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하반기 심야책방에 가봤어요~
코로나19 이전이었다. 당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 심야책방이 열리고 있었다. 평소 글을 긁적이는 것을 즐겨하는 나로선 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진다. 하지만 아이가 고등학생이어서 나도 덩달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심야책방이 열린다면 그때 방문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최근에 심야책방 소식을 들었다.
9월 22일(금) 저녁 7시에 ‘2023 하반기 심야책방’이 열린다고 하니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한국서점조합연합회 누리집(http://www.kfoba.or.kr/)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서울에서도 12곳의 책방에서 행사가 개최되고 있었다. 그중 조은이책에서 진행하는 ‘길에서 만나는 한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9월은 독서의 달이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마침 한글날이 가깝기도 해서 ‘길에서 만나는 한글’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간다. 오늘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된 주인공은 평생 한글을 연구한 김슬옹 저자였다. 그는 한글학자이자 한글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조은이책 하반기 심야책방 프로그램의 주제가 ‘책으로 이어지는 우리 문화’였다. 이번 기회에 김슬옹 저자의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의 글, 한글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았다. 그의 한글 사랑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은이책에서 9월 22일 저자와의 만남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문화적인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점점 확대되고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한글 사용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매월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과연 한글로 충실히 채우고 있는 것인지 자문자답해 봤다. 마치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 우리가 제약 없이 쓰는 한글의 소중함을 잊은 채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녁 7시가 되기 전 조은이책을 방문했다.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바깥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된 책방은 군데군데 테이블이 있었다. 음료도 주문할 수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음료를 마시며 한껏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쉼터와도 같은 공간이다.
책방 문을 열자마자 조은희 대표가 반겨 맞아주었다. 심야책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저녁 7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김슬옹 저자와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김슬옹 저자는 그의 저서에 나온 대로 한글의 탄생에서부터 지금 이 땅의 곳곳에 남아 있는 한글의 흔적을 찾아서 한글의 길을 걸어보고자 했다.
먼저 그는 철도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 일화를 공개했다. ‘슬기롭고 옹골지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슬옹’으로 바꾼 뒤 그는 ‘세종대왕님이 환히 웃으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일기를 썼다.
‘길에서 만나는 한글’은 총 4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마당은 ‘한글가온길, 한글세움길을 걷다’, 둘째 마당은 ‘훈민정음의 발자취를 찾아서’, 셋째 마당은 ‘한글유적지’, 넷째 마당은 ‘한글기념관과 한글마당 탐험’이다. 저자는 책 일부를 발췌해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다.
‘한글가온길’(http://gaongiltour.com/)은 2013년 서울시가 한글 창제 570돌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 조성한 길이다.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가온’은 순우리말이다. 한글이 우리 삶과 역사에서 중심이 되어 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 주시경 선생의 집터, 한글학회 등 한글과 관련 있는 흔적들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서대문역 근처에 살고 있어서 종로에서 서대문역 쪽으로 걸어오면서 늘 마주치던 곳이다. 그런데 아직 한글가온길을 제대로 걸어본 적은 없다. 다행히 세종국어문화원에서 한글가온길 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한글날에 신청해서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글의 두 거인으로 주시경 선생과 헐버트 박사가 있다. 김슬옹 저자가 질문했다. 주시경 선생이 늘 들고 다니는 보따리에 든 게 무엇인지를? 내가 얼른 손을 들고 ‘책과 원고지’라고 답변했다. 정답을 맞혀서 김슬옹 저자가 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어릴 적 주시경 위인전을 읽은 덕분이다. 주시경보다 주보따리로 불리던 분이었다. 그는 불철주야 연구한 끝에 현대 한국어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미국인 헐버트 박사가 있다. 그는 1886년 근대적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빙되어 내한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전용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냈다. 거기에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
김슬옹 저자는 우리의 글, 한글을 알리는 일이 그의 소명인 것처럼 보였다. 때론 격정적으로 눈물을 쏟기도 하고 때론 작금의 세태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의 한글 사랑을 독자들인 우리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슬옹 저자의 강연에 온·오프라인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북토크를 ‘책수다’라고 표현했다.
김슬옹 저자와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은 ‘심야책방 지원사업’ 덕분이다. 상, 하반기 총 8번에 걸쳐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 열리고 있단다. 조은희 대표와 ‘2023 심야책방 지원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심야책방 지원사업이 궁금해요.
A. 저희같은 책방들이 한 달에 한 번 저자를 초청해서 저자와의 만남 등의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저자를 초청하려면 강연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재정상 쉽지 않아요. 그런데 심야책방 지원사업 덕분에 저자와의 만남 등을 개최할 수 있죠.
Q. 심야책방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독자들 반응은?
A.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저자와의 만남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어왔어요. 코로나19가 완화된 지금도 온·오프라인 방식을 병행하고 있어요. 책방을 직접 방문하는 게 여의치 않은 분들도 라이브 방송으로 저자의 강연을 경청할 수 있어요.
Q.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되는 저자를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A. 하반기에 ‘책으로 만나는 우리 문화’를 주제로 잡았어요. 그리고 주제에 맞춰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살펴봤어요. 유명한 작가가 쓴 책보다 숨어 있는 책이지만 많은 분에게 알려지길 원하는 책 위주로 선정하고 있어요.
이어서 김슬옹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어땠는지?
A. 책을 쓴 저자로선 제 책을 알릴 기회가 주어지니 정말 반갑고, 감사하죠. 특히 심야책방 프로그램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저녁 시간대라서 낮보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어요.
Q. 저자가 쓴 ‘길에서 만나는 한글’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A. 제가 10여 년 한글과 연관된 유적지를 답사해서 기록해 둔 글을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제 책을 ‘우리 한글 답사기’라고 간주해도 좋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 한글가온길, 울산에 외솔기념관, 김해에 김해한글박물관 등등 전국 곳곳에 한글과 관련된 유적지가 있어요. 한글날을 맞아서 지역의 한글 관련 유적지를 걸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겁니다.
Q. 독자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A.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의 글이 한글입니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어요.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고 지금 세종학당을 중심으로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아요.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곳곳에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표기된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다중이용시설에 ‘AED’가 있는데, ‘자동심장충격기’라고만 표기해도 좋을 텐데요. 이런 것들을 보면 아쉽죠.
김슬옹 저자는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우리의 문화 콘텐츠의 저변엔 한글이 있다는 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이 지닌 평등성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드러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심야책방 지원사업의 목적은 심야책방 운영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지역서점에 관심을 갖고 이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독자들이 지역서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사업에 선정된 전국의 서점들이 정규 개점 시간을 연장해 서점마다 자기 색깔에 맞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여 서점으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심야책방 지원사업 덕분에 모처럼 금요일 저녁에 책방에서 저자를 만나고 저자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조은이책과 같은 지역서점이 이 지원사업 덕분에 저자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구석구석 골목길에 자리한 지역서점을 독자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이런 사업이 널리 확산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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