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제도에 화학규제까지, 높아지는 EU ‘녹색 무역장벽’

박상영 기자 2023. 9. 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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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과불화화합물 전면 규제 예고
정부 “신중한 검토 필요” 의견 전달
10월부터 탄소배출량 EU 의무보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 규제에 나서면서 국내 산업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대체 물질 개발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규제 재검토를 EU측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오는 10월부터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돼 국내 산업계는 잇달아 ‘녹색 무역장벽’에 맞닥뜨리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EU의 유럽화학물질청이 과불화화합물의 전면 사용 제한을 제안한 것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유럽화학물질청과 세계무역기구(WTO)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과불화화합물은 탄소와 불소가 결합한 유기화학물질이다.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을 막는 특성을 가져 1940년대부터 포장재·자동차·배터리·의료 장비·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포장용기, 의류, 주방용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면 코팅제로 쓰이는 과불화옥탄산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반도체 회로 패턴을 만드는 식각 공정에서 냉각제로도 쓰인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는 분해되지 않아 ‘영원히 남는 화학물질’이라는 악명이 붙었다. 독성까지 있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서는 과불화화합물 기능을 대체할 물질을 당장 찾기 어려운 만큼 사용을 전면 제한한다면 한국 제품의 생산과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산업부도 EU측에 “대체 물질 개발이 쉽지 않아 글로벌 공급망에 큰 혼란과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배터리와 반도체 생산,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에 문제가 생겨 전기차 보급이 지연되는 등 탄소중립과 순환경제 이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유럽화학물질청은 규제 유예기간을 5년 또는 12년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부는 대체 물질 개발 현황과 소요 기간 등을 정확히 파악해 보다 현실성 있는 유예기간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체·환경 유해성 검증을 거친 ‘유해한 과불화화합물’만 규제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1만 종이 넘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인 만큼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향후 논의 현황을 계속 지켜보면서 정부와 산업계 의견을 지속해서 관철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청항 수출화물부루 선적대기중인 철강제품들./경향신문 자료사진

EU가 예고한 탄소국경조정제도도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시멘트·전기·비료·철 및 철강 제품·알루미늄·수소 등 6대 품목을 EU에 수출하는 기업은 EU 측에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오는 2026년부터는 EU 수입업자는 한국산 제품에 포함된 탄소량만큼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구체적인 인증서 가격은 EU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돼 결정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t당 10만원이고 한국이 2만원이면 수입업자는 차액만큼인 8만원어치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기업이 탄소배출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보고되지 않은 배출량에 대해서는 1t당 10∼50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무역협회는 “2024년까지는 EU 이외의 제3국에서 시행하는 탄소 배출량 산정 방식이 허용되지만 2025년부터 EU 방식만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EU식 배출량 산정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 EU 수출액 681억 달러 중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 품목의 수출액은 약 7.5%인 51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 품목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9.3%(45억 달러)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국내도 탄소세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아 무협 수석연구원은 “저탄소 배출 상품 가치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더욱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는 수출 경쟁력을 위해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노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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