5배 늘었다. “○○○ 예치상품이 아닌 자율 보관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산인데도 출금 정지됐다”(6월 27일), “가상자산의 출금거래가 안 되는데 문의할 곳이 없다”(6월 27일) 등의 민원이 잇따랐다.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이나 이용자 구제 방식도 미지수다. 하루인베스트 피해자대표단에 따르면 이번 입출금 중단 사태로 묶인 하루인베스트 고객 자금 규모는 1030억원을 넘는다. 델리오는 지난달 29일 이용자 소통카페를 통해 가상자산 예치 규모는 약 900억원이며 추정 손실률은 약 30~50%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델리오 집단소송을 맡은 이정엽 LKB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델리오는 어느 지갑에 이더리움, 비트코인 몇 개씩 위탁했고 앞으로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다는 등 구체적 현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갑도 공개하지 않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가상자산 예치사업 규제 근거 無…당국 방치 시각도=예치 서비스를 규제할 제도가 없는 것도 위험을 키운 원인 중 하나다. 통상 시중 금융기관이 예치자금을 다른 기관에 재위탁할 경우 자본시장법 내에서 당국의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하지만 현행법상 가상자산 예치사업자의 영업 행태나 자금관리 등을 규제할 근거는 없다. 업체들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면서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던 배경이다. 내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전까지 가상자산업계를 다루는 유일한 규정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제다.
하지만 델리오의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VASP로 인허가를 받은 만큼 이를 믿고 코인을 예치한 투자자도 상당수였다. 이 때문에 “VASP 인증받은 업체 ○○○의 출금 정지 사태에 대해 금융위에서 책임지고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7월 7일) 등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금융당국 앞으로 접수된 민원만 52건에 달한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델리오는 지난 19일 블로그를 통해 “가상자산 예치·운용이 금융당국의 직접적 관리 감독 대상은 아니나 해당 기관의 요구에 따라 예치·운용에 대한 자료 및 현황을 지속적으로 제출해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코인시장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델리오의 예치와 운용 등 사업구조를 모를 리가 없다”고 했다.
또 지난해 말 고팍스가 ‘FTX 사태’ 후폭풍을 맞으면서 자체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도 출금 지연을 겪는 ‘현재 진행형’인 상태다. 그간 바이낸스는 금융당국의 사업자 변경 허가를 받아야 고파이 예치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코인이 묶인 고파이 이용자들은 올 들어서만 ‘사업자 변경수리’ 민원 85건을 제출할 만큼 원성이 컸다.
▶전문가 “당국 관리 범위 다양화돼야”=전문가들은 예치사업이 이른바 폰지 사기(다단계 투자 사기)에 취약한 구조라고 경고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변동성이 큰 코인시장에서 연 10%가 넘는 수익률을 꾸준히 보장하면서 수익을 내겠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니 신규 예치금을 기존 이용자의 이자를 지급하는 데 돌려막는 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또 고객들의 예치금도 허술하게 관리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짚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사업 유형이 늘어나는 만큼 금융당국의 관리 범위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인마저도 유형과 기능이 다양해져 하나의 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내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도입되더라도 가상자산 예치·운용 서비스를 완전히 금지하는지 혹은 예치상품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돼 자본시장법에 적용받는지 등 유권해석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이날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는 금융위에 법령 해석을 요청하는 등 업계도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디지털자산 법률전문가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가상자산 예치업은 코인을 보관하고 운용하는 성격”이라며 “금융당국은 예치를 규제 밖 사업이라고 방치할 게 아니라 기존 특금법의 ‘보관’ 영역에서도 예치업자들을 관리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17년 ‘정부 가상통화합동대책반’은 무분별한 ICO(가상자산 공개)를 규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입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유틸리티형·지불형·화폐형 등 종류별 규제 접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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