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채 걸려도 이자 20%는 챙긴다? [창+]

손은혜 2023. 9.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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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돈 없는 서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돈을 구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금융권 대출을 생각한다. 신용도가 낮거나 빚이 이미 포화상태라서 금융권 대출이 안 되면? 지인에게 빌린다. 더 이상 지인에게도 못 빌릴 상황이라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난해 금융당국이 추정한 우리나라 불법사채 이용자는 모두 76만 여 명이다. 이들이 빌려 쓴 돈은 10.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사채는 인류와 함께해 온 현상이다. 본디 사람들은 돈이 다급하면 앞뒤 가리지 않는다. 사채업자들은 사람들이 비이성적여지는 순간을 노린다. 대포폰·대포통장을 손에 넣기 쉬운 세상. 사채업자들은 갈수록 기업화·점조직화 된다. 사채하기 좋은 세상이 왔다.

■코로나 이후…고통은 계속된다.

코로나가 3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다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옷 가게 점원으로 10년을 일했다가, 본인이 직접 옷가게를 열게 된 한 자영업자를 만났다. 하루 매출이 수백 만 원에 달하는 이대 앞 옷가게에서 일했다는 자영업자 김 씨. 옷을 좋아했고, 사람 만나 장사하는 게 좋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닥쳤다.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든 가게에서 더 이상 덩그러니 서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스스로 사표를 내고 옷가게와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하지만 사업은 녹록치 않았다. 옷가게 손님은 들지 않았고, 인터넷 주문도 신통치 않았다. 거래처 대금은 밀렸고, 월세도 밀렸다. 단돈 십만 원, 백만 원이 아쉬웠다. 그래서 처음에 백만 원을 빌렸다.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갚을 수가 없었다.

백만 원을 빌리면 그 다음주에 수십 만 원의 이자가 붙고, 밀리면 시간 단위로 수십 % 단위로 올라가는 사채 올가미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사채업자는 빚 담보로 나체 사진을 요구했고, 이자가 밀리자 사진을 거래처에 뿌렸다. 그녀는 그 사채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냈다. 또 다른 대출업체는 빚이 밀리자 찾아와 때렸다. 더는 옷을 팔 수 없었다. 집 밖으로 나서기도 어려웠다.

나체사진을 뿌려가며 그녀를 협박했던 사채업자는 경찰에 잡혀 7개월째 조사를 받고 있다. 돈을 갚으라며 그녀를 때리고 협박한 또 다른 대출업자는 불법채권추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 안 잡힌다 · 구속 안 된다 · 징역 안 산다.

우리나라의 사채업자들은 경찰에 잘 안 잡힌다. 지난해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사람은 모두 천여 명. 이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단 20명에 불과하다. 불법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사람은 580여 명인데 구속된 사람은 2명이다.

이들은 사법부에 가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대부업법 위반으로 유기징역을 받은 비율은 전체의 8%. 같은 기간, 일본에서 유기징역 결정을 내린 비율은 전체의 절반 가량이었다. 사채업자가 받는 유기징역 비율이 일본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취재진은 10년이 넘게 사채업을 했다는 전직 사채업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말했다. “잡혀도 안 무서워요. 어지간하면 벌금이나 집행유예 나오니까 벌 받고 나서 또하면 돼요. 어차피 돈 많으니까 변호사 좋은 사람 쓰면 되구요.” 돈 벌기가 너무 쉬웠다는 그의 말에 피해자들의 눈물이 겹쳐졌다.


■ 불법 사채업을 해도 법정 최고 이율20%는 보장받는다.

최근 경찰에 검거된 사채조직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취재했다. 올해 6월, 강원경찰청은 수개월의 제보 취재와 잠복 수사 끝에 사채조직을 대거 검거했다. 경찰이 검거한 인원은 모두 백여 명. 하지만, 이 가운데 법의 심판대 위에 서서 재판까지 받은 사람은 조직의 윗선 10명에 불과했다. 총책은 월세 천 여 만원이 넘는 서울 시내 최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외제차도 몇 대씩 소유하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피눈물이 났다. 피해자들은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법정 최고 이율 20%를 제외하고 그것보다 더 지불한 이자를 돌려받기 위해 나라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소장을 살펴보니 구구절절한 사연이 가득했다.

해당 사채업자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채무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사채업자들이 경찰에 잡혔는 데도 여전히 사채를 쓰고 있었다. 그때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빨리 소송이 끝나서 자신의 피해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하루 , 또 다른 사채업자들의 험악한 불법 추심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 국회에서 잠자는 대부업법 개정안

우리나라 이자제한법에는 미등록 대부업자에게도 최고 이자율 20%를 보장해주게 되어있다. 사채업자는 불법을 저지르다 잡혀도 이자 20%를 보장받는다.

‘미등록 대부업자’라는 ‘불법사금융업자’로 고쳐서 미등록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는 방안. 그리고 불법 사금융업자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이자율을 6%로 낮추자는 방안. 이런 방안을 담은 정부의 대부업법 개정안이 지난 2020년 국회로 넘어가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4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형법으로 사채업자를 벌 줄 수 있는 데, 민법상 규제를 더 하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 그리고 사인 간의 거래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 사채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불법적으로 맺은 계약은 사인 간 거래를 인정하는 영역에 속할 수 없기에 반드시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에는 미등록대부업자와 계약할 경우 아예 원금과 이자까지 받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여럿 계류 중이다.


■ 돈 나올 곳을 찾아서…

취재진은 한 달 동안 국내 최대 대출 중개 사이트의 대출 신청글 7천 여 건을 분석했다. 10명 가운데 3명은 50만 원 이하의 금액을 구하고 있었다. 10명 가운데 5명은 백만 원 이하의 금액을 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당장 백만 원이 없어서 사채를 불사한다.

코로나 내내 빚으로 빚을 막으며 버텨오다가 결국 무너진 자영업자. 빚내서 집 샀다가 맞벌이가 외벌이 되고 아이까지 아프면서 삶의 끄트머리에 선 가장.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까지. 들어갈 돈은 많은데 부모는 쓰러지고 보이스피싱 사기까지 당한 청년까지. 이들은 모두 간절히 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민금융대출은 재원이 부족해 최저신용자대출의 경우 매달 초에 일찌감치 신청이 마감된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넘친다. 그 틈을 타 사채 시장은 더욱 커진다.

경찰은 잡지 않고, 사법부는 민사상 범죄에 대해 강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 영악한 사채업자들은 배부르고, 판단력이 흐려진 서민들은 점점 나락으로 빠져든다. 악은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사채 시장은 2023년, 한국 사회의 가장 서글프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누가 칼로 협박했냐고. 당신들의 비이성적인 선택을 대체 왜 사회가 책임 져줘야 하냐고.

하지만 취재하며 만난 한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시장 경제, 자유, 선택 이런 거로만 따지게 된다면 우리가 세금은 왜 내고 어려운 차상위계층에 대해서 기초생활수급 같은 것들을 왜 지원해 주겠습니까. 결국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 지원을 하고 그 분들의 삶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고, 지자체가 존재하는 것이고, 법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삶의 끄트머리에 설 수 있다.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한다. 되도록 사회구성원들이 그런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설령 어려움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돕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리라 믿는다. 취재진이 만난 불법사채 피해자들이 기적처럼 일상을 되찾기를 기원한다.

[시사기획 창 '2023, 사채 탈출기', KBS1TV 26일(화) 저녁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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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혜 기자 (grace3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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