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인데 세입자가 이래도 됩니까"…그날 이후 시작된 악몽 [전세 긴급진단上]

이송렬 2023. 9. 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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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역전세'라더니 이젠 '전세난'
예측불허된 임대차 시장
전셋값 수개월새 급등락…혼란스러운 전세 시장
"임대차법 도입 이후, 시장 예측 어려워"
"수정·보완 혹은 폐지해야" 전문가들 한 목소리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전세 시장이 2020년 7월을 기점으로 크게 흔들렸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새로운 임대차법이 도입된 시점이다. 치솟았던 집값이 지난해부터 급락했고, 금리가 오르면서 전세 시장은 또 한 번 혼란을 겪었다. 혼란스러운 전세시장, 임대차법이 도입된 이후 전세 시장의 변화와 앞으로 바뀌어야 할 모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로 혼란을 거듭했던 전세시장이 이젠 매물이 없는 '전세난'에 시달리고 있다. 수개월 새 시장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유는 '임대차법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4년에 한 번꼴로 계약하다 보니 임대차 시장은 유연성이 떨어졌다. 계약서에서 갑과 을은 각각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집주인(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없지만, 세입자(임차인)는 해지가 자유롭다 보니 수평적 계약 관계가 애초부터 성립이 안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법인만큼 수정·보완 혹은 폐지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역전세 계속된다더니…매물 마르고 전셋값 상승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셋째 주(18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0.11%)보다 0.13% 상승했다. 지난 7월 상승세로 돌아선 후 9주 연속 오름세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지난 6월 넷째 주(26일, 0.02%)부터 상승 전환했고, 서울 전셋값은 지난 5월 셋째 주(22일, 0.01%)부터 이미 오름세를 기록 중이다.

올해 초 전셋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역전세 문제가 불거진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하반기 역전세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년 전인 2021년 하반기엔 매매 가격 급등에 따라 전셋값도 고점을 기록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6월 처음으로 기준선인 100을 넘은 이후 지난해 1월 103.3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세입자들 대부분이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연초보다 금리가 대체로 안정세를 찾았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다시 전세로 수요가 모이기 시작했다"며 "전세 사기 등 여파가 잦아든 점도 전세 수요를 자극, 전셋값이 다시 오르고 있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임대차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임대차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했던 제도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돼 세입자는 4년의 거주를 보장받게 됐다. 기존 전세 계약은 2년에 한 번꼴로 이뤄졌는데 주기가 길어졌고 이는 시장에 전세 물건이 급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2주일이 된 2020년 8월15일 기준 서울 전세 물건은 3만2505건으로 법 시행 전인 7월29일(3만8557건)보다 15.7% 줄었다. 같은 해 12월엔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전세 물건이 크게 줄어들면서 직전 5개월 전보다 65.1% 감소했다.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경DB


가격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전·월세상한제는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시점에 집주인이 임대료를 5% 이내로 올려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다 보니 이중, 삼중 등 전셋값 다중화 현상이 나타났다.

집주인들은 한 번 계약하면 4년 동안 전셋값이 거의 묶여 있을 것을 예측하고 매물들의 가격을 올렸다. 세입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2020년 8월부터 12월까지 2.45% 상승했고, 2021년엔 5.1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국 전셋값은 4.69%, 8.84%, 수도권 전셋값은 4.31%, 9.59%, 지방 전셋값은 5.05%, 8.13% 뛰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저금리 시대였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상승한 전셋값을 감당할 만했다. 2년에 한 번씩 주거 불안을 호소하느니, 싼 이자를 내면서 4년을 견디는 게 낫다는 시선도 작용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이 저마다 다르다 보니 시장은 혼란이 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엘스' 전용 84㎡는 2021년 7월 보증금 8억6100만원(17층)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같은 날 15층은 13억7000만원에, 같은 해 6월 13층은 11억5000만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같은 면적대 비슷한 층임에도 불구하고 전셋값이 8억원대, 11억원대, 13억원대 등 삼중으로 나뉘었다.

도입부터 삐거덕…'가격 왜곡' 전세시장, 금리 인상 '직격탄'

왜곡된 가격은 집값 하락과 금리인상이 맞물리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세입자들은 전세 대출금리가 급등하면서 갱신 대신 보증금을 빼주길 요구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온전하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됐다. 집값과 전셋값의 차이가 작았던 집들을 중심으로 '역전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택 형태로는 비아파트부터, 지역으로는 서민들이 사는 외곽부터 역전세난이 불어닥쳤다.

높아진 금리에 시름 하면서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는 물론, 대출을 해서 4년이 되기 전에 나가겠다는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마련해줘야 하는 집주인까지 괴로웠다. 집주인들을 향해 '돌려줄 보증금도 없이 왜 전세를 주냐', '결국 갭투자 하다 집값 하락해서 이 꼴이 났다'고 조롱받기엔 전세 제도의 뿌리는 깊다.

금융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근대부터 전세는 존재했다. 되레 과거에는 '주거 사다리'이자 내 집 마련을 앞당길 수 있는 '사금융'으로 여겨졌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무너지면서 임대인, 임차인 모두가 괴로운 전세시장이 됐다. 

사진=뉴스1


이러한 과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은 커졌다. 자연스럽게 배려하거나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서로 날을 세우면서 큰소리를 치는 시대가 됐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 박모씨(60)는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나서 전세 계약을 갱신하게 됐는데 세입자가 이런저런 사례를 들고 와서 다양한 요구를 해왔다"며 "내 집에 내가 세입자를 들이는데, 솔직히 기분은 좋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강동구에 전세로 사는 김모씨(35)는 "기존 전세 계약보다는 2년 더 길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보장됐던 것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들어오거나 4년 뒤엔 전셋값을 크게 올려 받는다고 생각하면 크게 변한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차법은 이미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됐던 법이다. 다수의 전문가가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정상화'를 이유로 법이 시행됐다"며 "결과는 그간 시장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시장은 시장 원리 맞게 둬야 부작용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준 단편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부작용이 예상됐던 만큼 시장 반응을 살피면서 법을 차츰 도입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임대차법을 도입하기 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만큼 더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은 뒤 시행을 해야 했다. 시장 제어를 위해 법을 시행하니 당연히 부작용이 뒤따른 것"이라면서 "시장에 문제를 일으켰던 법인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예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교수는 "임대차법 자체가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나온 법이다. 현재 시장 상황하고는 맞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가격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모두 적용이 가능한 법을 만드는 것도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 가격을 제어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건드릴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절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속)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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