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동행카드 왜 찜찜하냐면[할 말 있습니다](39)
지난 9월 11일 서울시가 월 6만5000원을 내면 서울 시내의 지하철, 버스, 따릉이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담은 계획을 발표했다. 2024년 1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가는 기후동행카드가 도입되면, 연간 1만3000대가량의 승용차 이용이 감소하고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며 연 3만2000t(2020년 기준 서울시 수송 분야의 0.4%)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거라고 서울시는 내다봤다.
2020년 기준 서울 시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8.1%가 수송 분야인 점을 감안할 때, 서울시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교통비 부담까지 덜 수 있는 방안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기후동행카드가 서울시가 내세운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직 서울에서만
첫째,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이 카드가 서울이 아닌 경기·인천 등에서는 쓰일 수 없다는 점이다. 지하철의 경우 서울에서 승차하고 경기·인천에 내리는 건 가능하지만, 경기·인천에서 승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버스의 경우 서울로 들어온다 해도 경기·인천 소속 버스라면 이 카드를 쓸 수 없다.
국토교통부의 ‘탄소공간지도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 주변에서 탄소 발생이 가장 많은 곳은 서부간선도로, 경인고속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동부간선도로, 경부고속도로 등 서울과 그 외부를 연결하는 도로교통 구간이다. 바로 이 구간의 승용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 지하철에 한해, 그것도 서울에서 출퇴근할 때만 쓸 수 있는 카드가 경기도민에게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어떤 유인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나의 생활공간인 수도권을 아우르는 대중교통에 대한 통합적 계획을 세우지 않고 경기도·인천시와 아무런 협의 없이 신제품 출시 경쟁하듯이 설익은 정책을 발표한다면, 그것은 기후위기 대응에 ‘동행’하는 카드가 될 수 없다. 경기도도 이 문제를 정쟁으로 여기지 말고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계기로 생각해서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락운임 정산 갈등의 해소가 어렵다면, 현행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를 넘어서는 운임 및 재정 배분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공적 기구의 구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성 없고
둘째, 지속가능한 재원 계획이 없다. 왜 6만5000원인지를 묻자 오세훈 시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시하고 운수회사하고 함께 반반씩 나눠서 지원해야 하는데 그 지원금액이 7만원으로 하게 되면 월 1000억원 정도 되고요. 그다음에 6만원으로 하면 350억원 정도 됩니다. 그래서 중간 정도 750억원 정도 되면 서울시와 운수회사, 운송회사들이 반반 정도 부담하면 감당할 수 있다…. 시범사업 하면서 정확하게 계산해서 조금 더 올릴지, 내릴지 융통성을 두겠습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의 금액과 재원에 대해서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자가용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면, 그 재원은 마땅히 우선 자동차에 대한 혼잡통행료, 주차료 그리고 자동차 교통량을 유발한 기업에 대한 교통유발부담금의 강화로 풀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 통행의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할 수 있고, 대중교통과 도보, 자전거 등 녹색 교통망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100인 이상이 종사하는 기업이 기후동행카드를 일괄 구매하면 기업의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세금 체계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 강화해야 할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해서 대중 교통카드를 더 팔겠다는 것은 일종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아닌가?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배분 비율을 자동차 도로보다 대중교통 강화에 더 할애하는 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 세금은 국세라는 점에서 국가 철도 등에 더 활용하고, 버스를 포함한 지방정부 정책을 위해서는 지방세인 혼잡통행료, 주차료, 교통유발부담금 등을 사용하는 방안이 적절하다. 장기적 재원은 자동차와 부동산 관련 세제를 개편해서 얻어야 한다.
저렴하지도 않고
셋째, 기후동행카드는 저렴하지도 않다. 오세훈 시장이 ‘힌트’를 얻었다는 49유로(약 6만9000원) ‘독일티켓(D-Ticket)’은 범위가 독일 전역이고 버스, 지하철만이 아니라 철도(ICE·IC·EC 제외), 전차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독일이 운영자라면 심지어 다른 나라로 오가는 기차도 탈 수 있다. 수도 지하철 요금만으로 비교해도 베를린 지하철의 1회 티켓은 구간별로 3.2유로(약 4500원), 3.8유로, 4유로이므로, 독일티켓 요금은 3.2유로 티켓으로 치면 15회에 해당한다. 기후동행카드 요금은 10월 7일 인상되는 1400원으로 계산해도 서울 지하철 1구간 요금 46회에 해당한다.
2022년 기준 서울 시민의 월평균 대중교통요금이 7만1745원인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기후동행카드가 5000~6000원 싸다는 주장도 있지만, 가끔 신분당선이나 광역버스 타고, 가끔 경기도나 인천 왔다 갔다 하면 ‘기후동행카드+추가 교통비’가 현 평균보다 높아진다.
교통비 조삼모사
이 카드는 또 대중교통요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이루어지는 ‘조삼모사’의 전형이다. 서울시 간선/지선버스는 지난 8월 12일 20%, 광역버스는 무려 30.4% 인상했다. 지하철은 10월 7일과 내년에 150원씩 두 번 올려, 도합 24% 인상한다. 윤종장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기후동행카드의 재원 750억원에 대해 “서울 시내버스와 지하철 기본요금 인상분의 10% 정도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대중교통요금 인상의 90%는 시민이 부담하라는 얘기다. 따라서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를 발급해도 시와 교통공사, 버스회사의 적자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기후’라는 이름이 포함된 서울시 대중교통 정액권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기후위기라는 절박한 문제를 750억원으로 대응하겠다는 것부터가 무리다. 독일티켓의 비용은 연간 30억유로(약 4조2400억원)이며, 연방정부가 그 절반을 보전한다. 이 정도의 과감한 국가 재정투자 없이 기후위기 대응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버스 사업자의 이익 보장에 구속되는 버스 ‘준공영제’의 틀을 깨고 완전 공영제로 전환해야 공공교통도 녹색교통도 이룰 수 있다.
기후위기를 조장하면서 큰돈을 버는 이들이 어떤 부담도 지지 않고, 기후재난에 직면해 있는 보통의 사람들은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시스템, 이는 사회적 불의이며 기후 부정의이다.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사흘권, 일주일권 등을 만들겠다는 오 시장의 발상도 마찬가지다. 국제 항공의 탄소배출량을 감안하면 관광 비용을 낮춰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서울 외곽에 주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교통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다.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사회적 전환’과 ‘생태적 전환’을 함께 이루어낼 의지와 능력을 갖춘 녹색정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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