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예술의 도시 강릉으로…'영감과 힐링' 제2회 GIAF 개막

김일창 기자 2023. 9. 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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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초, 52세 한 여성이 37일간 서울 도보여행 기록한 '서유록' 주제
프란시스 알리스·티노 세갈 등 작품 여러 곳서 선봬…여행·예술 일석이조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이 열리는 곳 중 한 곳인 국립대관령치유의숲을 한 관람객이 걸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티노 세갈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23.9.22/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강릉=뉴스1) 김일창 기자 = 이 가을, 예술로 물든 강릉이 손짓한다. 대관령숲길에선 이름 모를 낯선 여성이 치유의 노래를 불러주고, 시내에 있는 조그만 독립예술극장에선 프란시스 알리스의 영화를 틀어준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기찻길과 터널은 인도로 변해 우리의 발걸음을 살포시 받들고, 수명을 다한 동부시장의 낯선 분위기는 걸린 작품과 오묘하게 조화롭다. 아담한 시립미술관에 오르면 강릉 시내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재단법인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은 오는 10월29일까지 강릉 일대에서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을 진행한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는 '서유록'(Tale of a City II)이다. 1913년, 강릉에 살던 강릉 김씨라는 여성은 52세를 맞아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여성으로서 여행하기 힘든 당시 그는 가족과 함께 도보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열흘 동안 550리(약 216km)를 걸어 서울에 도달한다. 변화한 서울 풍경을 보며 신기해하고, 어느 여학도를 만나서는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우친다. 한편으론 일본의 위력이 닿아있는 조선의 현실에 원통함을 느낀다. 서울 구경을 마친 후 대관령을 넘어 다시 강릉에 돌아오는 37일간의 여정을 그는 한글로 기록한다.

이번 GIAF는 '서유록'이 담아낸 도전정신과 신체활동을 매개로, 도시라는 물리적 환경에서 여러 갈래로 얽혀 상호 작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정서와 시각에 주목한다. 특히 김씨를 페스티벌 안내자이자 주제를 전달하는 상징적 존재로서 설정해, 관람객에게 강릉 혹은 더 나아가 자신이 위치한 곳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이 열리는 강릉시립미술관에서 바라본 풍경. 강릉 시내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2023.9.22/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올해 페스티벌에는 작가 고등어와 로사 바바(Rosa Barba), 박선민, 아라야 라스잠리안숙(Araya Rasdjarmrearnsook), 양자주, 이우성, 카밀라 알베르티(Camilla Alberti), 티노 세갈(Tino Sehgal),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 홍순명 등이 참여했다.

국립대관령치유의숲에서는 티노 세갈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숲속을 거닐다 만나는 한 여성이 그가 연출한 작품이다. 나무 데크가 깔린 숲길을 오르다 만나는 이 여성은 등산객(또는 관람객)에게 무작위 라이브 곡 하나를 약 30초간 들려준다. 누군가에게는 '나는 문제없어'를, 또다른 누군가에는 동요를 맑은 목소리로 선사한다. 작가의 엄격한 요구 때문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은 일절 금지다. 덕분에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제대로 힐링하는 느낌이 든다.

'강릉에도 독립예술극장이 있다고?'라는 호기심에 찾은 신영극장. 이제는 수명을 다한 영사기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극장 로비에는 과거 손으로 쓴 영화관에서의 주의사항이 정겨움을 더한다. 이곳에서는 프란시스 알리스가 영화감독 줄리앙 데보(Juilien Devaux)와 공동 작업해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모래 위 선'(Sandlines, the Story of History)를 한국 최초로 선보인다.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은 이라크 모술 지역의 작은 산간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이 이 지역의 역사 속 다양한 국적과 종족의 인물을 역할극으로 재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역사를 재해석한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체결한 불공정 협정인 사이크스-피코 조약, 2016년 이슬람 국가 테러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역사의 한 세기를 망라한다. 페스티벌 기간 매주 금-토-일 오후 4시에 작품을 볼 수 있다.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임호경 작가. 2023.9.22/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작업을 소개하는 송신규 작가. 2023.9.22/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언덕 위 작은 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에서는 홍순명, 송신규, 로사 바바, 임호경, 아라야 라스잠리안숙, 카밀라 알베르티의 작품을 전시한다.

홍순명은 자연 풍경과 유적지를 겹쳐 여러 장소와 시간이 혼재하는 장면을 선사하는 신작 '서유록-홍씨 여행기'를 미술관 1층 벽면에 채웠다. 그는 강릉 김씨의 여정을 따라 '대관령 옛길'을 직접 걸으며 110여년 전 김씨가 마주한 풍경을 작품 속에 집적했다.

송신규는 시간이 흘러 흔적만 남은 낡은 장소나 변화한 풍경 등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가로,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강릉의 오래된 상설시장 중 하나이자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로 이제는 수명을 다한 옥천동 동부시장에 주목했다. 시간이 응축된 사물을 종이 죽으로 본뜬 오브제로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본래의 성질, 의미, 기억을 상쇄한다.

로사 바바는 영화 매체의 특성과 구성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Inside the Outset: Evoking a Space of Passage' 영상을 선보인다. 사이프러스 해안가에서 발견한 마조토스 난파선을 촬영해 실험적 다큐멘터리와 허구적 내러티브 사이 간극을 다룬다.

임호경은 양가적인 생과 소멸의 세계가 사실은 연결되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 '탄소 나무'를 선보인다.아울러 강릉시립미술관과 동부시장 레인보우 두 공간에 걸려 있는 그림을 관람객이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권유하는 참여형 작품 '길 떠나는 그림'을 소개한다.

강릉 옥천동 웨어하우스에서 선보이는 박선민 작가의 작품. 2023.9.22/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은 신작 '개들의 궁전'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그동안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실재와 허구, 정상과 비정상, 제약과 본능 등 다양한 영역과 경계를 탐구하며 우리 주변을 재고한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동물, 망자, 장애인 등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존재와 인간 사이 관계를 주목하며 객체와 자아,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카밀라 알베르티는 강릉에 머물며 이곳에서 수집한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좌초된 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버려진 물건과 산업 폐자재, 유기물 파편 등 현시대의 폐허를 상징하는 재료를 수집해 알루미늄 와이어와 석고 밴드로 연결한 이 작품은 폐허의 잔재가 가공되고 소비되며 혼종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주목한다.

1950년대 양곡 창고로 만들어졌다가 공간 업사이클링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변신한 옥천동 웨어하우스에서는 박선민 작가의 '귀와 눈: 노암'을 선보인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있으니, 바로 '노암터널'이다. 노암터널은 1900년대초 일본의 수탈을 위해 생겨나 6·25 전쟁 때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비극적 역사를 지닌 곳이다. 지금은 기찻길과 터널 내부가 모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됐다. 노암터널에 수 차례 방문한 작가는 터널의 구조적 특성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웨어하우스에서 상영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비극의 역사는 사라지고, 고즈넉한 평화만이 다가온다. '세월'은 그렇게 우리를 바꿔 놓는다.

동부시장에서는 고등어 작가가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강릉의 옛이야기와 이곳에 사는 이주 노동자를 주목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우성 작가는 '생활과 미술'을 주제로 드로잉과 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일상과 삶의 주변에 자리한 대상을 작품으로 승화한다. 양자주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거주하며 주거지를 형성한 불당골에서 우연히 만난 김동성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화'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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