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필 이끄는 비치코프 "韓음악가 폭발적 증가…대단히 놀랍다"
러시아 전쟁 비판도…"때로는 침묵이 악마, 인간으로서 침묵하지 않았을 뿐"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체코 필하모닉은 자신만의 색과 정체성, 음색, 음악성을 지닌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유서 깊은 악단입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곡만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들고 다음 달 한국을 찾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1)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 달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체코 필하모닉은 보헤미안적인 독특한 음색을 지닌 악단으로 '체코 음악의 정수'를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러,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등 체코 출신 유명 작곡가들의 레퍼토리에 대한 명확한 해석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비치코프는 오케스트라가 지닌 색깔에 대해 "체코 필하모닉의 음악적 뿌리, 음악성, 음악 교육,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은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며 "우리는 이 음악적 전통을 지속해왔다. 단원들은 매우 신중하고 이 독특한 정체성을 꼭 간직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체코 필하모닉의 내한은 6년만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드보르자크의 '사육제' 서곡, 피아노 협주곡, 교향곡 7번을 연주곡으로 선택했다. 한 작곡가의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데 자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드보르자크는 체코 필하모닉의 상징과도 같은 작곡가다. 올해 창립 127주년을 맞이한 체코 필하모닉은 드보르자크가 1896년 1월 첫 연주회를 지휘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체코 필하모닉은 이번 내한 공연뿐 아니라 올해 시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3개, 협주곡 3개, 서곡 3개를 선보이는 '드보르자크 향연'을 이어가고 있다.
비치코프는 "프로그램 중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은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상할 정도로 잘 연주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많은 면에서 브람스와 베토벤을 합친 듯하면서도 여전히 드보르자크의 음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이 이미 너무 유명하다 보니 그 연장선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이 종종 연주되곤 하지만, 이것이 피아노협주곡에 대한 관심으로까지는 가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치코프는 오케스트라가 악단의 정체성이 되는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음악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체코 필하모닉은 체코 음악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가 속한 문화의 작곡가 작품만 연주할 수는 없다"며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는 자신의 문화와 배경을 떠나 해당 작곡가의 문화적 특색을 처음부터 파고들어 소화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이 각각의 영화마다 깜빡 속을 정도로 새로운 인물로 변신하듯 음악가들도 그런 역량이 필요하다"며 "자신만의 문화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알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비치코프는 한국 음악가들의 역량을 높이 샀다.
그는 "지난 몇십년 사이에 한국인 클래식 음악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인 음악가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찾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내가 자라 온 것과는 다른 문화를 뼛속 깊이 받아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대단히 놀랍다. 누구나 피아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지만 어떠한 문화와 민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말했다.
체코 필하모닉은 4월 유럽 투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하기도 했다. 비치코프는 "조성진은 정말 대단한 음악적 파트너이자 훌륭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감명 깊은 연주를 함께했다"고 회상했다.
비치코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낸 음악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1952년 소련에서 태어났으며, 1975년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길을 가다 누가 봐도 약하고 힘없는 자가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지나치지 않고, 최소한 경찰에 신고라도 할 것이다. 나는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며 "때로는 침묵이 악마일 때가 있다. 그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을 침묵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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