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서 브라질까지 자율운항으로” 세계 첫 태평양 횡단 우연 아니었다 [그 회사 어때?]

2023. 9. 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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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자회사 ‘아비커스’
대형 상선·소형 레저보트 시뮬레이션 시연
항해 인지·판단·제어 모두 시스템이 알아서
연내 미국법인 설립해 북미시장 공략 박차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아비커스 본사의 대형선 시뮬레이션실에서 최휘용 아비커스 책임연구원이 자율운항시스템 ‘하이나스 컨트롤(HiNAS Control)’을 시연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지금 싱가포르에서 브라질로 가는 대형 화물선에도 아비커스의 자율항해시스템이 적용돼 자율운항을 하는 중이에요. 자동차로 치면 ‘오토파일럿’ 모드라고 보면 돼요. 항해사가 항로를 정하면 그에 맞춰 최적의 속도로 운항하도록 자동으로 안내하고 제어하죠. 아직은 사람이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완전 무인화도 가능해질 겁니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아비커스 본사의 대형선 시뮬레이션실은 선박의 심장인 조타실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했다. 2평(6.6㎡)이 채 안 될 정도로 좁았지만 핸들과 기어 레버는 물론 선박 조종에 필요한 각종 필수 전자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최휘용 아비커스 책임연구원은 이날 자체 개발한 ‘하이나스 컨트롤(HiNAS Control)’을 시연해 보였다. 하이나스 컨트롤은 인지·판단·제어 기능을 모두 갖춘 레벨 2 자율운항 솔루션으로 아비커스가 2020년 4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자율운항 보조시스템 ‘하이나스 내비게이션(HiNAS Navigation)’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각종 항해장비·센서로부터 제공된 정보를 융합해 선박이 최적 항로와 속도로 운항할 수 있도록 안내·제어한다.

운항 컨트롤이 가장 까다롭다는 집 모양의 연습 항로를 따라 가상의 선박이 움직이자 배의 위치를 나타내는 계기판의 숫자도 바뀌었다. 모니터에는 점선의 예상 항로를 살짝 비켜간 실제 항로가 그려졌다. 큰 틀에선 항해사의 항로를 따르지만 미세 조정이나 엔진 RPM(분당 회전수) 제어 등을 통해 최적의 움직임을 구현하고 있다고 최 책임연구원은 설명했다.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시스템 ‘하이나스 컨트롤(HiNAS Control)’의 시뮬레이션 모습. 가상 선박의 위치와 움직임이 계기판에 표시돼 있다. [김은희 기자]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시스템 ‘하이나스 컨트롤(HiNAS Control)’이 적용돼 현재 운항 중인 한 대형선의 항로가 모니터에 그려져 있는 모습. [김은희 기자]

정면의 스크린으로는 항해 중인 선박의 머리 부분이 보였다. 잔잔한 바다는 버튼 조작만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다가 됐고 바람이 몰아치거나 거센 파도가 일기도 했다. 물론 실시간 기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상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도 있다. 파도, 바람, 조류와 같은 외적 작용은 물론 다른 선박과의 조우나 장애물 직면 등에 대한 대응도 하이나스 컨트롤이 알아서 한다.

최근에는 실제 선박과 연계해 자율운항을 검증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달 초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배에 직접 타 자율운항을 테스트했고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브라질로 가는 배의 자율운항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이곳 시뮬레이션실에서 살펴보고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모니터에 한참 인도양을 지나고 있는 배의 항로를 띄우고는 “실시간으로 자율운항 중인 이 배의 데이터를 받아 시스템 정확도 등을 살피고 있다”며 “가상 시뮬레이션은 셀 수 없이 많이 했고 지금은 실운항 프로젝트 단위별로 시스템을 검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비커스는 이를 통해 하이나스 컨트롤의 연료 절감 효과와 온실가스 저감 실적을 검증할 방침이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아비커스 본사의 소형선 시뮬레이션실에서 한선도 아비커스 연구원이 레저보트용 자율운항시스템 ‘뉴보트(NeuBoat)’를 시연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소형선 시뮬레이션실은 다음달 초 미국에서 열리는 파워보트쇼 전시 준비로 바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상용화 레저보트용 자율운항시스템 ‘뉴보트 도크(NeuBoat Dock)’를 이달 정식 출시하고 처음 참가하는 행사라 레저보트 시장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겠다는 포부가 컸다.

다수의 장비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지만 뉴보트 도크의 핵심인 6대의 카메라 시스템과 디스플레이는 실물로 볼 수 있었다. 보트의 앞, 뒤, 양옆에 카메라를 달아 360도 탑 뷰를 보여주고 충돌 회피와 접안 지원 기능을 제공하는 게 주기능이다. 자동차의 주차제어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한선도 아비커스 연구원은 “전문 항해사가 운항하는 대형선과 달리 레저보트는 자동차처럼 일반 소비자가 면허를 취득해 운항하기에 사용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며 “오토도킹(자동 접안)에 중점을 둔 제품을 먼저 출시한 것도 접안을 어려워하는 운전자의 수요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부연했다.

레저보트의 경우 모델이 워낙 다양한 데다 커스터마이징(개인 맞춤 제작)이 많아 제조사, 모델 등을 선택해 시뮬레이션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배경으로는 부산과 보트가 가장 많이 오가는 미국 마이애미의 바다를 구현했다. 목적지를 정하면 뉴보트가 직접 생성한 항로를 따라 자동으로 항주한다. 바람과 파도, 조류 등도 실감 나게 모사해 실제 배를 운항하듯 테스트할 수 있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아비커스 본사에 CES 혁신상을 비롯한 각종 자율운항 기술 관련 특허, 인증 서류들이 전시돼 있다. [김은희 기자]

HD현대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아비커스는 대형 상선과 소형 레저보트 분야에서 동시에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대형선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고 중국~싱가포르 구간의 실선 시험을 통해 검증까지 완료했다. 이미 하이나스 내비게이션은 300척분 이상, 하이나스 컨트롤은 40척분 이상을 수주한 상황이다. 상용화 측면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수준이다.

뉴보트 도크는 출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유럽의 주요 요트 제작사와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비커스는 최근 비즈니스 전문 사회관계망서비스인 링크드인을 통해 프랑스의 베네토, 이탈리아의 핌과 산로렌조 요트, 영국의 프린세스 요트 등 4개사가 만드는 수개의 주력 모델에 뉴보트 도크를 탑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비커스는 최근 유럽의 주요 요트 제작사가 만드는 수개의 주력 모델에 뉴보트 도크를 탑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비커스 링크드인 캡처]

노르웨이, 핀란드 등 경쟁국과 비교해 한발 늦게 자율운항 선박 시장에 뛰어들고도 빠르게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었던 것은 HD한국조선해양이 수십 년간 선박을 건조하며 축적한 데이터 덕분이다. 기술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기술 검증을 위해선 많은 실증 사례 분석이 필요한데 아비커스의 경우 빠른 속도로 운항 데이터를 수집하며 실적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특히 선박의 경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다른 모빌리티에 비해 첨단 기술 적용이 느린 편이고 위성정보를 받아오기 용이하다는 것 외에는 기술 구현의 걸림돌도 많다. 예컨대 차선이 없어 충돌 회피 경로를 계획하기 어렵고 브레이크가 없어 제어가 까다로우며 파도나 바람 같은 외부 환경에 취약하다.

관련 제도나 법규도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한 단계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8년 1월 발효를 목표로 자율운항 관련 규정을 개발 중이나 아직은 자율운항 선박 도입에 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기존 규정을 식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선박이 국제표준이 되지 못하면 지금까지 개발한 솔루션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거나 아예 못 쓰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시스템이 설치된 레저용 보트 [아비커스 제공]

그럼에도 아비커스는 자율운항이 꼭 가야 할 길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대두되고 있는 환경 문제와 선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경제성·안정성까지 높일 핵심 기술로 시장 전망이 밝다고 아비커스 측은 강조했다.

실제 마켓츠앤드마켓츠가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자율운항 시장은 2023년 60억달러(약 8조원)에서 2028년 129억달러(약 17조3000억원)로 연평균 16.4%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마켓츠앤드마켓츠 자료, 헤럴드경제 DB]

아비커스는 2021년 1월 설립 이후 눈에 띄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몸집만 봐도 7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어느덧 직원 80명대를 바라보고 있다. 아비커스의 이러한 비상에는 HD현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2020년 12월 분사 당시 HD현대는 60억원을 출자했으며 지난해 7월 80억원, 올해 4월 150억원을 추가 출자하는 등 390억원을 쏟아부었다.

특히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지난해 ‘CES 2022’에 이어 올해 ‘CES 2023’에서도 그룹의 미래를 이끌 핵심 신사업으로 자율운항 선박을 소개할 정도로 아비커스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CES 2022'에서 아비커스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HD현대 제공]

아비커스는 지난해 매출 16억3100만원에 9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매출 규모는 아직 미미하지만 2021년(3억7800만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사업 특성상 수주와 매출 간 시차가 있는 만큼 하이나스 내비게이션과 하이나스 컨트롤, 뉴보트 도크가 시중 선박에 본격적으로 탑재되면 매출 확대와 함께 영업이익도 흑자 전환될 것으로 아비커스는 기대하고 있다. 아비커스가 제시한 2026년 매출 목표는 2000억원이다.

아비커스는 대형 상선 자율운항 기술로 해양 물류를 개혁하고 소형 레저보트 자율운항 기술로 해양 레저의 대중화를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위해 연내 미국 법인 설립부터 완료할 방침이다. 당장 가시화되는 북미권 레저보트 자율주행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차원에서다. 아비커스는 올해 7월 북미지역 상무이사로 이 지역 해양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폴 페타니를 선임했고 지금은 미국 내 영업·마케팅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사무소를 꾸리는 중이다.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솔루션이 탑재될 미래 해상택시 조감도 [아비커스 제공]

아울러 2025년에는 긴급한 상황에서만 사람이 개입하는 레벨 3 이상의 자율운항 솔루션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단계적으로 자율도를 높여 완전 무인선인 레벨 4까지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아비커스 관계자는 “자율운항 기반의 해양 모빌리티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라며 “자율운항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보고 안전·편의·경제 항해 서비스는 물론 나아가 전기추진 자율운항 수상택시 등 모빌리티 사업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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