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경쟁, 아픈 교실] 한 바퀴만 더
미니픽션 10부작 ③ 주원규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한 바퀴만 더 돌아보자.”
“아! 엄마. 지금이 몇 신줄 알아? 다 끝났어. 이젠 소용없다고.”
“아직 안 끝났어. 한 바퀴만 더, 더 돌아보면.”
“한바퀴 더 돈다고 소용없어. 엄마 때문에 난 루저가 됐어. 이 모든 게 다 엄마 때문이야!”
그때였다. 아직은 쓸 만하다고 믿었던 규의 엄마 윤이 몰던 벤츠 시(C)클래스의 엔진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한티역 앞이었고, 학원거리가 막 시작하는 초입의 사거리에서였다. 우회전하는 건널목 중앙에 차가 딱 멈춰버렸는데, 윤은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오래된 국산차라면 키를 걸어 시동도 다시 걸어보고, 액셀러레이터라도 밟아 보든지 뭐든 하겠는데, 전남편이 남기고 간 이 어중간한 가격대에 어중간한 보급형 독일 수입차의 경우, 한 번 시동이 꺼져버리면 답이 없다. 모든 게 점멸된 계기판 위에 붉은색 엔진 경고등만 켜져 있었다.
“아 씨! 또 꺼졌어. 차가 이런데, 어떻게 한 바퀴를 더 돌아? 이젠 진짜 소용없어.”
“차에서 내리자. 일단.”
“미쳤어? 차들 빵빵거리는 소리 안 들리냐고!”
윤은 서둘러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들 규의 손을 잡고 녀석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규의 말대로 인도와 접한 3차선 도로는 학원 수업을 끝내고 나올 자녀들을 기다리는 차량이 물 샐 틈 없이 정차 중이었다. 차들은 여차하면 출발할 기세로 시동을 켠 채 대기 중이었는데, 윤의 벤츠가 건널목 앞을 가로막아 통행을 방해한 것에 항의로 클랙슨과 상향등을 기다렸다는 듯 난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급해진 윤이 하나뿐인 아들 규의 손을 잡고 학원거리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한티역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른바 대치동 학원 블록을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규가 짜증 내는 건 당연했다. 엄마의 지금 행동이 녀석이 보기엔 매우 어설펐기 때문이다. 윤은 규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증권회사에서 다니는, 성과급 빼고 기본연봉 1억5천을 받는 능력 있는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이 강남의 유사성매매업소를 다닌 게 이혼사유였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남편이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소송까지 가서 겨우 양육권을 쟁취했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 유책 배우자가 맞긴 맞는데, 너 후회하는 거야. 규는 내가 키워야 제대로 키울 수 있어.”
“닥쳐. 키스방이나 다니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어! 규는 내가 제대로 키워.”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윤은 자신만큼은 규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경쟁 위주 사회에서 진정한 인성을 정성껏 가르치고 함께 배워가며 아이에게 바른 가치관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시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윤의 소박한 희망은 비참할 만큼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규의 중학교 2학년 때,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붕괴는 시작되었다.
목소리 큰 사람, 법의 맹점을 잘 파고드는 사람이 이기거나, 최소한 무승부인 세상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규의 동급생들, 그들의 부모는 학교폭력위원회 개최 이전부터 난리를 피웠다. 선생들이 자기 아이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이유가 야단법석의 원인이었다. 그때, 윤은 가해자들의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선생들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규를 설득해 전학을 결심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윤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소위 8학군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규를 향한 가해자들의 폭력은 계속되었다. 결국, 윤은 아들을 아예 피신시키기로 했다. 8학군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를 가자는 제안을 꺼냈고, 실행에 옮겼다.
규는 딱 반년간만 대안학교에서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해졌다. 전남편과 몰래, 수시로 통화한 규는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불안과 초조가 극에 달했고, 결국, 더는 대안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대안학교에서도 검정고시를 볼 수밖에 없어. 그런데, 검시를 볼 때 보더라도 여기선 절대 안 돼. 괜찮은 대학, 절대 못 간다고!”
“대학을 꼭 가야 해? 대학 가지 않고도 우리,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날 때리던 애들은 8학군에서 잘만 버티고, 킬러 같은 학원에 킬러 같은 인강이란 인강은 다 듣는데, 난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규가 고2가 되던 그해, 결국 윤은 하나뿐인 아들의 뜻에 굴복했다. ‘하나뿐인 아들’이란 점이 윤을 초조하게 했다. 시골에 자리 잡은 대안학교 교장 선생님은 절대 세속에 찌든 전남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하나’뿐인 아들, 그 ‘하나’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지금까지 지켜온 윤의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우습게 짓뭉갰다.
그렇게 규는 다시 돌아왔다. 강남, 대치동으로.
8학군에 돌아왔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규의 절망은 더욱 크고 깊어졌다. 규는 사정없이 엄마 윤을 원망하고 또 공격했다.
“검시 보는 것만 해도 불리한데, 이러면 수능으로 승부 보는 수밖에 없어. 그래도 이미 한참이나 늦었다고,”
“이비에스(EBS) 보면 되잖아. 거기서 수능 문제 웬만하면 다 나온다며?”
“엄마 미쳤어? 아님, 바보야? 그걸 믿어? 뉴스하고 교육부에서 하는 말을 믿냐고?”
“뉴스하고 교육부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
“엄마, 장난해? 왜 이래? 이러면 진짜 끝장나는 거야. 웬만한 대학, 웬만한 유학, 웬만한 돈 있어도 열등, 패배, 나락 가는 게 기본인데, 대체 왜 이래? 왜 정신 못 차려?”
“…”
“엄마. 하나뿐인 아들한테 정말 이러고 싶어? 정말 이러려고 이혼했어? 처음부터 버티면 됐잖아. 끝까지 잘 버티면 됐는데, 왜 자퇴시키고, 대안학교 보내고, 그 미친 짓을 왜 했냐고! 왜!”
눈물이 핑 돌았다. 윤은 규의 비수같이 가슴에 꽂는 원망의 말에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질 만큼 낭만적일 때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무조건 규의 말을 들어줘야만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인구수도 줄고, 출산율도 줄고, 아이들도 줄었다는데 규가 원하는 킬러 같은 학원에선 학생을 더 받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린 소수정예입니다.’
이 말은 순화된 말이다. 어떤 원장은 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 외고, 과고 출신이 아닌 대안학교 출신 검정고시 얘들은 안 받아요. 그건 우리 학원계의 상식이고 기본이에요.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저 자신이 다 창피해지네요.”
울 것 같은, 아니 이미 마음으로 울고 있는 윤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애써 추스르며 대치동 학원거리를 미친 듯 돌아다녔다. 촘촘하게 설치된 씨씨티브이(CCTV), 가지런히 정돈된 상가 간판, 세련된 디자인의 고층 아파트, 질서 있게 도열한 수입차들, 단정하고 일사불란한 학생들…. 이 모든 질서에 하나뿐인 아들 규가 소외되었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윤은 아들 규의 손을 다시금 꽉 붙잡고 호소하듯 말했다. (부질없다는 거 알면서도, 대안학교 출신을 받아주는 학원이 혹시라도 나타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한 바퀴 만 더 돌자. 응? 하나뿐인 아들, 한 바퀴만. 한 바퀴만.”
주원규 | 작가. 장편소설 ‘열외인종잔혹사’ ‘메이드 인 강남’ ‘서초동리그’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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