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작전’ 방불케 한 엑스포 유치전
윤석열 대통령은 4박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미국 뉴욕 순방을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일정으로 가득 채웠다. 지난 18일 뉴욕 도착 뒤 개최한 한-스리랑카 정상회담부터 뉴욕을 떠나기 전 주최한 한-태평양도서국(태도국) 정상 오찬에 이르기까지 엑스포로 시작해 엑스포로 끝난 순방이었다.
이번 뉴욕 순방은 역대 어떤 순방보다도 가장 바쁘게 흘러갔다. 윤 대통령은 제78차 유엔(UN) 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총력을 다하기 위해 뉴욕에 모인 각국 정상을 쉴 새 없이 만났다. 닷새간 마주한 정상만 해도 양자회담 41개국을 포함해 총 47개국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뉴욕 순방을 준비하면서 참모들에게 최대한 많이 양자회담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1월 말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2개월 앞두고 부산으로 표심을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엑스포 유치전은 정상 간 1 대 1 설득이 가장 효과적이다. 179개 국제박람회(BIE) 회원국은 철저히 자국을 기준으로 이해득실을 따진 뒤 어느 도시에 투표할지 결정한다. 각국 정상을 만나 부산엑스포가 어떻게 상대국 국익에 도움이 될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다. 193개 유엔 회원국 정상이 모이는 뉴욕을 엑스포 유치 총력전 무대로 삼은 이유다.
윤 대통령은 양자회담에서 만난 41개국 정상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산엑스포를 설명했다. 국가별 맞춤형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설명이다.
엑스포 개최지 투표가 흥미로운 점은 BIE 회원국 모두 1표씩 행사한다는 대목이다.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이나 이름도 생소한 태도국 섬나라나 엑스포 앞에서는 같은 위치에 있다. 바꿔 말하면 BIE 회원국 179개국 각각이 지닌 ‘니즈’(욕구)를 충족해야 1표를 가져올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기후변화로 국가 존속이 위태로운 상대국에는 부산엑스포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개발협력이 최대 관심사인 국가에는 부산엑스포를 통해 각국과 지난 70여년간 한국이 성취한 고도성장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뉴욕에서 펼쳐진 엑스포 유치전이 ‘작전’에 가까웠다고 했다. 정상회담장으로 사용된 유엔 본부 앞 한국 유엔대표부에는 회담장을 2개 이상 설치해 시간대별로 양자회담이 이어지도록 했다. 상대국 정상이 시간에 맞게 회담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의전 요원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1층 입구에서부터 회담장 안까지 곳곳에는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 ‘HIP KOREA’(힙 코리아) 같은 부산엑스포 슬로건이 내걸렸다. 각 정상과 수행원들에게는 부산엑스포 홍보 책자도 빠지지 않고 배부됐다. 회담장을 찾은 정상이 건물에 들어오면서부터 나가기까지 매 순간 부산을 각인하도록 꼼꼼하게 준비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부산엑스포 개최 의지를 각국에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돋움해 과거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전체 연설문 분량 중 15.4%를 부산엑스포로 채웠다. 윤 대통령은 연대와 함께 자유와 평화, 번영 등 부산엑스포가 지향하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나 이탈리아와 차별화를 꾀했다. 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는 세계 각국의 역사, 문화, 상품,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축제의 공간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뉴욕에서 부산엑스포 유치전을 마친 뒤 대통령실은 “상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몽골과 헝가리 등 한국을 지지하겠다는 국가도 적지 않다. 물론 결말은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던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은 다른 자리에서 사우디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만 하더라도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앞에서 엑스포는 불가능의 영역에 있었다. 열세인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세계 각지를 부단히 뛰어다닌 결과 불가능의 영역에 있던 엑스포를 기대의 영역으로 옮겨놨다.
엑스포 유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2개월 엑스포를 부산으로 가져오기 위한 유치전이 지금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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