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오타에 단체 ‘군기 메일’, 근무시간 조작 100명 ‘무더기 징계’

류정 기자 2023. 9. 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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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직원 기강 확립’ 백태
일러스트=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지난 7월 삼성전자가 서울에서 연 ‘갤럭시 언팩(공개) 행사’에서 한 발표자의 등 뒤로 ‘Join the filp side’라는 대형 문구가 떴다. ‘갤럭시 플립(flip)’을 ‘필프(filp)’로 잘못 쓴 것으로 외국인 1500명을 포함해 2000명을 초청한 국제행사에서 망신을 샀다. 삼성전자 한 직원은 “애플이 이런 실수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일류 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삼류 실수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의 삼성’이라고 불린 삼성의 이 같은 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출시한 갤럭시 워치 신제품 배경 화면엔 ‘April’(4월)이 ‘Arril’로 표기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해줘야 했다. 지난 7월 공식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쇼핑 방송에선 갤럭시 탭(tab)을 ‘tap’으로 크게 써놨다. 최근 신제품 홈페이지엔 ‘beige(베이지색)’를 ‘begie’로, ‘fastest(가장 빠른)’를 ‘fatest’로 잘못 표기했다.

지난 7월 말 열린 삼성전자의 '갤럭시 언팩' 행사 슬로건 'Join the flip side'에서 제품명 '플립(flip)'이 '필프(filp)'로 잘못 표기돼 있다. /삼성전자 유튜브 캡처

그러자 삼성전자 DX 부문은 지난 18일 직원들에게 ‘삼성인, 우리 함께 지켜요’라는 전체 메일을 보냈다. 각종 징계 사례를 소개하며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지난 7월 DS 부문은 ‘폰 게임 금지’ 등 근무 기강을 당부하는 메일을 보냈다.

삼성뿐만 아니다. SK그룹은 최근 직원 근태와 관련된 대대적 감사를 벌였고,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근로시간 부정 기록자 100여 명을 무더기 징계했다. 코로나를 거치며 확산한 재택근무가 일상 근무로 속속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부 기강 해이가 발생하고 있고, 자율을 중시하는 직장 문화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각종 사고 등이 발생하자 기업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신제품 안내에 'beige(베이지색)’를 ‘begie’로, ‘fastest(가장 빠른)’를 ‘fatest’로 잘못 표기한 모습. 삼성전자는 갤럭시워치6 시제품에 Arpil(4월)을 Arril로 잘못 표기(맨 오른쪽)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삼성전자

◇재택근무 중 쇼핑몰 운영, 감평사 자격증 따

SK 계열사들은 지난 5월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각종 근무 해이 사례를 적발했다. ‘코로나 3년’을 거치며 직원들이 재택근무 중 ‘딴짓’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던 것이다. 재택근무 중 대학원에 다니거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직원, 유튜브 채널 및 쇼핑몰을 운영한 직원이 적발됐다.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딴 직원도 있었다. 사내에선 “대체 일은 언제 한 거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SK그룹은 최근 재택근무를 최소화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지난해 한 대기업의 SI(시스템통합) 계열사에선 개발자들이 부업으로 프로그래밍 단기 아르바이트 뛰는 사례가 만연했다고 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개발자 인력난이 심한 상황에서 이를 적발하면 퇴사해버릴까 봐, 징계도 못하고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조작도 지능적

4대 그룹에 다니는 한 직원은 근로시간을 조작하다 해고됐다. 경기도 분당 집에서 이천 사무실로 출근하던 이 직원은 분당 집으로 곧바로 퇴근하지 않고 오후 3시쯤 분당에 있는 또 다른 사무실로 이동했다. 4시 반쯤 이곳에 도착해 6시까지 일하고 곧장 퇴근했다. 이천에서 분당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1시간 30분 동안 자유시간을 가지면서 이를 근로시간에 넣은 것이다.

현대차 한 영업직원은 근무시간 중 하루 평균 2시간 38분을 집에 머무르다 해고됐다. 연봉 8700만원을 받던 이 직원은 적반하장으로 회사가 불법 증거수집을 했다며 ‘부당해고’ 소송을 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

현대차그룹 한 계열사는 지난달 근무 시간을 부정 기록한 직원 100여 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재택근무 시 일정 시간 PC를 사용하지 않으면 PC가 자동 잠김이 되도록 했는데, 일부 직원은 마우스를 자동으로 움직여 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설치해 이를 피했다. 이 중엔 신입사원이 대거 포함됐고, 수백만원의 연장근로 수당을 받아간 직원도 있었다.

◇범죄 수준 비리까지

범죄 수준의 비리도 적발되고 있다. 이달 초 카카오의 한 임원은 회사 법인카드로 1억원어치 게임 아이템을 샀다가 징계를 받았다. 최근 오뚜기 직원 3명은 협력사가 제공하는 홍보 물품 10억원 상당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삼성 한 계열사에선 회의비 등을 횡령한 여비서 4명이 해고되기도 했다.

한 대기업 직원은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경조사 정보를 무단 이용해 가족회사의 절세에 이용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법인의 경비 처리를 위해 관련 경조사비를 냈다고 허위 신고한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재택근무와 자유로운 조직 문화가 확산하며 근태까지 느슨해지고 있다”며 “자유는 챙기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늘고 있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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